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은 가을

2023.10.19. 목

by 고주

뭐 그리 화가 난다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여는 새벽 발뒤꿈치로 밀고

해볼 테면 해보라 한다.

추적대던 비는 사선으로 차 앞유리창을 쭉 긋는다.

화장도 옷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가을

잘난 백 찾기 바쁘다.

뉴스 속의 형상이 그리 돌아가고 있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첫 번째라는 것이 위안이 된다.

오늘 처음 교무실 유리창을 열다 말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가 오는데

굳이

복도에 떨어진 과자봉지를 줍겠다고 허리를 굽히다 또 주춤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느니.

서른 넘어 군대에 온 바짝 군기든 이등병 신세다.

휴대폰에 무수히 찍힌 대리운전 홍보 문자

다 털렸군.

촌에서 올라와 술이 무서운 나다.

잘못해서 방향이라도 헷갈리면 삼팔선도 모르고 넘어갈 멍충이.

가던 길도 몇 번이고 돌아보아야 한다고 믿는 나다.


창밖에선

바람 데려와 판을 벌인 비

살집 없는 앙상한 나뭇잎 절뚝이며 내려온다

새벽 장 나가는 할머니처럼

보채는 이 없는데

알아서 서둘러

쓱쓱 길을 쓰는 할아버지

억척스럽게 달라붙는 어린놈

달래 가며 오래오래

깨끗해진 길

오늘의 가을은 개운하게 다 쓸었다

떨어지는 낙엽도

쓰는 할아버지도

걸어가야 할 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같은 공간에

함께 한 시간에

손잡고 지문을 찍어야 하는 일

붙잡는 손 뿌리치는 가을이 서운해지는 날이다


“오직 공부, 오직 실력”

그 옆에 “봉사”

독감 때문에 며칠 쉬다 늦게 온 아이가

우산으로 하늘을 가리고

비로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돌에 새겨진

천둥 같은 말을 듣는다.

뿌리치기에는 너무 힘이 센

걸음마를 배웠을 때 계셨던 교장 선생님의 말씀.

식당으로 가는 길이 1학년 교실을 지나서도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수학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간지러운 국어 선생님의 경상도 사투리.

벽을 뚫고 파도로 밀려온다.

물속에 잠겨있는 교실에는 빠져 죽지 않으려고 구명조끼 단단히 조이는 녀석들이 숨도 못 쉬고 떠밀려 다니고 있다.

이 바다에서는 노를 젓는 것도 재미있겠다.

시절이 문제인가?

사람이 해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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