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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킨샤사의 어린이 병사

나는 추억 여행을 한다. / 에세이

by 김창수

20여 년 만에 방문한 킨샤사는 조제프 카빌라(Joseph Kabila)가 대통령이 되면서, 개방노선을 취하며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도로 등 인프라가 훨씬 좋아졌을 뿐 아니라, 도시의 색깔이 회색에서 천연색으로 바뀌었고 시민들의 모습이 밝아 보였다. 흑백영화를 질 좋은 칼라 화면으로 보는 듯했다. 거리에 깔려 있던 군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경찰들이 도시의 질서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에서 파리를 경유해 은질리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처음 방문한 곳이라 낯설기도 하지만, 얼마 전 쿠데타로 정국이 혼란한 상황이라 많은 걱정을 했다. 킨샤사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도로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차량은 많이 흔들렸다. 중간에 군 트럭들이 자주 보였고, 군인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하얀 이를 들어내고 지나가는 차량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곳은 며칠 후 로랑 카빌라(Laurent Kabila)가 쿠데타 1주년 기념으로 주변 국가들의 대통령들을 초대해서 성대한 기념행사를 한다고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많은 시민들이 보였으나, 군인들의 숫자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소총을 들고 무장한 군인들 속에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병사들도 보였다. 그들은 키가 작아서 소총을 들지 못하고, 간신히 끌다시피 매고 다녔다.

호텔의 이름은 세계적이었지만, 내부 시설은 오래되어 그동안 묵었던 호텔들에 비해서 초라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시내 전경은 회색 도시였으나, 멀리 보이는 주택가들은 유럽풍의 저택들로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의 빈부 차이가 창문을 통해서 느껴질 정도면 그 실상은 더 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주변에는 군인들이 삼엄한 검문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 온 목적은 신정부와의 대규모 사업을 위한 사전 조사를 위해서였다. 관련 부처들의 장관들이 군복을 입고 있었고, 아직 실무에 밝지 않은 듯 옆에 앉은 직원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결국 상담은 그 직원들과 했고, 장관들은 끝나고 난 후, 악수를 하면서 같이 웃으며 기념 촬영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직 사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현지 상공회의소 회장을 방문하기 위해서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그 지역은 호텔에서 보았던 주택가였다. 당연히 흑인이라 생각했는데, 백인이었다. 이곳은 벨기에가 지배했던 식민지였다. 다이아몬드 등 수많은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아직도 많은 벨기에인들이 이곳의 지하자원의 개발 등을 영국 식민지에서 흘러들어 온 인도인들과 함께 광구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시내로 들어오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바로 옆에서 벌어진 상황이라 고개를 숙였다. 차에 같이 동승한 불어 통역사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현지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준비해 준 방탄차라고 설명해 줬다. 조금 전 상황은 어린 병사가 환전소를 터는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이런 일들은 지방에서도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어제 어린 병사가 긴 총을 끌고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나는 어린이 병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병사가 되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어린 병사의 끔찍한 실태를 고발한 책이다.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에서 콩고 민주공화국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조사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개인의 이익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동원되어, 즐거워야 할 어린 시절을 희생당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통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로랑 카빌라(Laurent Kabila)는 3년 후 측근에 의해 살해되면서, 아들 조제프 카빌라(Joseph Kabila)가 지금까지 콩고 민주공화국을 이끌고 있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내란과 쿠데타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희생당하는 어린이들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타의에 의해서 총을 들어야 하는 더 이상의 어린이 병사들이 정치적 전쟁에 내몰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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