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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디모나의 디아스포라

나는 추억 여행을 한다. / 에세이

by 김창수

텔아비브에서 40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 다시 25번으로 갈아타고 동쪽으로 가다 보면 네게브 사막이 시작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기슭에 가끔씩 가옥들이 보인다. 그들은 아랍어로 사막의 거주민이라고 부르는 베두인(Bedouin)들이다. 중동 여러 지역에 걸쳐 있는 유목민들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서 그들도 정착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25번을 따라 네게브사막의 남동쪽으로 달리면 인구 3만 명 정도의 소도시인 디모나(Dimona)에 도착한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도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도로는 사막에서 불어오는 먼지만 없다면 일반 도시와 다를 바 없다. 더위를 피하려고 2~3층의 하얀색의 복합 주택들이 많고, 가든을 조성해서 더위를 줄였다.

이곳에 온 이유는 이스라엘 최대의 대형 복합발전소를 수주해서 네게브 사막에 건설을 시작하면서였다. 현장은 디모나에서 25번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거대한 네게브 핵연구소를 지나간다. 이란, 이집트 등 주변 중동국가들의 핵개발에 대응하기 위해서 설립한 이곳에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감시카메라가 작동하고 있다. 다시 사해 쪽으로 가다 보면 공사 현장이 나온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디아스포라’(Diaspora)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흩어진 사람들’(이산.離散)이라는 뜻으로 본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2천 년 전 유대인의 이산이 시작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된 직후, 전 세계에 이산 되어 있던 상당수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국토가 협소한 이스라엘은 인구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건국 전후부터 이곳의 수원(水源) 개발 및 농지 개척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대 총리 겸 국방장관인 벤구리온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왔다)은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멀리 떨어진 갈릴리호(湖)에서 송수관으로 물을 끌어들여, 사막 남쪽에 비옥한 농지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농촌 공동체인 키부츠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불러들였다. 러시아에서는 많은 기술자들, 유럽 전역에서도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지식인들 그리고 에티오피아 등 인종에 관계없이 유대인이라는 증명만 되면 이스라엘 국민이 되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키부츠라는 집단생활과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강대국도 무시할 수 없는 지금의 강한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어느 날, 디모나에 많은 한국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네게브 사막에 대형 복합 발전소 건설을 위해서 온 기술자들이다. 동트기 전에 새벽밥을 먹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낯선 곳에서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의 연속이었다. 사막의 모래바람과의 싸움은 이제 그들의 일상이 되었고, 뜨거운 햇살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사막이 식어가는 저녁의 찬 바람을 맞으며 디모나의 숙소로 돌아와 시원한 맥주를 한 번에 들이마시며, 목에 잠겨 있던 모래를 씻어 버렸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그들을 쳐다보면서 위로를 해줬다. 잠자리에 누워 창밖으로 보이는 별을 하나, 둘, 셋 세면서 가족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그들은 꿈속에서 가족과 상봉한다. 또다시 가족과 이별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전소 공사를 하면서 공사 인력 수급 문제, 거대한 장비들의 운송 및 설치 등 기술적인 문제, 그리고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과 날씨 등은 생존의 문제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공사 중단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소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준공식에 많은 이스라엘 정부 각료들이 참석했고,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네게브 핵연구소에 이어 네게브사막의 기적이라고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이제 사라져 가지만, 지금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한국의 ‘디아스포라’는 같은 하늘 아래서 조국을 그리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나라가 없는 설움을 겪어 본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와 또 다른 만주 벌판을 누비고 다녔다. 이제 한국인들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조국이 있기에 자부심과 용기를 가지고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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