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갭이어를 시작하기까지
두려운 내게 제일 도움 안 되는 말, 야!! 너두 할 수 있어.
수없이 많이 들었다. 야, 너두 할 수 있다는 거. 일을 시작도 못하겠다던 내게 친구도 그랬고, 남편도 그랬으며 엄마마저 그랬다.
“니가 뭐시 못나서 못한다 말이고.(엄마 저 지지리도 못났습니다) 남도 다 하는데 니도 할 수 있다카이.(남은 그렇다 치고 나는 못해요)그기 뭣이라꼬.”(저한테는 아주 큰 일이에요)
남편은 그랬다. 일만 시작하면 지금 이 걱정 다 해결될 거라고.
(니랑 내랑 같나? 스케일링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자리에서 가는 사람이. 내는 이빨 뽑을라 해도 겁나서 몇 달은 고민해야 할 수 있다고)
시작만 하면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남편에게 들을 때마다 내 속에서 불거져 나온 속마음들.
무서워서 스케일링을 몇 년 만에 한 적 있다. 어린애들 둘을 키운다고 치과 갈 시간이 없다고 남편에게 변명하던 그 찰나, 잇몸에선 자꾸만 피가 났다. 이도 시리고 도저히 이대로 두면 성한 치아가 없을 것 같아서 치과를 내 발로 찾아갔다.
부끄럽지만 4년 만이었다.
누구는 6개월 만에도 한다는 것을 나는 겁이 나 하기까지 몇 년씩이나 걸린 거다. 하필 그 치과는 마취연고나 마취 가글도 건네지 않았다. 4년 동안 묵혀놓은 치석을 마취도 없이 쌩으로 갈고리로 하나하나 뜯을 때 좀 과장을 더해 잇몸을 뚫고 새로운 치아들이 태어나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얼음처럼 온몸이 굳었다가 이를 헹구는 사이 부르르 떨었다. 다시 드러누워 스케일링을 받는 데 눈물도 찔끔 흘러나왔다.
과연 스케일링이란 이렇게 아픈 것일까? 이러니깐 내가 치과에 안 왔지. 다하고 나선 속이 시원했지만 그날의 공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일하는 것도 그랬다. 마음 고생할 일이 생각나 진즉에 겁을 먹어버렸다.
병원에서 일할 때 일머리 없다고 욕먹은 적이 많았다. 그 시간을 또 반복한다는 것은 떠올리는 것조차 아찔했다. 얼마나 매운맛인 줄 아니깐. 게다가 십 년이나 쉬었는데 안 돌아가던 머리가 기름칠 잘 된 것처럼 능숙하게 돌아갈까? 말도 안 된다. 더 삐걱거리기만 할 거야. 자꾸만 마음은 저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매일 같이 비관적인 상상만 하니 일상 누리는 것도 힘에 부쳤다. 하루에 재미있는 일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나 같은 애한테 일이란 것은 시작도 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었다.
한창 연애할 때 일 마치고 병원문을 나선 뒤 나를 기다렸던 지금의 남편님에게 하소연하노라 바빴다. 심지어 나는 일 얘기를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의사가 나보고 참 안 됐데. 진짜 열심히 하는데 일이 진짜 안 는다고.”
그래, 실은 그 말은 선배에게 똑같이 들은 적도 있다. 일을 그만두는 날 지금은 안부조차 모르겠는 동기도 그랬다.
“언니는 이 직업이 안 어울려,” (망할 것)
그런 말을 자주 듣고 지내다 일을 그만뒀는데. 다시 이 일을 또 시작하라고? 한숨만 절로 나왔다. 일이 하기 싫고 계속 집에 있고만 싶다는 게 아니라(실은 그런 마음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진짜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니가 내 마음을 아나? 니는 일 잘했다이가. 일 못하는 사람이 겪는 서러움을 니가 아나?'
남편에게 몇백 번 말한들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이자가 꼬박꼬박 나갈 그날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행히 영끌해서 청약한 집이 완공되려면 일 년은 조금 남았으니깐. 그동안 남편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이자 감당 못하면 이사 못 가는 거 나도 아니깐. 일은 꼭 할 거니깐. 나도 집에만 있는 거 지긋지긋하니깐. 근데 마음부터 좀 다스려 놓자고. 나 진짜 무서워 죽겠어서 일하러 못 가겠다고.
시간을 조금만 주면 내가 일하러 갈 채비를 해 놓겠노라.
그렇게 남편과 약속했다.
남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못 하겠니라는 말들을 주변이들에게 종종 듣겠지만 나는 그래도 이 시간을 견디기로 했다. '나는 일 시작하는 게 무서워죽겠는데 왜 아무도 나 같은 사람은 주변에 없을까.' 겁 많은 내가 참말 못나게도 느껴졌지만 이렇게 생니를 스케일링하듯이 세월에 묵은 나를 바로 벗겨내기만 할 순 없다고. 최소한 마취 가글할 만큼의 마음 정도는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니겠냐고.
남들은 바로 일하러 가도 나는 죽어도 지금은 못한다고. 그렇게 작디작은 마음에 코딱지만 한 불이라도 지펴보고자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이른 바 엄마의 갭이어라며 내 멋대로 이 기회의 시간에 이름을 붙인 채로.
그렇게 일 년 남짓한 날들이 선물처럼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