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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Jun 10. 2023

친밀해지는 맛

나를 알아가니 당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혼자여서 외로웠던 날이 있었다. 그날들은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그때는 누구에게나 편하게 만나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울적해도 혼자 감당하고, 지루해도 나 홀로 머물렀다. 만날 시간이 없다며 거절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온통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서는 나 홀로 세상을 등지고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카페에서 차 마시는 내 인생이 딱하고 불쌍했다. 동네에서 마실 다닐 친구도 하나 없다는 생각에 나를 모자라다 여겼다. 외롭게 커피를 마시던 날 ‘동네 친구가 없나?’하는 그분의 안쓰러움 가득한 물음에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았다. 그렇게 울적한 날이면 힘이 쭉 빠져 길을 걸었다. 흐르는 눈물을 땀처럼 보이려 공원을 빙글빙글 돌았던 어제도 생각난다.      



혼자 서 있는 것도 한도가 있던 모양이다. 이제 어디라도 속하고 싶어서 밀물처럼 손 내밀었다가 썰물처럼 쓸려 내려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나답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며 무엇에 갑갑함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시간 동안 매여 있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아이가 없는 시간동안 해야만 하는 일보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을 도전하기 시작했다. 살림만 하던 내가 스스로 만든 디저트를 며칠이지만 좌판을 펼치고 팔아봤다. 글을 썼다가 출판사에 문도 두드려봤다. 사회적인 활동을 해보겠다며 모임에도 들어갔고, 티 나지 않게 사는 걸 더 좋아하는 내가 유치원 운영위원회도 참여했다. 거의 실패로 끝났지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가는 탁월함은 키웠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순하고 좋은 사람이어서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 안에는 말괄량이 기질도 있고 약간 외골수의 성미도 있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참기 어려워하는. 국어는 ‘수’를 받아도 수학은 ‘가’를 받을 정도로 성적에서도 좋고 싫고 잘하고 못하던 게 분명하게 차이가 났던. 그걸 몰랐다. 둥글고 유순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뾰족하고 날 선 사람 일 때도 많았다. 그걸 잊었고 심지어 숨기고 살았으니 얼마나 피곤한 날들을 보냈을까.      


요즘은 나를 더 알고 싶어 상담도 받는다. 그 시간에 듣는 것 중에 편안함에 이르게 하는 말이 있다.      


“그냥 인정하면 어때요.”     


꿈꾸는 모습과 현실의 내 모습은 큰 차이가 났다. 넓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렇지 못했다. 예전에는 너른 마음을 가지지 못한 나를 탓했지만 생각해 보건대 좁은 그릇과 마음은 또 어떨까 싶다는 생각이 나에 대해 알아가며 들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맞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는 삶도 쾌적한 날들이 되지 않을까. 모두가 성인, 군자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 꼭 그렇게 해야 될 필요도 없을 거고. 그것이 반드시 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잘 아우르는 것만도 멋진 일이다. 내 아이에게 한 번 더 다정한 말을 하고 남편에게 꾸미지 않은 겉과 속의 내 모습을 내 보이는 것. 몇 없는 친구에게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친밀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뾰족한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두에게 잘할 순 없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만큼 성의를 다하면 된다고. 누군가에게 좋은 선한 멋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를 별로라 여기는 사람이 있으면 뭐 어떻냐고. 어찌 모두에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겠냐고. 그렇게 살다 보면 너무 피곤하지 않겠냐고.     


외로웠던 날이 단서가 되어 무수한 실타래를 펼쳐 여러 인간관계 속으로 단풍처럼 물들어 갔다. 많은 모임들이 나를 풍성하게 만들 것 같았지만 나로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 만남들은 말짱 꽝이었다. 오히려 혼자가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은 지극히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혼자를 꿈꾸면서도 함께 하는 날들을 별처럼 달처럼 기다린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 어딘가에 속하던 시간 속에서 지난한 시간들을 보냈지만 잃어가는 날들 속에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버림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내가 스스로의 편만 된다면. 서로 맞지 않는 관계와 일들과 억지로 손을 잡는 일이 나를 더 멍들게 했다. 피멍이 든 마음의 구석구석들을 눈여겨보고 어려웠지만 큰 용기도 필요했지만 손에 쥔 것을 스르륵 내려놓았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새로운 만남이 군데군데 피어났다. 그렇게 다시 만난 일과 사람에겐 순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나무처럼 대쪽 같아지지도 않으려 한다. 바람이 휘몰아치면 때론 갈대처럼 휘어졌다가 어그러진 만남은 시들어가는 잎이 떨어지듯 날려 버리려 한다. 그렇게 너와 내가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의 뿌리를 지니기를 바란다. 서스름 없이 자라며 각자의 싱그러움을 발할 만남을 꿈꾼다. 서로가 하나 되기를 바라지 않고 나와 똑같아 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그늘도 만들어 주며 편안하게 쉬어가는 만남을 이어가려고 기대하는 중이다. 벌써 그런 만남이 선물처럼 내게 들렀다. 알고 보니 항상 옆에 있었는데 다른 꽃들에게 기웃거리느라 그 애의 존재를 잊었다. 언제나 내 곁엔 당신이 있었는데.      



내가 보이니 이제야 당신이 보인다. 

그렇게 살아가고 친밀해지는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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