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21권
<일리아스> 20권에서 신들이 트로이 전쟁에 총출동했다. 제우스 신이 신들의 전쟁 개입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트로이를 압도할 것을 우려하여 신들의 개입을 허락한 것이다. <일리아스> 21권에서 신들이 전투가 실제로 일어난다. 먼저 강의 신 크산토스와 아킬레우스의 싸움이 볼 만하다. 아킬레우스가 불멸의 신과 싸울 정도로 그의 능력은 모든 인간을 초월하지만, 역시 신을 이기기에는 부족하다. 포세이돈과 아폴론이 아킬레우스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일리아스> 21권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군을 크산도스(스카만드로스) 강까지 몰아붙여서 트로이 군을 두 개로 분열시킨다. 한 군대는 트로이 성으로 도망하고, 한 군대는 트로이 강에 갇혀서 아킬레우스에게 멸절당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래서 <일리아스> 21권을 '강변에서의 전투'라는 제목을 붙이는데, 신들의 전쟁 장면이 가장 본격적이면서 파격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신들의 전쟁(Theomachy)이라는 제목이 더 적절하다.
트로이 군이 아킬레우스의 위세에 눌려 도망간다. 아킬레우스가 그들을 두 갈래로 분열시킨다. 한 갈래는 도성으로 도망치고, 다른 갈래는 스카만드로스(크산토스) 강으로 도망치다가 강변에 막혀서 아킬레우스에게 처참하게 살육을 당한다. 트로이 군은 아킬레우스와 소용돌이치는 크산토스의 흐르는 강물 사이에 갇혀서 말의 우는 소리와 함께 아우성을 쳐댔다. 아킬레우스가 그들을 도륙하다가 12명의 젊은이를 생포한다. 자신이 약속한 대로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에 바칠 제물(blood price)로 사용하려고 한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을 덜려는 제의 행위인 것이다.
프리아모스의 막내 뤼카온(Lycaon)의 기구(崎嶇) 한 죽음
강변에 갇혀서 살해당하는 트로이 무리 가운데 프리아모스 왕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 뤼카온이 있었다. 그를 보자 아킬레우스가 말한다. "죽음의 운명을 벗어난 자가 여기 있다니! 내가 그 녀석을 렘노스 섬에 팔았었는데." 뤼카온은 이전에 아킬레우스에게 붙잡혀 렘노스(Lemnos) 섬에 팔려갔었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소유의 정원에서 나뭇가지를 훔치다가 붙잡혔는데 아킬레우스가 그를 노예로 렘노스 섬에 팔았던 것이다. 무슨 나뭇가지이길래 사람을 노예로 팔아버리나? 누군가 몸값(ransom, 랜섬)을 지불하여 그를 구해서 트로이에 온 지 11일 동안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다가, 12일째 되는 날 아킬레우스의 손에 걸린 것이다. 뤼카온은 한 손으로는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붙잡고 애원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창을 붙잡고 있었다. "무릎을 잡고 빕니다. 아킬레우스여! 나는 그대에게는 존중받을 탄원자입니다. 나를 죽이지 마십시오."
뤼카온은 아킬레우스가 자기를 살려주어야 할 이유를 열거한다. 첫째, 아킬레우스가 그를 노예로 팔았을 때 황소 100 마리를 받았었다. 둘째,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아킬레우스가 죽인 폴리도로스(Polydorus)인데 두 아들 다 죽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폴리도로스는 뤼카온의 동복형제로 <일리아스> 20권에서 죽었다. 셋째, 헥토르와 나는 아버지는 똑같이 프리아모스 왕이지만 어머니가 다르다. 세 번째 이유를 들을 때 웃음이 난다. 헥토르에게 복수심이 불타는 것은 알겠는데, 자신을 헥토르와 차별화시킴으로써 자신을 살려달라고 애걸한 것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복수심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아킬레우스는 말한다. 만일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죽지 않았더라면 널 살려둘 수도 있었겠으나, 친구가 죽은 지금 내 손에 걸리면 한 놈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무자비하게 죽인다. 뤼카온의 부모가 적절한 장례식을 치루지 못하고 고기밥이 되도록 시신을 스카만드로스(크산토스) 강에 던진다. 깊이 흐리는 물줄기와 은빛 찬란한 소용돌이가 있는 스카만드로스 강이 뤼카온의 시신을 삼킨다.
