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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Sep 28. 2023

자기 확신을 가지는 방법

나는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는 사람 중의 하나다. 


슬프고, 외롭고, 우울하다. 즐겁고 활기차며 기쁘고 행복하다. 때론 민망하며 서운하고 어떤 때는 아쉽고 심지어 억울함을 느낄 때도 있다. 무기력함을 느꼈다가 편안해지고 충만함을 느끼기도 한다. 

예민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사람이기에 어떤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나의 감정이 누군가 에게 지지를 얻고 공감을 받았으면 좋았으련만.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하니'라는 말을 집에서도 밖에서도 종종 듣고 다녔다. 그런 날들이 자꾸 보태지니 나는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말을 해 봤자 그냥 넘어가라는 그 말들로 마음 아픈 날이 많았으니. 


나는 둥근 사람이 되려 무던히 노력했다. 툭 튀어나와 있던 나의 모습들을 둥글게 갈고닦으리라. 그게 한동안 내 인생 과제였던 것 같다. 무던한 사람이 되는 것. 예민함을 버리는 것.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하나 둘 내게 성격 좋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더욱 인정이라도 받고 싶었는지 나는 둥근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에 매달렸다. 

점점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더라. 나는 수더분한 사람이 되었으니. 나조차 스스로를 그리 알고 살았으니. 대신 생각지 못한 복병이 하나 있었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을 두고 느끼는 감정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남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상황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맞는 거 같냐고.’ 다들 친절하게 답도 잘해줬다. 대신 아무도 그런 말은 안 해줬다. 


“네 감정인데. 그렇게 느끼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감정을 넘어서서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것에, 부당한 일 앞에서도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 자격에,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원래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 아니야' 하고 합리화하며 살아지던 어제. 나는 마음에 병이 났다. 내가 해결하고 결정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 육아라는 산을 만나 크게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일들이 벅찼다.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아이가 어찌 잘못 크지 않을까 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육아의 버거움은 몸에도 마음에도 찾아왔다. 나는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설핏 들기도 했는데 이렇게 돌이켜보니 육아로 인한 번아웃이 왔었나 보다. 너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이상과 뜻대로 안 되는 현실 속에 자주 무너졌다. 


그렇게 견디다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아이에게 불같이 화내고 욱하는 감정을 종잡을 수 없었다. 거기서 상담사 선생님은 처음 듣는 말을 했다. 


“왜 다른 사람이 다 그렇게 참고 산다고 생각해요?”


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처럼 맞춰 살고 참고 살고 버티고 견디는 줄로만 알았다. 내 감정에 확신을 가지는 일 따위는 별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왜 남들도 그렇다고만 생각하고 남의 기준에 중심을 두고 살았던 걸까. 나는 왜 그렇게 내 감정과 행동에 확신이 없었던 걸까. 왜 매일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은 정답이 있을 거라 생각할까. 답을 주는 그 사람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자주 읽고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느낀 나만의 생각을 두서없이 쓰기 시작했다. 남의 말에 픽하고 쓰러지던 내가 독서를 하며 생각이란 것을 하고 글을 쓰니 자기주장을 작게나마 하기 시작했다. 내 견해라는 것이 조금씩 생겨난 거다.

그렇게 생긴 작은 뚝심으로 사회가 주변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던 삶을 살아내며 칭찬받던 날들을 내려놓고 조금씩 내 일상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혼자서 조금씩 걷고, 독서모임에 들어가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살림을 생각한다 중고 옷을 사 입기 시작했는데 쇼핑은 혼자 할 때가 많았다. 혼자 쇼핑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데 영향을 주더라. 나만의 스타일이 생기니 누군가 내 외모를 판단하는 일에 흔들림이 적었다. 얼굴 좋아 보인다는 말 한마디에 살을 빼기 시작한 나로서는 아주 큰 변화였다.

다른 사람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던 내가 하나 둘 나만의 취향으로 작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오로지 나 스스로 결정한 일들이었다. 책에서 사람에게서 조언을 듣고 실천한 것들도 많지만 선택은 내 몫이었다. 


나는 점점 더 내 감정에 확신이 생겼다. 너무 황당한 일은 아직 의견을 물을 때도 있지만 내 몸과 마음의 반응에 더 무게를 두고 다음 취할 행동을 결정한다. 무례하고 이기적이고 너무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가 생각한 가치관의 선을 밟은 이에게 내 의견을 말할 용기를 낸다.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는 걸까 두렵기도 하지만 결과까지 내가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어긋났다면 다시 수정하면 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모든 게 완벽하게 내 뜻대로 흐를 수 없다는 것을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선택하고 책임지며 행동하는 것으로 인생을 배워 나간다는 것을. 실패는 더 나은 일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내 확신대로 살아가며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거기에 따른 책임도 내가 지는 것이다. 그런 행동의 순환들이 나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더 이상 완벽을 바라는 나는 없다고. 그 벽을 깨부수니 삶에 대한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망해도 내 그릇이 거기 까지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릇도 깨지는 시간들이 있어야 다음 작품은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Unsplash의Riho Kitag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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