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16권
<일리아스> 24권 가운데 16권은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1권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되었다면, 16권에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내려놓고 전쟁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돌리게 된다. 16권에서는 아킬레우스가 속마음을 많이 드러내 놓는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친척이다. 파트로클로스는 '아버지의 영광'이란 뜻으로 그의 아버지 메노이티오스(Menoetius)와 아킬레우스의 할아버지 아이아코스(Aeacus)는 아이기나(Aegina)의 아들로 형제간이다
프로테실라오스의 배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파트로클로스가 눈물을 흘리며 아킬레우스를 찾아왔다. 앞의 <일리아스> 15권에서 전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파트로클로스가 간호하던 에우리필로스의 막사에서 나와 아킬레우스에게로 달려갔다. 16권에서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파트로클로스는 절망하여 눈물을 흘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놀린다. 둘은 절친이면서 친척지간이다. 파트로클로스가 나이가 위이다. 그런데도 놀리다니, 아킬레우스의 권세가 막강했던 것이다. "파트로클로스여, 왜 어머니에게 젖 달라고 조르는 계집아이처럼 울고 있습니까? 혹시 고국 프티아(Phthia)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했단 말이요? 우리 아버지 펠레우스와 자네 아버지 메노이티오스(Menoetius)는 생존해 계시는데, 그럼 그리스군이 전세에서 밀려서 그러는 겁니까?" 아킬레우스는 태연하게 말한다.
파트로클로스가 목석같은 인간이라고 아킬레우스를 비난하며 말한다. 11권에서 네스토르 노인이 그에게 시키는 대로 내용을 전한다. "이제 노여움을 거두시오, 아킬레우스여! 동포에게 무서운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디오모데스, 오디세우스, 에우리필로스 이들도 치료를 열심히 치료받고 있는데, 아킬레우스여, 당신의 마음을 치료할 길은 없구려! 유일한 해결책은 당신이 싸움이 참여하는 길뿐입니다. 만일 싸움에 나가지 않으려면, 나에게 뮈르미돈 군대와 당신의 갑옷을 빌려주시오. 그러면 트로이군이 나를 당신으로 착각하고 물러가 우리 동료들이 잠깐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을 테니까."
아킬레우스는 몹시 노여운 어조로 말한다. 파트로클로스에게 화가 나기도 했겠지만, 아가멤논에게 쌓였던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이리라. 자신의 명예의 상징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간 아가멤논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직접 싸움에 나가지는 않겠지만, 파트로클로스가 요청한 대로 뮈르미돈 군대와 자신의 갑옷을 빌려주겠노라고 허락한다. 그 대신 한 가지 신신당부를 한다. 그리스 함선을 지키기 위해서 트로이군을 함대에서 물리치는 일만 하고, 절대로 트로이 성까지 진격하지는 말고 돌아오라고 말한다.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성을 공격하지 말고, 트로이군을 함대에서 몰아내기만 하고 돌아오라는 말이다. 왜? 트로이성을 멸망시키는 것은 아킬레우스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성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내게서 보상을 빼앗는 짓"이라며, '그것은 신들을 화나게 할 것'이라고 아킬레우스가 경고한다. 트로이까지 진격하면 아폴론 신이 반드시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이는 파트로클로스가 아폴론에게 죽임을 당함을 암시한다. 물론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였지만, 사실은 아폴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에게 트로이군을 함선에서 물리칠 뿐, 트로이성까지 공격하지는 말고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적군을 함선으로부터 몰아내거든 절대 트로이성까지 진격하지 말고, 곧 돌아오게. 왜냐하면 그것은 내게서 보상을 빼앗는 짓이니까
트로이 군이 프로테실라오스의 함선에 불을 질러 삽시간에 고물이 화염이 휩싸인다. 함선에 불을 지르는 것이 헥토르의 공격 목표였다. 다 승리했다고 생각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통해서 개입했기 때문이다. 아이아스는 너무 지쳤고, 함선에는 불이 붙었다. 아킬레우스가 무장을 서두르라고 재촉하자, 파트로클로스가 무장을 한다. 정강이받이, 흉갑, 청동 칼, 방패, 투구, 그리고 창 두 자루를 집어 든다. 다른 모든 것은 아킬레우스의 것이지만, 창은 아킬레우스의 것이 아니다. 그 창은 아킬레우스 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시종 아우토메돈(Automedon)이 불멸의 말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를 전차에 매어 준비하도록 지시한다. 곁말 페다소스도 함께 묶었다. 뮈르미돈 군대는 사냥을 하러 나서는 '굶주린 이리 떼' 같았다. 아킬레우스에게는 군함 50척, 배마다 50명씩의 병사와 5명의 장교가 있었다. 이들을 다섯 부대로 나누었다. 각각의 대장은 메네스티오스, 에우도로스, 페이산드로스, 노장 포이닉스까지, 그리고 다섯 번째 알키메돈이 맡았다.
