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비 내리는 바다

나는 올레길을 걷고 있다 / 연작 에세이

by 김창수

나는 외돌개를 뒤로 하고,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며 한적한 해안을 걸어가면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래전, 흑해(Black Sea)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그런 공포감이 다가왔다. 튀르키예어로 ‘Black’은 크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어, 흑해는 큰 바다라는 의미가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의 큰 바다는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닷길에서 배낭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다.

7코스가 해안을 따라 서귀포 앞바다를 볼 수 있어 많은 여행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올레길 코스로 꼽았다는 말에 날씨를 생각하지 못한 나 자신을 후회했다. 인적이 드문 길은 외로움도 따라왔다. 비에 젖은 신발로 들어오는 빗물이 양말로 스며들면서 걸음은 더욱 더디어졌다. 멀리 불빛이 보이면서 길을 재촉했다. 리조트들이 들어선 곳에 있는 편의점에서 추위와 갈증을 덜기 위해 시원한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다시 바다를 보면서 침묵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내가 침묵할 수 있는 시간은 단지 수면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주변의 움직임과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침묵은 저 멀리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침묵과 함께 ‘멍 때리기’를 가끔 하기 시작했다. 지금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며 그렇게 걷고 있다. 마음이 편해졌다. 빗줄기는 조금씩 약해져 갔다.

침묵하고 싶을 때는 산책을 했다. 주변의 풍경을 보며, 걸어가면서 자신과 대화를 했다. ‘인간은 그가 말하는 것에 의해서 보다 침묵하는 것에 의해서 더욱 인간답다.’라는 카뮈의 말이 생각났다. 침묵 속에 해안의 풍광을 보며 걸었다. 어느덧 법환포구에 도착하면서 비가 그쳤다. 잠녀(해녀) 광장에서 배낭의 레인 커버를 제거하고, 우의(雨衣)를 벗었다. 잔잔해진 서귀포 바닷가에 앉아서 ‘멍 때리기’를 했다.


나는 비가 그치면서 변해 가는 바다를 보며 걸었다. 어두운 구름 사이로 햇빛이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다. 잘 정돈된 해안도로에 많은 차가 지나다녔다. 바닷가 쪽과 해안도로 사이에 난 길을 걸으며, 이상과 현실이 공존해서 어느 쪽을 보면서 걸어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두머니물공원에서 도착해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벤치에 앉아 멀리 범섬을 보았다. 옆 기둥에 매달린 올레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저 멀리 제주월드컵경기장이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날씨가 맑아서인지, 도시로 들어와서인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경기장 뒤로 돌아가니, 서귀포 버스터미널 앞에 파란색 간세가 보였다. 첫 도장처럼 꾹 눌러서 도착 스탬프를 찍었다. 내일 가야 할 7-1코스의 고근산이 멀리서 손짓하고 있었다. 내일은 맑은 하늘을 기대해 보았다. 첫날의 올레길은 비 내리는 바닷길을 걷는다고 힘들었지만, 내일의 도전과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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