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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23. 2023

취업의 하수

나는 인생의 어떤 영역에서 하수인 부분이 세 가지 있다. 

인간관계, 감정을 다루는 것, 또 하나는 취업.

인간관계와 감정을 다루는 부분에서 하수라면 그것도 곤란한 일인데 이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된 영역이 바로 취업이었다. 일은 일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꼬이고 일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을 처리하는 것도 일에 대한 몫이었다. 아쉽게도 난 이 두 가지 영역에서 모두 하수다. 그런 내가 과연 다시 취업을 하는 게 쉽기나 할까. 


알바 몬, 알바 천국등을 비롯해 워크 넷, 잡 코리아, 인크루트 등 구인 사이트를 시시때때로 돌아다녔다. 나는 이것저것들을 눈여겨보았는데 내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찍 퇴근해서 아이와 함께하는 근무시간대를 원했는데. 그런 내 입맛에 맞는 시간대의 일은 잘 없었다. 이전 직업 말고는 할 수 있겠다 싶은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가장 쉬운 일을 골라보자고 생각했는데. 구인 사이트를 볼수록 눈앞이 깜깜해지고 호흡이 가빠왔다. 


일을 하기 싫어서 그런 걸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런 걸까. 

이 두 가지 이유 모두 아니었다. 


나는 일이 무서웠다. 


애를 낳으러 갈 때도 무서워서 온몸이 달달 떨리더니 취업도 마찬가지였다. 10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하려니 너무 두려웠다. 욕을 먹을까 봐 겁나고 제대로 주문도 받지 못할 까봐 겁이 났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간에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났다. 20살부터 고깃집 알바를 시작으로 여러 일들을 전전해 왔는데도 말이다. 













10년 동안 육아에 매여 최선을 다해 엄마 노릇을 했더니만 세상에 나가려니 멍청이가 된 느낌이었다. 다른 엄마들은 씩씩하게 일을 잘도 시작하던데. 나는 왜 그렇게 무섭고 두렵고 자꾸 도망만 가고 싶을까. 그러니 이런 나에게 취업 하수라는 말을 쓸 수밖에.



다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데, 나는 절대 할 수 없다고 속으로 돼 받아치고 있었다. 


근데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10년 동안 최선을 다해 엄마 노릇했다고. 이제껏 취미를 배울 때도 논다고 생각하며 한 적 없다고. 이 모든 것들이 다 나의 업과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행한 것이라고.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 온 것들이 허다한데 내가 제일 못하는 일이 돈 버는 것이었으니. 

허투루 살지 않았는데.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내 두 번째 업을 찾으리라 마음먹으며 시간을 보내왔는데. 나의 과거도 다 그저 그런 핑계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구인 활동을 했다. 시간이 비면 도서관에 가서 진로와 적성 취업에 관한 책들을 잔뜩 읽었다. 구직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취업 집단 상담도 들었다. 면접을 봤고 근무가 가능한지 묻기도 했는데 야간에 출근할 수도 있다는 말에 같이 일하는 게 어렵겠다 말했다. 남편도 당직을 교대로 서는 데 아이들을 두고 나마저 야간 근무를 간다는 건 이제껏 집에서 아이를 돌봤던 나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수록 진이 빠졌다. 남편에게 일주일만 구직활동을 쉬어 보겠다고 말했다. 일을 구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만 휴식을 취하겠다는 거였다. 

내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취업 생각만 자꾸 하다 보니 잠을 설치고 5일 동안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지독한 변비에 걸렸다. 자주 머리가 아프고, 우울했고 사람 만나기도 싫고 그 좋아하던 넷플릭스도 흥미를 잃었다. 잠시만 쉬어 가겠다고 남편에게 말한 뒤, 나는 취업에 대한 미련을 일주일 간 내려놓았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쉬는 것이라. 그런 마음으로 차를 한 잔 마시러 가는데 버스 창문밖으로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순간 마음이 찡했다. 우리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당신이 그렇게 고생을 한다는 게 실감이 나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더 이상 취업 하수로서 구인을 포기한 채로 살아갈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이제껏 돈을 적게 벌더라도 잇몸으로 사는 법을 배웠는데. 이제 두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나니 잇몸도 닳더라. 


돈을 위해서만 일하랴.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이 두려움을 꽁꽁 싸매어 내 던져 버리고 새롭고 활기찬 날들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내 곁에서 점점 독립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때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그걸 채워 주려니 돈도 부족하다. 이젠 내가 용기를 낼 차례다. 다만 하루아침에 용기 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깐. 남편에게 구직활동을 할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말했다. 잇몸으로 살아온 근성으로 조금만 버티고 내가 일 할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조금 만 더 벌자고 진지하게 부탁했다.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취업 하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성공을 위해선 침대부터 정리해라고 했지. 

작은 성공을 늘리면 자존감도 늘 수 있지 않을까.

자존감이 단단해지면 이 취업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물러가지 않을까.


내게 남겨진 시간은 2개월 남짓.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취업의 고수는 못되더라도 하수는 탈출하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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