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게 취업 준비를 하면 좋으련만. 내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서 내게 맞는 일을 찾아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로 마감시한도 정해 놓았다.
누군가는 그냥 일을 해버리면 너는 할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내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실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어마 무시했다. 나는 작은 징검다리를 지나 이 물살을 건널 필요가 있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도 신청서를 냈지만 그 순번만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적어도 한 달이나 걸린다던데. 또 책상에 앉아 시간만 타이를 순 없었다.
나는 삶의 다양한 힌트를 드라마에서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어쩌다 보게 된 ‘마인드 유어 매너’라는 리얼리티 드라마. 거기서 나와 똑 닮은 의뢰인이 등장했다.
10년 동안 아이를 삶의 최우선 가치로 둔 그녀는 이제 점점 자신의 입지가 좁아짐을 느꼈다.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커 갈수록 내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세상에 나가기 전에 제대로 된 매너를 배워서 더 나은 모습이 되어 자신감 있게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일을 펼쳐내는 엄마로서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패션에 매우 관심 있었다. 지역 내의 스타일링 대회에서 몇 차례 선발될 정도로 옷 입기에 자신 있었던 그녀. 그녀를 가르치던 에티켓 강사인 사라 제인호는 일을 하기 전 역량을 알아보기에 좋은 것이 봉사활동이라 말했다. 그 말대로 의뢰인은 비영리단체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스타일링을 돕는다. 이 활동을 통해 그녀의 눈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화면을 보고 알았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 화면이 생각 나 나도 봉사활동에 자원하게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원치 않는 무급은 열받지만 좋은 의미에서 자원봉사는 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봉사는 노인 복지관이었다. 어르신들이 점심을 기다리는 사이에 치매 체조를 알려드리는 것이었다. 워낙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집에서 트롯에 맞춰 유튜브를 보고 치매체조를 미리 따라 했는데 어르신들 앞에서 하는 일은 엄두가 안 났다. 다행히 그날은 활동보조라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다음번이 문제였다. 혼자 할 수도 있다니 또다시 겁이 났다. 그러다 내 두려움에 대해 질문을 걸었다.
뭐가 또 그렇게 두려운데
준비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치매체조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닌데 그걸 알려드리려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든 것이다. 하나하나 가볍게 알아가며 알려드려도 좋을 테지만 내 완벽 주의적인 기질이 그걸 못마땅해했다. 차라리 베이킹 같은 걸 가르쳐 드리라면 더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두려운 이 마음이 핑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 적성 책에서도 그러지 않든. 잘하고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마음도 필요하다고. 그것 또한 내 적성에 맞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앞에서 혼자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복지관에 말씀드리고 다음 봉사처를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노인복지관에서 설문지 조사를 돕는 일이었다.
70, 80대 어르신들이 주로 계신 그곳에서 나는 어르신들의 눈과 손이 되어 드렸다. 혼자 작성할 줄 아는 분들도 계셨지만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거나 문항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계셨다. 어르신들을 대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나의 할머니가 떠올라서 하나라도 더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특히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호응도가 좋아서 이런 지원사업들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된 것도 좋았다.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사람들을 만나서 기운도 나며 긍정적이게 변화되었다고 설문지에 작성하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괜찮은 사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봉사활동을 가기 전 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긴장되고 그냥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일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될 건지 따져 묻기도 했다. 적성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과연 마땅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봉사를 하고 나서의 나의 마음은 뿌듯함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을 대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함께 대화를 나눠보니 편안하다는 것도 신기했다. 아마도 할머니, 왕할머니와 오래 함께 살았던 내 유년의 기억들도 한몫을 했으리라. 내가 취업을 할 때 도움드릴 대상자가 어르신들이 돼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봉사를 하면서 하게 되었다. 누군갈 돕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도 봉사활동을 해보지 않았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일 하기 전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나를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이 봉사가 웬 말이냐며. 다 나의 상황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해보고 싶었다. 도무지 일 하기 위한 마음가짐이 안되어 있는데. 일을 하러 오라고 해도 도망가고 싶을 만큼 10년의 사회생활 단절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내가 나를 깨 버릴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내 뜻대로 해보고 싶었다. 주위에 피해를 거의 입히지 않는 선에서 용기를 키울 마감기한을 잡자.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꾸준히 배우고 봉사활동을 할 작정이다.
이 시간 끝에 어떤 모습으로 변해서 스스로를 맞이할지.
나의 모습이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