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2023.10.20. 금

by 고주

말만 한 여학생이 교무실에 와서 화장지를 찾는다.

선생님은 화장지를 몽땅 풀어놓는 학생이 있어 당분간은 화장실에 화장지를 비치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 화장실에도 입구에만 휴지가 있지 칸 안에는 화장지 거치대가 찌그러져 있었다.

학생들이 들어와 사용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으리라.

이 모든 결정은 청소하는 아주머니이고 선생님들은 그 이유에 대해 교육하고, 학생들은 또 수긍한다는 것.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은 그만큼 깊다.

서로를 존중하고 협조하면서 차분하게 학교가 움직이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모습이다.

부럽다.

처음 질문하는 착한 학생은 누구일까?

교재의 모든 문제를 이면까지 다 들여다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이 조금 느슨해지는 기분이다.

느긋한 여유라고나 할까.

혹 이것은 방심이라고 부르는 악마의 유혹일 수도 있다.

뒤에서 예고 없이 날아오는 화살을 맞으면 아플 텐데.

바짝 웅크리자.

뱃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노란 병아리 쿠션에 머리를 묻고 잠든 곰만 한 아낙.

저래도 되나?

놀림을 받을 텐데.

나만 꼬리에 불붙은 쥐다.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것은 또 왜?

가만 보니 귀에 이어폰들이 꽂혀있다.

밖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차단하는 절대고요.

야, 이제 조금 무섭다.


모나미 볼펜 뒤꽁무니 한쪽이 반질반질하게 닳아 반이 될 때까지 책을 문질렀다.

소가 되새김하듯이 눈을 지그시 감고 몇 번이고 주문처럼 외웠다.

때론 줄이 그어져 있지 않은 연습장에 빽빽하게 글씨를 쓰며 외우기도 했지.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딱딱한 굳은살이 잡혔지.

그래 바로 외우기였다.

요즘의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는 공부를 한다.

책에 직접 풀이를 쓰면서.

책에 연습장까지 포함되어서 값이 비싼가?

친구의 동아 자습서를 빌려보던 나 때 타령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다.

담쌓고 몽땅 외워버리는 무모보다 원리와 개념을 확실하게 알고 변형되는 길목을 잘 지키며 앞을 내다보는 창의력이 중심인 시대.

또 어떻게 변해갈까?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는다.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거나 창 너머 운동장에 시선을 두고 몇 번이고 머리를 굴린다.

그래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는다.

고개가 끄떡여지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표현에 감탄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혹 50년생인 정시인과 61년생인 안시인의 나이 때문은 아닐까?

공감하는 점이 비슷한 안시인에 가까워지는 것은.

함민복과 마종기 시인의 전집을 빌려 나오는데, 사서 선생님이 묻는다.

아이들이 시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데 본인이 시를 많이 읽지 않아 잘 모른다면서.

대부분 나태주 시집만 찾는단다.

아마 따뜻해져서 그런 모양이라고.

최근 시는 너무 난해해서 읽기가 힘들고, 유명한 시들이 한꺼번에 묶인 전집이나 섬진강 시인 김용택, 연탄 시인 안도현, 영원한 방랑자 류시화 시가 나는 좋다고 했다.

내 책 한 권 기증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무슨 연예인 보듯 한다.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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