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80세에 저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자존심 상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출근하는 길.
새벽 찬 바람이 물러난다.
신호등이 바뀌면 운동회날 100m 달리기 하듯 튕겨 나가는 차들.
바짝 마른 콩이 튄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려면 왜 나왔느냐고?
36년을 한 울타리 안에서 안 해본 일 없었으니, 새 공기를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새 환경, 새 아이들을 보는 것은 덤이다.
앞으로 10년은 아이들과 머리 맞대고 살아가려니 한 발이라도 앞서 준비했어야 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찾는 곳이 많다는 것도 위안이다.
이제는 골라 골라다.
3층 계단 안쪽에는 쓰레기가 좀 쌓였다.
외무처럼 하얀 허벅지를 드러낸 짧은 치마 여학생들이 왁자하게 계단을 오른다.
부잡한 아이가 친구의 엉덩이를 손으로 치는지 자지러지는 소리가 울린다.
한참 뒤로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가는 남학생 한 무리가 뛴다.
뒤에 달려가는 녀석이 앞 녀석의 체육복 바지를 끌어내린다.
들어줄 만한 거친 말이 뛰어오른다.
신기한 것은 폭죽 터지듯이, 큰 파도가 밀려오듯이 커지지 않는다.
그냥 친구들끼리 있을 만한 장난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싱거운 녀석들.
수업 시간도 그렇고 쉬는 시간도 그냥 보내기가 아깝다.
도서관에 들러 박준 시인의 시집 두 권을 빌린다.
대출하려면 등록부터 해야 한다면서 무슨 과목이냐고 묻는 사서 선생님.
확률과 통계라고 했더니 포도알 같은 눈을 빠지도록 크게 뜬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하는 것마다 신기한 모양이다.
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큰일이다.
옆 중학교 운동장에서는 학생회장 유세가 있는 모양이다.
스피커에서는 쩌렁쩌렁하게 자신의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얼굴을 찌푸리거나 문을 닫는 아이들 하나 없다.
누가 태블릿이라도 떨어뜨리면 와하고 웃거나, 한 마디씩 거들어 교실 분위기가 금방 소란스러워져야 하는 것 아닌가?
좋게 말하면 학업에 집중하는 것이고, 좀 인색하게 가자미 눈으로 바라보면 오직 자기 일에만 관심 있는 서울깍쟁이다.
좀 더 지켜보면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좋은 쪽에 한 표를 던지면서 말이다.
손짓과 입 모양 그리고 눈빛으로도 소통이 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4세대 나이스 문제를 가지고 답을 찾아가는 선생님의 분위기도 생소하다.
부탁하는 사람이나 설명하는 사람이나 너무 조용조용하다.
한바탕 큰소리도 나와야 맛인데.
많아야 서로 안 지가 1년에서 5년.
국립학교의 상황이 만든 모습일 것이다.
평생을 같이 부대끼며 사는 우리 학교에서는 형님 동생이 자연스러웠는데.
여기는 조금씩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적당한 거리가 존재하는 문화라고나 할까?
예전의 일은 교무실 행정실무사가 제일 많이 아는 것 같다.
부대의 선임하사처럼.
브런치 업데이트.
교안 쓰기.
책 읽기.
운동까지 바쁘다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