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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Apr 26. 2023

삶을 배우는 글쓰기 수업

수필이란 것을 배우는 요즘, 글을 쓰는 것이 예전보다 두렵다. 내 감정을 발산하는 글을 써왔던 어제였다. 거를 게 없었고, 속에 웅크려진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죄다 꺼내놓기 시작했다. 신세를 한탄하는 글이 많았고, 다른 이를 탓하는 말들이 널 부러졌었다. 마음을 맑고 단정하게 하는 글을 쓰는 것이 수필이라니 배울수록 고개가 무거워진다.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글을 써왔던 것일까. 어떤 태도를 지표 삼아.


일주일에 한 번 서로 글을 읽으며 합평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도 두어 번쯤 선생님과 글벗님들께 내 글을 선보였다. 먼저 낭독을 하고 난 뒤 누군가 이야기를 보태었다. 선생님이 개선하면 좋았을 내용을 마저 언급하셨다. 내 글이 그 과정을 거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댔다. 또랑또랑 하게 글도 읽고 싶지만 어쩐지 차례가 되면 염소처럼 목소리마저 떨리고 말았다. 가뿐한 숨을 글을 읽는 사이마다 내쉬었다. 그토록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쓴 글을 읽어나갔건만 어떤 글을 적었던지 멍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고개를 푹 숙일 그때, 글벗님이 글 속 ‘그날’에 대한 내용이 조금만 더 상세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반복되는 문구를 삼가고, 시제를 하나로 통일하라 말씀하셨다. ‘내가, 나는’이라는 말이 너무 많다며 그것을 덜어 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셨다. 시험 치고 성적표를 기다리던 학생처럼 쫄깃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 들었다. 이 정도의 의견을 들었다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들끓는 상상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미가 없어서 되겠습니까. 글이 너무 깁니다. 주제가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등등등.

글에 대한 평가를 받는 수업 이란 것을 알았기에 진작에 글을 써왔으면서도 보이지 말까 몇 번을 고민했다. 어떤 말을 들을지 그것이 참말 두려웠다.


이제까지는 내가 만족하는 글을 쓰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합평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글을 자꾸만 쓰다 보니 욕심도 났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나만 만족하는 글이 아니길 바란다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글도 되었으면 한다며. 내 삶도 글로 인해 빛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움츠린 어깨가 조금은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글로 인해 세상 속으로 스미고 싶다 여겼다. 그렇게 혼자에서 함께 가 되고 싶다며. 그 구실을 글이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바랐다. 그런 마음들을 속에 간직하고 글 배우는 시간을 선택했다. 점점 내 글을 읽어주는 이들이 사라진다 느끼는 순간, 글 쓰는 일에 자신감도 더러 없어지는 날들이었다. 글 쓰는 일은 이제 그만할까 싶은 마음도 한 편에 들었던 날. 수필 배우는 일은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내려주는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글 쓰는 일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구나 깨닫는 요즘, 수업을 듣는 이 순간은 인생을 배우는 시간과도 같다.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자리. 그 속에 조각처럼 끼여져 가는 나를 만난다. 누군가에게 글로써 내 속의 것을 내보이고, 그것을 더듬어 다시 나를 만난다. 때론 평가받는 일들도 생기지만 어제의 나처럼 더 이상 그 말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지 않다. 외려 다양한 말들로 인해 마음이 무뎌지고 단단해지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가는 말들을 어떤 태도로 품에 안느냐에 따라 그것은 독도 되고 빛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글을 배우며 삶을 만나는 오늘. 나서길 참 잘했다며 수업 첫 시간, 나를 소개하며 읊었던 말을 다시 되뇌어 본다.


“요즘 마음이 개미만큼 작아졌어요. 글 배우는 시간을 통해서 땅속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벌써 깜깜한 땅속 세상에 빛 한 모금은 자리하는 느낌이다.


© federicorespin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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