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레길을 걷고 있다 / 연작 에세이
나는 이른 새벽 아내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한강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아내와 며칠간의 이별을 뒤로하고 가볍지 않은 배낭을 메었다. 공항 안은 이미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처음 제주도를 갔을 때에는 지금은 김포공항이 국내선 위주로 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민 가는 사람이 많아서 이별의 국제공항이었다. 출국장으로 올라가 체크인을 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가로 하늘을 보았다.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면서 내 몸이 뒤쪽으로 쏠렸다. 창밖으로 김포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옆으로 한강의 물줄기가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작아지면서 구름 사이로 들어갔다. 하늘은 마음의 창이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시선을 쫓다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열리고 편해진다. 나는 지금 그런 하늘에서 떠 있는 구름을 헤쳐나가고 있다.
내가 하늘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처음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였다. 파란 하늘에 낮게 떠가는 뭉게구름이 손에 잡힐 듯했다. 파란색과 하얀색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흐르는 것인지, 구름이 파란 하늘을 색칠해 놓은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호텔 테라스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파란 바다에 떠 있는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늘이 궁금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테라스로 갔다. 떠 있는 하얀 구름이 낮게 깔려 바닷속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소리 없이 흘러가는 구름은 포근했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잊혀가는 사람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친구들이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구름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미래의 하늘이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잠시 추억 속에 빠져 있는 동안 비행기는 제주도에 접근하고 있다. 차창 너머로 오랜만에 온 제주도의 하늘을 만끽하고 있다. 처음 제주도의 하늘을 느꼈던 감정이 쭉 이어졌던 그런 하늘 그대로이다. 구름을 벗어나자, 제주도 해안이 펼쳐졌다. 바다에 배들이 떠 있고, 하얀 물거품은 이빨을 드러낸 채 해안으로 달려간다. 비행기 엔진에서 굉음을 내며 기체가 흔들리더니, 제주공항의 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요즈음 자주 하늘을 본다. 올레길을 걸으며, 고개를 들어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자. 하늘에서 보고 싶은 얼굴들이 나타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자. 잊혔던 얼굴이 보이면 따뜻하게 맞이하자. 행복했던 시절이 파란 하늘에 수를 놓으면, 활짝 웃자. 갑자기 힘들었던 일들이 보이면, 구름으로 덮어 버리자.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나는 지금 올레길의 간세(조랑말)처럼 느리게, 천천히 뚜벅뚜벅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