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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Nov 18. 2024

쎈 언니가 되고 싶어서(아령은 거들뿐)


아령을 집어 든지 꼭 3개월 되었다.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만 하다 요가는 며칠 만에 때려치우고, 수영도 한두 번 가다가 흥미가 식어버렸다. 

이사 온 아파트에 몇 달 동안 무료로 헬스장을 운영한다는데 집에 대한 이자를 은행에 고스란히 받치는 나로서는 이런 혜택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집에 있는 운동화를 대충 신고 쫄레쫄레 헬스의 세계로 입문했다. 



큰 단지에 살다 오신 분들에겐 헬스장의 기구가 적니 안 좋니 불평이 새어 나왔지만 아파트 안에 헬스장이란 걸 처음 본 나로서는 모든 게 대 만족이었다. 남들은 별로라고 말을 하든가 말든가 내게는 공짜로 이게 어디야라며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장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러닝머신 위를 오래 걷는 건 아무래도 지겨워서 헬스기구들을 하나 둘 탐방하기 시작했다. 기구의 표면에 부착된 사용방법대로 어설프게 동작을 이어나가던 찰나 언니는 "유튜브 보면 다나와" 하고 훈수를 던지더라. 

유튜브 영상도 시청하고 도서관에 가서 헬스에 관한 책들도 몇 권 빌려서 대충이나마 기구 사용하는 방법을 숙지했다. 그러다 쇼츠로 아령 드는 법을 보게 된 것이다. '어라 이 정도 들어 올리는 거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그리고 아령을 들기 시작했다.



기구를 다루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게 아령을 들고 운동하는 거였다. 무거운 걸 들면 좀 더 폼 나보일텐데. 4킬로짜리 아령을 들고 설쳐대는 나지만 들고 이는 맛이 있다. 뭔가 아령을 들어 올리면 내 알통들이 돋아나는 느낌마저 들더라. 

어깨 뒤 근육은 거울로 차마 잘 안 보여서 자세히 살피진 못했지만 어쨌든 어제보다는 화가 난 듯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아저씨들이 왜 의자에 정지된 자세로 앉아 그렇게 아령을 들고 팔을 굽히고들 있는지, 왜 '윽, 윽 소리를 내는지 아령을 들수록 나는 알 것만 같았다. 화장실에서 나시를 입고 양쪽 팔근육에 힘을 줄 때면 알통이 돋아나더라. 그런 모습을 보고 웃고 있는 나를  남편이 보고 "니 뭐 하는데?" 하며 어이없어 했지만 진심으로 뿌듯했다. 돋아난 내 근육들이 참 기특하더라. 그러니 자꾸만 나도 의자에 앉아 아령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윽윽 소리를 내며 힘들어도 이것만 더 하며 아령을 들어 올렸다.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던 날, 뭔가 마음이 작아지는 날에는 아령을 더 들어 올렸다. 윤미래나 비비가 함께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노랫말 속에 간간이 들리는 "가서 조지라." 하는 말에 더 기운을 받아 근력운동을 했다. 다듀 오빠들의 "스모크"도 헬스하던 중에 자주 듣던 노래인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해도 스모크를 들을 때면 다듀 오빠들의 기운이 내게도 실렸다. '아무도 내 안 본다, 이 동작만 더 해야지' 하는 마음들이 새어져 나왔지. 



그렇게 운동을 하고 일하러 가면 작아지던 어깨가 조금은 펴지는 것 같더라. 몸쓰는 일을 할 때도 확실히 가뿐했다. 누구한테 내 알통을 보여 주려 팔뚝을 걷어 올릴 수는 없었으나 내 자잔 한 근육들에 힘이 실린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무거운 짐도 대범하게 날랐다. '기간제근로자'로 알게 모르게 구분될 때마다 굵게 서러울 것도 짧게 서운해지더라. 이게 다 알통의 힘이 아닐는지. 

근육들이 단단해질수록 요가의 버티는 동작도 가볍고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를 때도 다리에 힘이 실렸다. 아령을 들 때는 잘 몰랐는데 근육이 자란다는 것은 일상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센 언니가 되고 싶었다. 어린 날 집안이 가난할 땐 누구에게도 내 사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순박하고 착하게 생겼다는 소리를 도돌이표처럼 들었던 나는 내 사는 모습들이 지긋지긋했다. 가난하다고 순하다고 만만하게 보는가 싶어서 그들을 무찌르고 싶었다. 그렇게 눈썹 칼로 여기 눈썹이 있긴 하구나 느낄 수만 있을 정도로 얄쌉하게  밀어버렸다. 


거울로 보이는 내 모습에 만족해했다. 

이제야 센 언니로 보이는 거 같아서. 


애들 친구 엄마가 나를 무시한다고 여겨질 때는 열 손톱에 검은 매니큐어를 다 발라버렸다. '나도 애 엄마라고요. 나 성인이라고요. 나 당신보다 어리지만 친구 아니라고요. 한 아이의 엄마로서 대해달라고요.'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없던 날 열 손톱에 검은 물을 들여 나를 건들지 말라고 영역 표시를 했다. 부드럽게 단호하게 말로 했음 참 좋았으련만 그럴 용기는 없던 나에게 검은 매니큐어는 의외로 힘이 되더라. 






 



어쩌면 아령을 들게 된 이유도 센 언니가 되고 싶었기에 그런게 아닐까. 누구는 '기간제라고 불리든 아무 상관 안 한다'는 말로 퉁쳐 버렸지만 나 홀로 느끼는 기간제 근로자, 계약직의 서글픔이 있더라. 일부러 구분 짓지 않아도 내 속에서 울컥거릴 때가 있더라. 그런 날 더 빡세게 운동했다. 근육들을 화가 나게 만들면서 내 마음을 더 단호하게 만들었다. 


기간제라는 그 이름표가 내 전부는 아니라고. 이렇게 일할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나를 구분 짓는 그 사람이 이상한 거라고. 나는 이렇게 운동도 하며 열심히 살고 있지 않냐고. 

근육이 자라날수록(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마음도 자라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 힘이 자라니 그게 더 기특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아령을 들수록 알통에 센 언니 기운이 가득 고였다.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헬스인이 되어간다.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센 언니로 자라나려고. 

몸도 마음도 넘어져도 우뚝 일어설 수 있는. 그렇게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인생의 센 언니가 진짜 되어보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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