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잎새달
1 부
Q. 아이 보느라 힘든가요?
A. 아니요, 아이를 보느라 힘이 납니다.
- 슈퍼우먼을 꿈꾸는
비나리 엄마
어릴 적부터 나는 ‘슈퍼맨’을 즐겨보았다.
평소에는 조용히 일상생활을 즐기다가 누구든 위험에 처하면 적을 무찌르고 싸우기 위해 변신하고 나타났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국엔 승리하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또 평범한 생활을 하지만 늘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은 보고 또 보아도 너무 멋있었다.
슈퍼 히어로, 내가 꿈꾸는 진짜 영웅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슈퍼영웅이 되어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내는 꿈을 꾸곤 하였다.
그리고 나는 회사 앞 어린이집 앞에서 슈퍼우먼과 슈퍼맨을 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비장한 슈퍼우먼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가는 꼬마 슈퍼맨. 그 뒤를 이은 또 다른 아빠 슈퍼맨은 양손에 꼬마 슈퍼우먼 두 명을 양팔에 한 명씩 끌어안고 등장했다. 그 행렬이 어찌나 멋지던지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슈퍼히어로들의 탄생은 늘 갑작스러운 인생의 사건과 함께 생겨났던가?
어느 순간 나도 슈퍼히어로가 될 기회를 얻었고, 지금 그 대단한 것을 직접 해내고 있다.
TV 속 히어로들은 언제나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 안에 해야 할 업무들이 더 많았고, 대본에 나와 있는 상황들보다 돌발상황이 더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선 더욱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했다.
첫 번째 업무는 꼬마 히어로들을 마법 동산(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준비하는 동안 수많은 장애물이 있다. 이 꼬마 히어로들은 종종 늦잠을 요구하는 꼬마 악당으로 변해버릴 가능성이 있기에 항상 미리 일어나 준비시키고 달래야 한다. 무사히 잠투정 악당을 처치하고 나면 준비물 챙기기, 아침 먹이기, 간식 챙기기, 옷 갈아입히기 등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함께 출동한다.
두 번째 업무는 본업으로 돌아가서 멋지게 업무 수행하기다. 각자의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자기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야 한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업무에 온몸이 녹아나는 것 같을 때도 있고, 가끔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느라 난감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내 능력 밖의 일들로 혼나기도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많은 변수가 히어로들의 어깨를 짓누르면 하루가 고되게 느껴진다.
그럴 때는 꼬마 히어로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의 사진과 영상만큼 나를 충전시키는 것은 없다. 많은 부모가 사무실 책상 한켠에 아이들 사진을 비치하는 이유가 아닐까. 지금 내 책상에도 비나리의 사진들이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한 번씩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 나면 정말 신기하게도 다시 일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비나리 히어로의 능력이다.
째깍째깍- 주어진 시간 동안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하지만 할 일을 다 해야 하는 워킹맘(워킹파파)이기 때문에 오후가 되면 더욱 손놀림은 분주해진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데리러 가거나, 돌보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업무를 정리하고 조심히 몸을 움직일 때면 동료들은 꼭 물어본다. “퇴근하세요? 이쁜 아이들을 보러 가셔서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날은 “네!”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가끔은. 정말 아주 가끔은.
“…네? 퇴…근요?” 라고 되묻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요. 육출하러 갑니다…’
아침엔 비장한 각오를 한 슈퍼 히어로였는데,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메타몽*으로 변해버린다. 준비했던 슈퍼파워를 다 소진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 꼬마 히어로들이 다니는 마법학교의 커리큘럼이 너무 좋아서 하루 사이에 능력이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메타몽: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무엇이든 변할 수 있는 몬스터
꼬마히어로들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단 한마디, 한 번의 손짓으로 부모와 집의 공간들을 무한 변신시키는 것이다. 공주님이 되고 싶은 딸아이를 위해 집에서는 치마를 입고 시중을 든다는 남자 선배의 말에 그저 재밌어 웃기만 했었는데, 나의 현실도 그에 못지않게 웃프다.
차라리 시중을 드는 것이면 좋으련만.. 나는 매일 자동차로 변신해야 한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우리 비나리는 매 상황마다 나를 쓰레기차, 덤프트럭, 스포츠카로 변신시켜 거실을 치우고, 장난감을 나르며, 층간소음을 내지 않을 만큼(그러나 비나리 자신보다는 빠르게) 달리기를 시켰다. 시동 소리부터 엔진음까지 나는 자동차 성대모사(?)를 최대 능력으로 갖게 되었다.
