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 정열이 최고의 정열인 이유
강한 확신이 항상 진리는 아니다. 때로 그것은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직접적 정열은 즉각적 감정과 집단적 열광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깊은 성찰과 실존적 책임이 결여되기 쉽다. 이 정열은 강렬한 열심을 보이지만,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군중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린다. 또한 순간적 열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속성과 내면성이 약하며, 신앙을 표면적 활동과 감정으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직접적 정열은 겉으로는 뜨거워 보이지만, 실존적 신앙의 깊이에 이르지 못하는 천박한 형태의 정열로 비판된다.
키르케고르의 정열은 크게 낮은 차원의 정열과 높은 차원의 정열로 나뉘고, 높은 차원의 정열의 정점이 역설적 정열이다. 따라서 단계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직접적 정열(immediate passion)이다. 이것은 심미적 실존의 정열로서 충동적이고 즉각적이며, 집단적 열광이나 반항적 열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둘째, 반성적 정열(reflective passion)이다. 이것 역시 낮은 차원의 정열이지만, 직접적 충동과 달리 끝없는 반성과 숙고 속에서 결단을 잃어버린 정열이다. 셋째, 주체적 정열(subjective passion)이다. 이것은 높은 차원의 정열로서 윤리적 실존의 내적 범주이며, 내면성·현실성·결단을 통해 진리를 자기 삶으로 살아내려는 정열이다. 넷째, 역설적 정열(paradoxical passion)이다. 이것은 종교적 실존의 내적 범주이며, 높은 차원의 정열의 최정점이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리를 사는 사람은 정열을 가진 사람뿐이다.
주체적 정열은 군중 속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순간 시작된다.
인간은 생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하는 정열 속에서 존재한다.
“가장 높은 정열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끌어안는 용기다.”
역설적 정열이 가장 고차원적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감정의 강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직접적 관계 안에서만 가능한 정열이기 때문이다. 주체적 정열은 윤리적으로 진지하고 내면적이지만, 여전히 인간이 자기 종합을 수행하는 자리에서 한계를 만난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윤리적 실존의 끝에서 인간이 절망 또는 무한 체념에 직면한다고 본다. 역설적 정열은 바로 이 한계를 넘어서는 자리, 곧 인간이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서는 자리에서 생겨난다.
또한 역설적 정열이 최고 단계인 이유는 그것이 역설을 제거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정열이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에게 기독교 진리 자체가 역설이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 보편 윤리로 환원될 수 없는 하나님과 단독자의 관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역설적 정열은 이성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삭제하거나 완화하지 않고, 바로 그 모순과 부조리 앞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정열이다. 이 점에서 그것은 단순한 윤리적 열심보다 더 깊다.
역설적 정열은 또한 무한한 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장 고차원적이다. 이 정열이 삶의 전체 내용과 현실의 의미를 오직 하나의 대상, 곧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직접적 정열은 외부 대상이나 이념에 쉽게 휩쓸리고, 반성적 정열은 반성 자체 속에 머무르며, 주체적 정열은 윤리적 자기 형성에 머문다. 그러나 역설적 정열은 인간의 내면성, 현실성, 결단 전체를 하나님께만 집중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형식의 정열이 된다.
마지막으로, 역설적 정열은 가장 큰 모험과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정열이기 때문에 최고 단계이다. 키르케고르에게 확실성이 생기면 모험은 끝난다. 그런데 신앙은 가장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거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역설적 정열은 가장 깊은 내면성과 가장 큰 위험 부담을 동시에 지닌다. 바로 이런 점에서 역설적 정열은 낮은 차원의 정열이나 윤리적 주체적 정열보다 더 높은, 기독교 신앙의 최고 형식으로 이해된다.
정리하면, 단계는 직접적 정열 → 반성적 정열 → 주체적 정열 → 역설적 정열이며, 역설적 정열이 가장 고차원적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직접적 관계, 역설의 수용, 무한한 집중, 불확실성 속의 모험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정열은 확실성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깊은 불확실성 속에서 태어난다.
인간의 마지막 정열은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집중이다.
역설적 정열은 모순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선다.
가장 높은 정열은 모든 것을 이해한 사람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