바로 이 때 강의 신 크산토스가 분노한다. 아킬레우스가 무자비하게 살육한 시체들이 강물에 떠 있고 흘린 피가 강물을 물들이기 때문이다. 크산토스는 아킬레우스를 막고, 트로이를 멸망에서 구할 방도를 생각한다.
크산토스가 악시오스 강의 손자 양손잡이 아스테로파이스(Asteropaeus)에게 용기를 주어 아킬레우스를 명중시킨다. 그는 파이오니아 족의 지도자이다.
아스테로파이스는 양손잡이라 창 두 자루를 동시에 던졌더니 하나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맞고, 또 하나는 아킬레우스의 오른쪽 팔꿈치를 스쳐서 검은 피가 치솟게 했다. 아킬레우스 건 외에는 상처를 입지 않는 불멸의 몸이라는 설명과 다르게 유일하게 아킬레우스가 아스테로파이스에게 팔꿈치 부상을 당한다. 호메로스의 입장은 아무리 신과 같은 인간이라도 부상을 당하고, 죽을 운명임을 말하고 있다. 아킬레우스가 그에게 창을 던진다. 왜 그랬는지, 아스테로파이스는 아킬레우스의 창을 뽑고자 세 번이나 시도하고 도대체 땅에서 뽑히지 않는다. 아킬레우스의 창(Pelia ash)은 아킬레우스 외에는 다룰 수가 없다. 네 번째 그 창을 꺾으려 할 때 아킬레우스가 칼로 그를 내리쳐 죽인다. 아킬레우스가 파이오니아 족을 도륙하여 그들의 시체가 강을 뒤덮는다. 시체가 너무 많이 강바닥에 쌓여 강물을 흐르지 못하게 할 정도다.
화가 난 크산토스가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깊은 소용돌이에서 나와서 이렇게 소리쳤다.
"오, 아킬레우스여! 너는 너무 강하다. 너의 행동은 지나치게 난폭하다. 신들이 항상 네 편이니까 그럴 수밖에. 제우스 신께서 트로이를 멸망시키도록 허락하셨다면 어서 내 강물에서 트로이군을 몰아내어 평원으로 나가서 살육을 감행하라. 내 강물은 시체로 가득 차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바다로 물을 쏟아낼 수 없는데, 너는 여전히 내 강물에서 살육을 계속하고 있다니. 제발 이젠 그만 멈춰라. 사람이 죽을 지경이다!"
강의 신 크산토스가 아킬레우스에게 '살육을 멈추고 강에서 나가라'고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 맞서서 그가 나를 죽이든, 내가 그를 죽이든 결판을 내기 전에는 살육을 멈출 수 없다'고 강의 신 크산토스에게 말한다. 크산토스는 아폴론 신에게 어떻게 좀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소용이 없다. 크산토스의 개입에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강으로 뛰어들어가 한층 더 트로이인들을 도륙한다. 강의 신 크산토스의 명령도 무시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그의 영웅스런 모습을 부각시키면서, 불멸의 신과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다못한 크산토스가 아킬레우스를 응징하기 시작한다. 강물이 솟구치며 아킬레우스에게 덤벼든다. 죽음으로 몰아넣는 파도(a kill wave) 쳐서 무더기로 쌓였던 시신들을 밀쳐내면서 황소처럼 울부짖으며 시신들을 뭍으로 던져버린다. 살아 있는 자들은 깊고 큰 소용돌이로 감싸서 안전하게 감추어둔다. 크산토스가 트로이 편에서 산 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 주위에는 사나운 물결이 그의 방패를 세차게 내려쳐 더 이상 발을 딛고 서지 못하도록 쓰러지게 했다. 아킬레우스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친다. 아킬레우스의 힘이 아무리 초자연적이라고 해도 불멸의 신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인간이 아무리 대단해도 종국에는 자연의 힘에 따르게 되어 있다. '신들은 역시 인간들보다 더 강력한 법이니까'라고 호메로스는 말한다.
아킬레우스가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제우스 신이시여, 차라리 헥토르의 손에 죽을지언정 이 큰 강에 갇혀서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이 탄원이 끝나자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달려와서 '너는 이곳에서 죽을 운명이 아니다.'라며 아킬레우스를 안심시킨다.