아킬레우스가 뮈르미돈 장병들 앞에 나서서 지시한다. 그들은 그동안 전쟁에 나가 싸워보지 않고 싸움에 굶주려 있었다. "그대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혼전의 대작업이 눈앞에 나타났소. 그러니 모두들 용기를 내어 트로이군과 싸우도록 하시오." 아킬레우스는 제우스에게만 바칠 때 사용하는 특별한 잔에 포도주를 채워 바치면서 기원한다.
파트로클로스에게 승리를 주소서!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소서! 그가 적을 함대에서 몰아내면 즉시로 무사히 돌아오게 하소서.
제우스는 두 가지 기도제목 중에 한 가지만을 들어주었다. 파트로클로스가 적들을 함대에서 몰아내는 것은 허락했으나,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파트로클로스는 군사들 앞에서 아킬레우스를 언급하면서 그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싸우자고 포효한다. 뮈르미돈 군대는 벌집을 막대기로 쑤실 때 일어나는 벌떼처럼 일제히 기습한다.
"뮈르미돈 군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전사들이여! 용맹을 떨치라! 펠레우스 후예의 영광을 빛내자. 그분은 이 군대의 최고의 용장, 그의 부하병은 다시없는 강병! 아가멤논 왕이 사욕에 눈이 멀어 조국의 최대 용장을 모욕한 잘못을 이제 깨닫게 하는 거다!"
트로이군은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참여했다고 생각하고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전세가 뒤집혔다. 뮈르미돈 군대는 '팔랑크스(phalax)' 대형으로 진격한다. 헥토르도 전차를 몰고 후퇴한다. 16권에 2번의 비겁한 행동이 있었는데 그중에 첫 번째이다. 파트로클로스는 참호에 끼인 트로이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파트로클로스가 죽인 사람의 이름들이 길게 나열되어 있다. 프로노스, 데스토르, 에릴라오스, 에리마스, 암포테로스, 에팔테스, 틀레폴레모스, 에키오스, 피리스, 이페우스, 유이포스, 폴리멜로스 등. 파트로클로스의 임무는 끝났다. 함선에서 트로이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트로이 성까지 진격했다.
트로이 군이 후퇴한다.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를 치려하지만 너무 멀리 도주하고 말았다. '저 자가 누구인지 내가 맡겠다. 닥치는 대로 휩쓰는 저자가 누구인지 나는 안다.' 트로이 군을 도륙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여긴 제우스의 아들 사르페돈이 전차에서 내려서 파트로클로스를 상대한다. 제우스는 아들 사르페돈이 죽을 운명임을 이미 알고 그를 구출하려고 고민한다. 곁에 이는 헤라에게 의견을 묻자, 헤라가 단칼에 정리한다. "만일 제우스가 이미 죽을 아들의 운명을 되돌린다면, 올림포스의 다른 신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고, 그들로 똑같이 그렇게 행할 것이다"라고 하며 말린다. 그 대신 아들 사르페돈이 죽은 후에 죽음의 신(타나토스)와 잠의 신(휘프노스) 형제를 보내서 시신을 고향 리키아(Lycia)로 돌려보내 아들을 명예롭게 장례를 치러주자고 제안한다. 제우스는 사랑하는 아들이 죽게 될 것을 애도하며 땅에다 피의 소나기를 퍼부었다.
사르페돈과 페트로클로스가 서로 가까이 다가섰고, 파트로클로스가 사르페돈의 부하 드라시메데스의 아랫배를 공격해서 쓰러뜨렸다. 사르페돈이 창을 던졌으나 맞지 않고 아킬레우스의 말 페다소스의 오른편 어깨에 맞았다. 말은 땅에 쓰러져 허덕이다가 숨을 거두었다. 다른 말들의 멍에가 엉켰다. 아우토메돈이 칼로 봇줄을 잘라 그것을 풀었다. 파트로클로스가 사르페돈의 심장을 찔렀다. 커다란 참나무가 쓰러지듯이 사르페돈이 쓰러졌다. '사자가 죽인 황소와도 같았다.'
사르페돈은 글라우코스에게 용사의 면목을 세워달라며 자기 시체를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파트로클로스가 사르페돈 가슴에 발을 대고 창을 뺐고 횡경막이 따라나왔다. 이미 테우크로스의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은 글라우코스가 사르페돈의 시신을 빼앗기지 않을 힘을 달라고 아폴론에게 기도하자 새 힘이 생겼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지만 의술의 신이기도 하기에 글로우코스를 치유해 준 것이다. 글라우코스가 리키아 장수들을 독려하여 사르페돈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고, 트로이 군 장수들을 불렀다. 폴리다마스, 아게노르, 아이네이아스, 헥토르 등을 불렀다.
헥토르 장군이여, 그대는 동맹군을 잊었습니까? 우리는 그대 때문에 부모, 처자와 친지를 두고 만리타국에 와서 죽음을 무릎 섰는데 우리를 돕지 않으십니까? 사르페돈께서 전사하셨습니다. 그 시체를 지켜주십시오.