나는 몇 번이나 헐크로 변하고 싶었지만, 꾹꾹 참아가며(마침 어제가 화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다음 날이었다), 꼬마들의 니즈에 따라 장난감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 장사를 하고, 비나리 경찰관에게 잡혀서 혼나는 도둑이 되기도 하고, 노래하는 상어로 변신했다가 무료 회전목마가 되어 거실을 뱅글뱅글 돌기도 한다. 그렇게 쉴 틈 없이 무한 변신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나의 업무가 돌아온다. 더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식사를 권해야 하고, 씻겨야 하며, 재워야 한다. 이 모든 전쟁은 대부분 꼬마들의 승리로, 가끔은 무승부로 결론이 난다.
마침내!! 아이들을 안전하게 꿈나라로 보내고 나면, 그제야 우리에겐 짧지만 강렬한 진짜 휴식(육퇴)이 주어진다. 이 짧은 시간조차 우리는 수면을 통해 충전에 힘을 써야 함을 알지만, 사실 그럴 수 없다. 시간은 짧고, 하고 싶은 것은 많으니까. 바쁜 일과 중에 놓쳤던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사진과 영상으로 보고, 어린이집에서 보내준 알림장으로 꼬마 히어로들이 오늘은 어떻게 지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내일의 전쟁은 오늘보다 수월하길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노동의 대가는 크다. 나의 능력을 확인하고 인정받으며 그 노력의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이 급여는 우리에게 생계가 되고 생활에 보탬이 되고 약간의 휴식을 즐기기 위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출산휴가를 부러워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더욱이 육아휴직까지 이어 쓰면 회사업무에서 벗어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올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전에는 꽤 긴 시간이라며 좋아하고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을 경험한 몇 명의 육아 선배들은 회사가 그리워진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복귀가 다가올수록 나는 정말 회사가 그리워졌다.
많은 부모가, 육아를 퇴근 없는 생활이라고 표현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너무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지만. 그에 따른 또 다른 휴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 회사도 때로는 육아로부터의 퇴근을 의미하는 곳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아이들과의 전쟁 속에 오래 있다 보면, 나에 대해 잊혀 갈 때가 있다 (두 번째 글-참조). 그런데 다시 어른들의 사회로 나와서 함께 어른들과의 대화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진짜 좋아했던 것들과,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일과 가정의 밸런스가 아닐까.
나는 회사에서 나를 위한 일을 하며,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위해 다시 일한다. 하지만, 양쪽에서 얻을 수 있는 금전적인 그리고 감정적인 채움은 노동의 대가로 충분하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온전히 아이를 위하지 못하는 것에서 가끔 죄책감을 가지는 워킹맘, 워킹파파도 있고, 부모들이 육아에 집중해야 한다는 오래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아이는 그 환경에서도 배우고 습득하며 자라고 있는 것에 워킹맘, 워킹파파 모두 조금은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어릴 적, 나는 주말을 기다렸다. 온전히 부모님과 하루를 함께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우리 부모님은 주 6일 근무를 하셨다. 두 분은 항상 바쁘신 자신들을 보며 아쉬워하는 우리를 위해 주말만큼은 오롯이 우리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셨다. 그것이 단순히 함께 집에서 식사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전부라 할지라도 그 시절 나는 그런 사소한 것들에 감사했고, 행복했었다.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나는 나의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 다짐했었다. 현실의 나는 그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시절 단 하루 허락된 달콤한 주말을 우리를 위해 써주신 아버지께 다시 한번 존경의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나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가끔 들 때가 있다. 아이는 너무 어렸고, 나는 너무 일이 많았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라는 말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바쁠 때, 아이의 마음에 소흘해지는 건 아닐까. 우려되기도 하였다. 항상 바쁜 나를 보며 우리 아이는 어떻게 나를 기억할까. 그런데 나의 슈퍼히어로인 우리 부모님, 내 기억 속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지만, 우리를 늘 사랑해 주셨고 그 마음이 충분히 잘 전달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부모님처럼 멋진 우리 가정을 지키는 진짜 영웅이 되기 위해 오늘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든 히어로는 각자의 능력이 있다. 하늘을 나는 능력, 눈에서 불이 나오는 능력, 모든 물건을 얼음으로 만드는 능력, 시간을 멈추는 능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등등. 능력의 강하기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가 가진 능력을 잘 발휘하여 악당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가정을, 지구를 지키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방법은 다르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목표는 같기에 각자의 육아 방법으로 꼬마 히어로를 잘 성장시키면 되는 거다. 우리는 모두 슈퍼히어로니까!
작품명: 5살 비나리가 생각한 슈퍼히어로
- 비나리의 육아일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