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건축학도 시절, 표현기법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자잘한 과제가 많았던 수업이다. 하루는 어떤 ‘느낌’을 주는 공간을 모형으로 만들어야 했다.
나는 전날 밤, 하얀 우드락으로 열차 두 칸 정도를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 위엔 수많은 일자 보를 만들어 올렸다. 다음날, 공과대 앞마당 따가운 햇살 아래 내 모형이 놓였다. 벽안에 검고 긴 그림자가 수십 개나 드리워졌다. 교수님이 다가오셨다.
“저는 그로테스크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그로테스크해요?”
앗. 나는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몰랐다. ‘괴상하고 이상하다’는 뜻인 건 지금 알지만, 그땐 독서를 통해 알게 된 막연한 느낌만으로 던졌다. 마치 회심의 카드처럼. 그런데 내 모형이 왜 그로테스크한지 말할 준비도 안 돼 있었다. 준비해야겠단 생각도 못했다. 그저 그럴싸한 단어를 내뱉고 싶던 내 지적허영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때 난 “저는 이게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숭덩숭덩 얼버무리고 발표를 끝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벌써 15년도 넘은 얘기다.
이후로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는 내 '발작버튼'이 되고 말았다. 어디선가 그 단어를 듣기라도 하면 안테나를 빳빳이 세웠다. 강박과 부끄러움이 나를 이토록 오래 골려먹을 줄은 몰랐다.
그러다 오늘,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듀오 ‘슬기의 민’의 인터뷰를 봤다. 그들은 산리오의 귀여운 캐릭터가 가진 위화감을 ‘그로테스크하다’고 정의했다. 나는 그 순간 놀랐고, 반가웠고, 이름 모를 해방감까지 느꼈다.
아, 내가 정의하지 못했던 감각을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감각도 정당한 것이었구나. 나는 그저 이렇게 설명할 수 없었을 뿐이었구나. 나를 알아준 것도 아닌데 나를 알아준 느낌이었다.
우연히 본 인터뷰가 내 묵은 부끄러움을 밀어 벗겨주었다. 시원했다.
생각해 보면, 단어가 되지 않은 감각은 결국 힘을 잃고 만다. 나아가 묵살당하고 때론 억울함마저 남긴다. 우리가 사람인 이상 느끼는 들은 크게 다르진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특히 "정의되지 않은 것"을 꺼린다. 약한 목소리에 귀를 잘 열어주지 않는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이다. 능력주의 앞에서 객관화되지 않은 감각들이 어떻게 돌봐지랴.
교수님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던 감정의 억압을 탓하려고 쓴 글로 시작했지만, 아니다. 이건 내 지적 허영에서 비롯된 패배의 부끄러움에서 해방된 기록이다. 말하자면’ 나의 해방일지’다.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나와 같은 해방의 경험이 있기를 바란다. 명심하자. 해방은 항상 올곧게만 찾아오지 않는다. 스스로 해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때로는 뜻밖의 도움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위에 말한 유튜브 클립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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