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의 소리』 통권 296호(2025년 7·8월호)
매월 독서모임을 하는데 이번 달에 다룰 책은 카프카의『변신』, 정여운의 『오름마다 붉은 동백』, 그리고『씨알의 소리』 통권 296호(2025년 7·8월호)를 다룬다. 언제나 그렇듯 3권을 다룬다. 내가 발제할 부분은 『씨알의 소리』에 실린 최자영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의 정치, 다수와 소수 아닌 빈자와 부자 간 갈등의 조율"이다. 최자영의 글은 고대 아테네와 현대 한국 사회를 연결하여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는 글이었고, 이전의 학자들의 주장을 용감하게 비판하면서 틀린 것을 지적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쓰기였다. 이 글의 목적은 불의에 저항하는 자유의 정신과 민주공화주의의 올바른 긴장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저자 최자영(한국외대 겸임교수)은 하버드대 역사학자가 『노예제와 사회적 죽음』(이학사, 2025)에서 "자유의 개념은 노예제로 인하여 생겨났다"는 주장을 반박하였고, 고명섭이 <카이로스>란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정치는 다수정과 소수정의 혼합이었다'라는 주장을 반박하여, 독자로서 흥미진진하게 글을 읽게 만들었다. 저자는 그들의 주장을 왜, 어떻게 반박하고 있고,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의 정치, 다수와 소수 아닌 빈자와 부자 간 갈등의 조율"이란 글에서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고대 아테네를 떠올리면 흔히 두 가지 인식이 따라붙는다. 하나는 아테네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정과 공화정이 사실상 같은 체제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단순화된 이해이며, 실제 아테네의 정치와 사회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최자영 교수는 이 두 가지 편견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고대 민주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첫째, 아테네가 불평등 사회였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여성과 노예가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아테네를 불평등 사회로 규정한다. 그러나 여성은 단순히 배제된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가문 속에서 상속권과 재산권을 가졌고, 종교적 제의와 축제에도 참여하며 도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했다. 특히 기원전 451년 페리클레스 시민법은 부모 모두가 시민일 경우 자녀에게 시민권을 인정했는데, 이는 여성도 시민 신분을 지녔음을 전제로 한다. 또한 시민은 귀족만이 아니었다. 솔론의 개혁은 재산과 소득에 따라 의무를 차등 부과함으로써, 빈자와 부자가 모두 시민 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따라서 아테네 민주정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제한이 있었지만, 단순히 ‘불평등 사회’라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포괄적인 정치 공동체였다.
둘째, 민주정과 공화정이 같다는 주장 또한 잘못된 편견이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다수 시민이 민회를 통해 최고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였다. 반면 로마의 공화정은 원로원과 귀족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였다. 민주정은 다수의 민중 권력이 중심이지만, 공화정은 귀족적 엘리트 권력이 중심이다. 두 체제를 같은 범주에 넣는 것은 역사적 실체를 흐리게 만든다. 따라서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은 다수 시민의 권력을 보장한 독자적 정치 체제로 이해해야 하며, 이를 공화정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아테네를 불평등 사회라 단정하거나, 민주정과 공화정을 같은 체제로 보는 것은 고대 사회를 단순화하는 오류다. 오히려 아테네 민주정은 빈부와 성별의 구분 속에서도 일정한 포괄성을 지녔고, 시민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 제도를 발전시켰다. 고대 아테네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해석하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 민주주의의 뿌리와 성격을 더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1. 자유 개념에 대한 올랜도 패터슨의 협소한 해석 비판
하버드대 사회학자 올랜도 패터슨은 저서 『노예제와 사회적 죽음』(이학사, 2025)에서 자유 개념을 노예제와 연결 지었다. 그의 주장은 자유란 결국 “노예가 아님”이라는 부정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자유인은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자유를 의식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유는 사회경제적 제도의 산물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최자영은 이러한 이해가 자유의 본질을 축소한다고 지적한다. 자유는 단순히 노예제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에 대한 항거 속에서 형성된 적극적 가치였다. 고대 아테네인들에게 자유는 참주정과 같은 독재 권력에 맞서는 시민적 행위 속에서 구현되었으며, 이는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이 참주를 타도한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자유는 경제적 조건의 결과가 아니라, 공동체적 정치 저항과 시민적 참여의 산물이었다. 올랜도 패터슨의 논의는 자유를 수동적 개념으로 환원하지만, 실제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는 독재 권력에 저항하며 공동체의 주권을 지켜내는 적극적 정치 개념이었다.
언론인 고명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정치를 ‘다수정과 소수정의 혼합’으로 이해한다. 즉, 민주정과 귀족정의 절충으로 혼합정치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민주공화국 체제를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해석과 유사하다. 그러나 최자영은 이 해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의를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혼합정치는 다수와 소수의 단순한 절충이 아니었다. 그것은 빈자와 부자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정치 구조였다. 민주정과 귀족정의 제도적 혼합을 넘어, 사회경제적 불균형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집단 간 이해를 조화시키는 체제가 바로 혼합정치였다. 다시 말해, 핵심은 ‘수적 대립’이 아니라 ‘경제적 균형’이었다. 따라서 고명섭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정치를 다수와 소수의 혼합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민주정의 본질을 단순화하는 오류이다.
최자영의 주장은 명확하다. 첫째, 자유는 노예제가 만들어낸 부정적 자각이 아니라, 참주정에 저항한 시민적 행위 속에서 나타난 정치적 가치이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정치는 단순히 민주정과 귀족정의 절충이 아니라, 빈자와 부자의 갈등을 조율하며 사회적 균형을 추구하는 정치 질서였다.
이 두 가지 비판은 우리에게 고대 민주정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아테네 민주정은 불평등의 상징이 아니라 포괄성과 갈등 조율의 장이었고, 자유는 경제적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적 항거의 결과였다. 따라서 고대 민주정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게 하는 길이 된다.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넘는 포괄성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이 여성과 빈자까지 일정하게 포섭했듯이, 오늘날 민주주의도 특정 계층·성별·집단을 배제하지 않고 더 넓은 포용을 추구해야 한다.
민주정과 공화정을 혼동하지 말라. 민주주의는 다수 시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이고, 공화정은 법과 제도를 통한 공공성 강조이다. 두 개념을 구분할 때 비로소 한국 헌법의 “민주공화국”이라는 원리가 제대로 이해된다.
자유는 단순히 ‘구속 없음’이 아니다. 자유는 노예제의 부재가 아니라, 권력 남용과 독재 권력에 맞서는 시민적 저항의 행위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도 자유는 단순한 개인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적 정치 참여를 통해 살아난다.
정치는 빈부 갈등의 조율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혼합정치는 다수·소수가 아닌 빈자와 부자의 균형을 맞추는 체제였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조율하는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민의 권리는 곧 책임이다. 고대 시민들이 발언권과 함께 병역·세금 의무를 졌듯이, 오늘날 시민도 권리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의무를 함께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