연합군으로 트로이에 참여했던 사르페돈의 시신을 지켜달라고 글라우코스가 헥토르에게 호소한다. 파트로클로스도 두 명의 아이아스를 불러 사르페돈의 시신과 갑옷을 빼앗기 위한 양쪽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헥토르는 돌로 에페이게우스를 죽였고, 파트로클로스는 돌로 네테넬라오스를, 글아루코스는 비티클레스를, 메리오네스는 라오고노스를 창으로 죽였다. 중앙에 사르페돈의 시신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제우스는 헥토르를 통하여 파트로클로스를 지금 죽일까, 아니면 트로이 성까지 가게 할까 고민하다가, 헥토르에게 무기력한 마음을 주어서 후퇴하게 한다. 이것이 헥토르의 두 번째 비겁한 행동이었다. 사르페돈의 시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와 흙과 수 없는 창의 상처로 뒤덮여 그를 알아볼 수 없었고, 빛나는 갑옷은 그리스군들이 벗겨갔다. 제우스와 아폴론은 사르페돈의 시신을 씻어서 불멸의 옷을 입혀서 휘프노스(잠의 신)과 타나토스(죽음의 신) 형제에게 시켜서 리키아로 돌려보내게 한다.
휘브리스(Hybris)는 교만이란 뜻이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이다. 파트로클로스는 잘 나갔고 그 때문에 파멸의 길을 가게 되었다. 파트로클로스는 수많은 적군들 도륙한다. 아드라스토스, 아우토노스, 페리모스, 에피스토르, 멜라닙포스, 엘라소스, 몰리오스, 필라르테스 등. 파트로클로스는 세 번이나 트로이 성을 올라가 공격한다. 네 번째 공격을 할 때 아폴론이 그에게 경고하여 파트로클로스가 두려움을 느끼고 중단한다.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세 사람
아폴론, 에우포르보스, 헥토르
아폴론은 도성 안에 후퇴하여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헥토르에게 다시 용기를 준다. "헥토르여, 그대는 어찌하여 싸움을 회피하느냐? 파트로클로스를 습격하여 그를 잡게 그려." 헥토르는 베크리오네스에게 지시하여 말을 싸움터로 몰고 가게 했다. 아폴론이 트로이군 전세를 우세하게 했다. 헥토르는 혼자 파트로클로스에게 달려갔다.
파트로클로스가 전차에서 뛰어내려 왼손에는 창을, 오른손에는 돌을 집어던졌다. 그 돌이 헥토르의 사촌 케브리오네스(Cebriones)의 이마에 명중하여 쓰러뜨렸다. 파트로클로스가 전차에서 떨어지는 케브리오네스의 모습을 보며 조롱한다.
곡예사처럼 전차 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니, 날씨에 상관없이 배 밖으로 다이빙을 잘 하겠구나. 트로이에 저런 잠수부들이 많은 줄 미처 몰랐는걸!
헥토르의 마부 케브리오네스가 전차에서 떨어져 죽는 모습을 보고 조롱하는 파트로클로스
죽어가는 사람을 조롱하다니 교만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케브리오네스의 시체를 두고 또다시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창과 화살들이 빗발치듯 날아왔고 큰 돌들이 폭우같이 쏟아졌다. 그리스군의 전세가 우세하여 케브리오네스의 시체에서 무구를 벗겨갔고 트로이를 일방적으로 공격한다.
이런 혼란 중에 포이보스 아폴론이 짙은 안개로 몸을 가리고 파트로클로스에게 다가가서 뒤에서 등과 넓은 어깨를 손바닥으로 내리치고서 투구를 쳐내고 긴 창을 부수고, 가슴받이를 풀었다. 파트로클로스는 정신이 혼미해졌고 무릎에 힘이 빠져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 에우포르보스의 창이 그의 등으로 날아와 박혔다. 에우포르보스는 전술을 익히기 위해 처녀 출전한 초보자였지만 20명이나 쓰러뜨렸다. 파트로클로스가 상처를 입고 물러가자, 헥토르가 달려가 그의 배를 찔렸다. 헥토르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헥토르, 나를 죽게 한 것은 잔인한 운명과 레토 여신의 아들 아폴론이며, 인간 중에는 에우포르보스다. 너는 세 번째다. 그대 역시 살 날이 그리 길지 않다. 이미 죽음의 검은 운명이 네 앞에 닥쳐왔다. 아킬레우스가 너를 덮어 줄 것이다.
파트로클로스가 죽어가면서 헥토르에게 한 말
흔히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였다고 하는데, 헥토르가 한 역할은 미미하다. 아폴론이 다 했고, 헥토르가 한 것은 마지막 마무리에 불과하다. 파트로클로스는 무서우리만큼 정확하게 헥토르의 운명을 예언했다.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에게서 창을 뽑았고, 마부 아우토메돈에게 달려갔지만, 아킬레우스의 불사의 말들이 그를 데리고 달아났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메넬라오스가 그 시신을 지키고(이 그름의 장면), 아이아스가 와서 트로이 인들을 물리치고, 아이아스는 메넬라오스와 메리오네스에게 시신을 가지고 퇴각하라고 명령한다. 그의 시신과 갑옷은 누가 차지했지? 17권을 보면,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헥토르가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