물과 불의 대결, 크산토스와 헤파이스토스의 대결
크산토스가 아우 시모이스(Simois)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공격하자, 이를 본 헤라 여신이 아들 헤파이스토스(Vulcan)를 보내서 강 양편에 큰 불길을 일으키면서 아킬레우스를 구출한다. 크산토스와 헤파이스토스, 신들의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물과 불의 대결이다. 특이하게도 불이 물을 이겨서 물이 뜨겁게 끊어 오르자, 크산토스가 항복을 하며 다시는 덤비지 않겠다고 한다. 헤라가 그만두라고 해서 헤파이스토스가 공격을 멈춘 것이다. 한 인간 때문에 신들이 서로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헤라가 말한 것이다. 제우스 신은 이다 산에서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신들끼리 맞붙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마음속으로 웃는다.
헤파이스토스 vs. 크산토스(스카만드로스)
아테나 vs.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포세이돈과 헤라 vs.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헤르메스(머큐리) vs. 레토
본격적인 신들의 전투가 벌어진다. 무슨 방패든 박살내는 아레스가 아테나를 공격했지만, 아테나가 아레스에게 돌을 집어던져 쓰러뜨리고, 아테나가 아프로디테의 젖가슴을 가격해서 쓰러지게 한다.
포세이돈이 아폴론을 설득한다. "왜 트로이를 돕느냐? 자네와 내가 트로이에서 1년간 노예살이를 해서 트로이 성을 지었고, 양떼를 돌보았는데, 우리 품삯도 떼어먹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포세이돈은 트로이를 도와주고 있는 아폴론을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포세이돈이 트로이의 창시자 라오메돈(Laomedon)을 미워하는 심정을 볼 수 있다. 아폴론은 아버지 제우스의 형제인 포세이돈과 싸우지 않겠다며 돌아서서 물러간다.
포세이돈에게 물러서는 아폴론을 보고, 누이동생인 아르테미스가 아폴론을 겁쟁이라고 놀린다. 이제 아줌마와 아가씨 싸움이다. 헤라와 아르테미스다. 아르테미스는 아빠 제우스가 이뻐하는 딸이다. 아줌마의 힘이 세다. 헤라가 아르테미스를 '이 당돌한 암여우(vixen)야, 대체 감히 어떻게 날 거역하느냐?'며 호통친다. 헤라가 한 손으로 아르테미스의 양손목을 움켜잡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에서 화살통을 빼앗아서 그녀의 양쪽 귀밑을 웃으면서 때리니(싸대기를 때렸단 말인가?) 화살들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아르테미스는 울면서 올림포스 산으로 달아나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무릎을 붙잡고? 헤라를 고자질한다.
마치 독수리에게 쫓겨는 비둘기가 잡힐 운명이 아니어서 바위틈으로 도피하듯이 아르테미스는 활과 화살을 땅에 버려둔 채 울면서 도망쳤다. '아르고스를 죽인 자'(헤르메스의 별칭)가 레토와 싸움을 벌인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부인과 싸울 수 없다며 포기하자, 헤르메스가 아르테미스의 활과 화살을 레토에게 집어 주며 패배를 선언한다.
프리아모스 왕이 트로이 성 위에서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군사들을 도륙하는 장면을 바라본다. 왕은 성문을 열어서 도망하는 트로이 병사들을 들어오게 하라고 명령한다. 트로이 병사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아폴론이 아킬레우스를 따돌린다.
아폴론은 트로이 왕자 아게노르(Agenor)에게 용기를 주어 아킬레우스에게 창을 겨누게 한다. 안테노르의 아들 아게노르는 아킬레우스를 상대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하다고 주저하지만, 아폴론이 용기를 준다. '아킬레우스가 아무리 천하제일의 영웅일지라도 그도 사람인지라 청동에는 뚫릴 것이고, 그도 역시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라고 한다. 아게노르는 아킬레우스를 향해 창을 던진다. 창은 아킬레우스의 정강이받이(greave)를 맞혔으나, 신이 만들어준 무구이므로 뚫지 못한다.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아게노르에게 창을 던지려 하는데, 아폴론이 아게노르를 안개로 감싸서 싸움터에서 벗어난 곳으로 옮겨준다. 그리고 아폴론 자신이 아게노르로 변신하여 도성 반대쪽으로 도망치며 아킬레우스를 유인한다. 트로이 인들이 무사히 도성으로 도피할 수 있게 된다. 호메로스는 말하기를, 아폴론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트로이인들은 전멸을 당하고, 일리오스 성은 함락되었을 것 같다고 했다.
다음 22권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싸움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