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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May 24. 2023

성스러워져라. 일상아.

다시 맞이하는 일상의 의미에 대하여

요즘 제가 개미만큼 작아졌는데 글 배우며 땅속으로 나가고 싶어요.     


 첫 수필 쓰기 수업에서 나를 그리 소개했다. 입을 파르르 떨며. 어쩌면 개미보다 더 조그만 소리로 말이다. 

그때는 꼬여버린 인간관계가 또 한 번 나를 시험해서 휘청이는 날들을 보냈다. 이력서를 낸 곳에서는 연락도 없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다른 것을 해보리라 대안을 짜 놓았다. 그중에 하나가 글을 배우는 것이었고, 그다음이 그만두려고 작정했던 줌바댄스를 이어나가는 일. 또 한 가지는 자격증 공부였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이제 내 일도 가져보고 싶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방송대 공부를 하는 것도 모자라 자격증 공부까지 반찬처럼 곁들였다. 두 가지를 해내면 늦은 나이에도 경쟁력이 있으리라. 도서관에 앉아 공부했고, 새벽에 일어나서도 책을 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공부하고 있다고. 그때는 그 말이 내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줬는데. 


 날이 바짝 선 화살 같은 말들이 아이들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상이 짜증스러웠다. 인간관계마저 어그러지니 기운이 쑥 빠졌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겹친다며. 이력서를 낸 곳에서도 연락조차 없었다. 공공근로에 일자리를 넣은 곳으로부터 전화를 못 받아 일자리를 어이없게도 놓쳐버렸다. 줌바 댄스를 추는 그곳에선 나만 외톨이 같았다. 불편한 그 분과 마주치는 게 어려워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지 못하고 피해 다녔다. 모든 일상이 개미처럼 움츠려 든 나 자신이 쪽 팔렸다.      


‘ 더 뛰느냐, 여기서 그치느냐.’     


 이상보다 현실이 급했다. 해보고 싶은 일로 먹고 살기에는 돈이 궁했다. ‘생계가 먼저지’라는 누군가의 쓴소리가 귀에 달게 들렸다. 일하러 가기 전에 조금만 더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어쨌든 그 일만은 하지 않겠다고 피했던 어제의 직업을 십 년 만에 다시 해 보겠다며. 교육 일정을 받아놓았다. 자격증 공부를 접었다. 학교는 휴학했다. 일 하면 배우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수필 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그만두려던 줌바 댄스는 제일 앞줄에서 자리를 옮겼다. 거울도 잘 보이지 않는 버려진 것만 같은 구석 자리에 서서 처음처럼 다시 시작했다.      


 오늘 하루만큼만 살자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오늘 만나는 딱 한 사람에게만은 다정해보자고.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아도 억지로 한 사람에게만은 인사를 했다. 효율적이게 살던 일상을 짓뭉개 버렸다. 천천히 그릇을 씻고, 느긋하게 공원을 돌았다. 재즈를 듣고, 노트에 메모했다. 밥 먹듯이 쓰던 글쓰기는 도저히 어려운 일이 돼 버려서 정신없이 노트에 휘갈겨 썼다. 수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글들을 써냈는데. 일주일에 한 편 정도의 글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그 말들을 다시 컴퓨터로 받아 적었다. 그런 하루들이 켜켜이 쌓여 들더니 훌쩍 한 달이 넘어 버렸다. 

  사람을 피해 다니던 내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누볐다. 바람에 살랑이는 나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난간 위에 호기심이 넘쳐나듯 담을 넘어서려는 탐스러운 붉은 장미들의 향기를 맡기 시작했을 때 다시 건강한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는 아이를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보란 듯이 퍼질러 앉아 뽀얀 구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눈으로 살피었다. 여전히 짙붉은 장미가 넘실대는 오후의 풍경. 하늘에 걸린 전깃줄마저 예쁘게 보이는 봄날의 마법. 나를 보며 달려오는 아이를 보니 입꼬리가 춤을 춘다. 내 허리를 두르는 고사리 같은 손을 맞잡으니 이게 행복인가 싶었다. 


 낮에는 땀을 있는 대로 흘리며 줌바 댄스를 췄고, 친구 아가의 옹알이를 배부르게 들었다. 친구는 시금치 나물이며 고추 장아찌에 신선함이 가득한 밥상마저 내게 건넸는데 입안에 맴도는 찰진 밥알들이 살맛을 돋우었다.




      

성스러운 무언가를 찾는 인생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성스럽게 만드는 인생을 사는 것이 내 목표다
-박웅현 저 문장과 순간 중에서-

     

나 역시 첫 문구처럼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다. 관계, 일, 성장이라는 것에 목적을 두고 더 나은 일은 뭐가 있을까 잠시도 멈출 수 없는 날들을 보내왔다. 정지하면 큰 일 날 것만 같아서. 초라한 내 인생이 가여워서 그만둘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서도 앞만 보며 달렸다. 

     

 삶이란 좋다가도 한 번씩은 가혹하리만치 무너뜨린다. 잔잔한 날들에 꼭 파도가 몰아치기 마련. 그럴 때 이제는 손에 쥔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다. 더하는 일상보다 있는 것으로 성의를 다하는 날들을 보낸다. 넘치려 하지 않고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한다. 흐물거리는 정신과 육체를 지니고 하루를 보낸다. 초라한 날들 속에서는 작은 것에도 감탄하게 된다. 나를 찾아주는 옛 친구의 목소리가 정겹다. 아이들을 안을 때 느껴지는 살 내음에 마음이 몰캉해진다. 하늘빛이 눈부시고 작은 풀꽃 하나마저도 성스럽다. 길 고양이마저 친근하게 여겨지는 마법의 순간들.


가진 것을 잃어본 경험들은 일상의 작은 순간을 감사함으로 맞이하게 든다.      


그러니 크고 멋진 것들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일상을 잘 살아야겠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 수많을 날들 가운데서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하루 동안 해 내야 할 것들에 정성을 다하려 한다. 그 일 또한 잘 풀리지 않으면 뭐 어떤가. 그런 날은 한 가지만 잘해도 다 괜찮은 날이라 여기려 한다. 이불을 스스로 개키는 것. 몸을 씻고 내 단장을 하는 것. 주변이라도 잘 정리하려는 마음처럼 작은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주어진 일을 성의 있게 이어나가는 것. 그것들이 모여서 내 일상이 되고 삶이 다져지는 게 아닐까.      

 오늘도 그런 하루를 맞으려 한다. 더 하지도 넘치지 않는 날. 기름기를 쫙 뺀 하루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을 것. 일상이 성스러워지는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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