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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Nov 25. 2021

교수님의 특급칭찬, "너 미쳤니?"

지도교수님과의 일화

교수님의 냉대, '넌 저리 가!', '쟤, 뭐래니?'


30대 초반 성남의 가파르게 경사진 달동네에 있는 11평짜리 2층 집에 세들어살 때였다. 극빈하고 각박한 생활이었다. 아내는 1살, 3살의 아이를 키우느라 우울했고 밖의 날씨와 계절을 모르고 지냈다. 나는 사역을 하면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박사통합과정 공부를 하고 있었다.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느라 1년은 정신없이 따라갔지만, 2년째는 성남에서 사역하면서 공부를 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 때 악명(명성?) 높기로 유명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내가 기독교인이기에(?) 싫어하고 냉대하며 회식자리에서도 노골적으로 따돌렸다. "넌, 맨 끝자리로 가!" 수업 때도 나를 이물질 취급하였다. "쟤 뭐래니?" 노골적으로 차별하였다. 그런 노골적인 표현들은 군대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직설적인 언어들이었다. 게다가 종교학과 현대철학의 흐름에 초보이고 실력도 없는 나는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성남에서 사역하면서 공부하느라 거의 포기할 뻔했다.


아내는 산후 우울증을 겪느라 계절을 모르고 지냈다. 나는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아내에게만 맡길 수는 없어 공부를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했었다. 그래도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 주어진 과제를 하곤 했다. 그 교수님은 과제를 많이 내주기로 유명했다. 학교생활하면서 이렇게 무지막지한 과제를 받아보기는 그 교수님이 처음이었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기억하기로는 동아시아와 중국의 종교에 대한 300쪽 분량의 영어 원서를 1~2주 만에 정리해서 제출하는 숙제였던 것 같다. 나는 틈틈이 밤늦게 그 숙제를 해서 이메일로 제출하고 세미나(수업)에 들어갔다.


2000년 가을 어느 날 오전, 홀로 두기에 딱한 아내와 아이들을 좁은 집안에 남겨두고 수업에 참여했다. 네모 형태로 학생들이 둘러앉았고 교수님이 정중앙에 위치한 세미나실은 긴장감이 돌았다. 학생들은 교수님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선생님이 과제를 쭉 훑어보시더니 내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신다.



"너 미쳤냐?" "얘들아, 재 미친 거 아니야?"


그 어조에는 놀라움, 기대이상, 의외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내가 수업에 나오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많은 분량의 원서를 어떻게 꼼꼼히 정리해서 제출했느냐는 의미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특급칭찬이고 선생님의 특유의 방식으로 제자를 인정하는 표현이었다.


나는 그렇게 성실하지도 꾸준하지도 지능이 특출하지도 못했다. 거의 포기할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미친 사람처럼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해냈었다.


현재 내가 맡은 일들을 하다보면 권태롭고 의욕이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때의 특급칭찬을 떠올려보며 "너 미친 거 아니야?" 이런 칭찬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요즘 게슈탈트 심리치료, 부부상담치료에 참여하여 그런 사역을 준비하고 있고, 현대철학자들을 공부하고 문학작품을 읽는 소그룹스터디에 참여한다. 역차별을 초래하는 악법에 항거하는 1인 시위를 기획하는 중이다. 분야가 쉽지않고 일관적이지 않아보이고, 내 능력밖의 분야의 일도  하는 요즘 내 모습을 보면서 오래 전 교수님의 특급칭찬이 떠오른다.


"너 미친 거 아니야?"


그 어조와 애정어린 특급칭찬이 그립다. 환경의 한계와 나 자신에 대한 경계를 초극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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