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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Sep 21. 2023

자전거로 거금도 한 바퀴 2

<3>     

오룡동을 바라보고 월포까지는 내리막이다.

정면으로 달려드는 바람은 자전거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왼손가락 하나, 오른손가락 둘. 브레이크에 올려놓고 조심조심 굽이치는 언덕길을 내려온다.     


월포교회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신평으로 향한다.

버려진 나무 기둥이 무릎까지 빠진 갯벌로 파도는 머리가 흰 물개들이 시합하듯 달려들고 있다.

바람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자전거는 시속 5km로 기어간다.

올해 들어 제일 추운 날씨란다. 

제주도의 바람이 떨고 도망가겠다.      

순식과 동길 형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회장님 앞서가고 아내와 나는 그 뒤를 따른다.

혜숙과 고문님은 뒤에서 보이지 않는다.

3개 부대로 흩어져 각개전투하고 있다.

어디 막걸리라도 한잔하면서 몸을 녹일 곳을 찾아야겠는데 구멍가게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익금해수욕장 5.4km.

적대봉 등 쪽으로 넘어가는 지름길 위에 회장님 기다리고 계신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애절한 눈빛이야 절절히 가슴에 와닿지만,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겠나 싶어 해안일주도로를 선택한다.

멀리 거금대교가 보인다.

간간이 갈대밭과 갯벌이 나오지만, 입이 벌어질 만큼 장관은 아니다.

오로지 바람과 추위와 씨름을 하며 밀리지 않으려고 버틸 뿐이다.     

비교적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동길 형.

거금대교까지 갔다 내려온다.


아침에 차로 갔던 길로 방향을 잡는다.

무슨 일인지 기어 변속하는 아내의 자전거가 자꾸 휘청거린다.

날씨는 점점 어두워져 가고 손끝은 시려오는데 큰일이다.     

옥룡으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길.

정희 누나. 미선이 손을 흔들어 반겨준다.

4시간째 걷고 있는 본인들도 힘들어 죽을 지경일 것이다.

현수 형님은 이미 도착했다고, 걷는 사람들 데리러 가야 하는데 차 키를 찾는다.

오늘 내내 걸리지 않는 동길 형 호주머니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을 차 키.    

 

6시 20분. 숙소 도착.

처음 휴식 후 3시간째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아내의 자전거를 받아주려는데 괜찮다고 뿌리치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따뜻한 방바닥에 손을 묻고 생각한다. 이 무슨 생고생이란 말인가.

장갑을 벗은 아내의 손끝이 빨갛게 부어있다.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 아마 동상에 걸린 모양이다.

현수 형님 두 손으로 한참을 눌러 주는데, 얼마나 아픈지 닭똥 같은 눈물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 가슴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린다.

제주도 여행으로 약간 방심해 얇은 장갑을 낀 것이 사달이 나고 만 모양이다.     

피가 돌고 방으로 옮겨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 못 하는 아내.

큰일이다.

아까 지름길로 그냥 오는 건데, 내 생각만 한 건 아닌지 몰라.

어떻게 기분을 풀어주지.

둘만 있으면 확실한 방법이 있기는 한데?!     



                                   

<4>     

바람에 실려 온 눈발이 점점 굵어지는 저녁 7시.

주인집에 예약해 놓은 광어회가 5개의 도시락에 가득가득 담겨 있다.

바닷바람에 얼굴이 튼 노지 배추.

먹여 살리려고 언 손 호호 불며 뽑아 온 정희 누나. 미선.

어찌나 단지 혀가 목구멍으로 따라서 넘어가려 한다.

숙성된 회도 탄탄해서 씹는 맛이 좋은데 낮에 회보다는 깊이가 조금 덜하다.

초장과 배추, 사과를 버물여 회무침을 뚝딱 만들어 내는 미선은 요리의 신이다.

진이 빠져서 그런지 막걸리 장사가 신통치 않다.

하나둘 방을 찾아 지친 몸을 부린다.   

  

하늘엔 발 디딜 틈도 없이 별들이 가득하다.

백사장으로 올라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목이며 발목이며 틈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바람이 파고든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은 밤이다.

인적 없는 겨울 해수욕장을 향해 “아마존 모텔”의 깜박이는 불빛은 많이 지쳐있다.


옥상에서 별구경을 했다는 순식과 해수욕장을 한 바퀴 돌아온 동길 형.

미선이 끓여준 떡 라면으로 남은 막걸리 사냥을 한다.

야금야금 물어 나른 막걸리가 익어 얼굴 위에서 꽃으로 피어날 때, 시계는 2시를 향해 휘청거리며 걷고 있다.

잠자리가 바뀌면 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내는 벽을 넘어 들려오는 낯익은 코 고는 소리에 깜박 정신을 놓았을 것이다.     


아침 8시.

밖이 훤하다. 거실에 아무렇게 널브러진 육신들.

남은 밥이 아까워 물을 가득 붓고 끓인다.

부지런한 고문님들 구수한 누룽지 한 사발 앞에 놓고 속풀이를 하신다.

밥과 국을 올려놓고 아침 바다로 나선다.

깨끗하게 세수하고 쳐다보는 눈망울이 야물어 보이는 바다.

나란히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 아내와 나.

25년 동안 찍어 놓은 우리들의 발자국은 비뚤어지지 않고 가지런히 잘 따라오고 있겠지.     


언제 일어났는지 동길 형, 순식은 자전거를 차에 싣고 있다.

일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다른 회원들을 위해 먼저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고맙다.

뼈를 우린 떡국이 또 별미다.

주인아저씨가 멸치 대신으로 준 소고기에 양파와 사과를 넣고 볶아 내놓는 미선.

앞으로 우리의 영양을 책임질 영양사님으로 임명합니다.


어제 운전을 한 아내에게 미안한지 동길 형 운전대를 잡는다.

자전거로 갔던 길을 따라 드라이브한다.

거금대교와 소록대교를 넘어 녹동항까지 자전거로 약 1시간이면 될 것 같다.

차도와 인도가 2층으로 된 우리나라 최초의 다리. 거금대교.

30m 정도 걷는데 몸이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 같다. 

자전거로 가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녹동항에 들러 식구들에게 줄, 여러 가지 음식을 포장해 싣고 광주를 향해 출발.

구불구불 주암댐을 향해가는 길.

아내는 결국 멀미를 하고 만다.

동길 형. 도와주는 건 운전대를 맡기는 일이랍니다.     


오후 2시 30분.

일곡동 두부마을.

동영과 택중 형 합류.

세발낙지 15마리가 못 간 두 사람을 위해 거금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추운 바람 속에서 고생은 했지만 원 없이 먹은 회, 세발낙지.

풀꽃 자전거의 연륜은 점점 깊어만 갑니다.     

     

오래 보면 닮는다 하더니

하늘과 바다의 얼굴색이 닮았다     

밤이면

하늘은 바다에 안겨 

지친 꿈을 내려놓고     

아침이 되면 

바다는

하늘 손잡고 그 먼 여행을 따라나선다   

  

앞바퀴 가는 대로

밀며 따라가는 뒷바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은

닮아가겠지     


그래서 더 무섭다

두 눈 부릅뜬 별들이 보는 한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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