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세상 밭에 뿌린 두 번째 씨앗
땀 한번 제대로 손등으로 훔치지 않고 보낸 3주
그냥 바라만 보았다
벌레 한 마리 먹지 않았다
자잘한 소금에도 잘 절여지는 부드러운 배추였다
오래 묵혀 진하게 먹는 김장 김치가 아니라
쓱쓱 양념 문질러 먹는 겉절이였다
많이 짙어진 어둠을 뚫고 달리는 도로
0070을 쏘아붙였던 교무실 열쇠
수업 시간을 빼고는 내 엉덩이를 고스란히 받아준 의자
질문하는 학생 한 명 없었지만
맘 단단히 먹고 기다린 EBS 교재
그래 여기서는 마지막이다
허겁지겁 시작종 소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당당히 멱살 잡고 끌고 교실 문 열었다
바람처럼
단풍나무 아래 노니는 느린 바람처럼
소리 없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휑하게 빈 눈은 아니었다
시집에 눈을 묻고
파도 넘실거리는 바다
바람에 쓸리는 나뭇잎
찬 낮달
주어도 주어도 부족한 어머니
책에서 길어 올려 가슴에 쌓고 또 쌓았다
하필이면 오늘 집어 든 시집이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사월의 알맹이만 남고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첫날 입고 온 옷을 마지막 날 똑같이 입고 나왔다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
맘속에 담아 가지 못한 후회야 없을 수 없지만
느리게 가는 시간 기다리느라 시계 자주 쳐다보지 않았다
힘들다고 내 노구 아무렇게나 부리지 않았다
짱짱하게 버텼다
시간 죽이고 가는 노인네로 보이는 것은 싫었다
알겠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자는 아이들 깨우고 싶었고
문제를 놓고 머리 조아리는 순간을 기대했었고
비록 한 마디 입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많은 기도를 담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약속대로 수능 가도에 절대로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건투를 빈다
옆자리 교무부 선생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많이 챙겨주어 고마웠다고
참 좋은 학교에서 인생 2막을 연 행운을 얻었다고
다시 기회가 되면 보자는 말로 답해주었다
마치 정해진 길을 걸어 나온 기분이었다
퇴근 시간과 겹치면서 혼잡한 도로
경인 교통방송을 들으면서 돌아오는 길
내일은 중학교 1학년
수업 교문지도 급식지도 청소지도까지
아이들 곁으로 가서
손짓이 되고
의미가 되고
꽃이 되어야지
많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