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날

2023.10.31. 화

by 고주

마지막 날


세상 밭에 뿌린 두 번째 씨앗

땀 한번 제대로 손등으로 훔치지 않고 보낸 3주

그냥 바라만 보았다

벌레 한 마리 먹지 않았다

자잘한 소금에도 잘 절여지는 부드러운 배추였다

오래 묵혀 진하게 먹는 김장 김치가 아니라

쓱쓱 양념 문질러 먹는 겉절이였다

많이 짙어진 어둠을 뚫고 달리는 도로

0070을 쏘아붙였던 교무실 열쇠

수업 시간을 빼고는 내 엉덩이를 고스란히 받아준 의자

질문하는 학생 한 명 없었지만

맘 단단히 먹고 기다린 EBS 교재

그래 여기서는 마지막이다

허겁지겁 시작종 소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당당히 멱살 잡고 끌고 교실 문 열었다

바람처럼

단풍나무 아래 노니는 느린 바람처럼

소리 없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휑하게 빈 눈은 아니었다

시집에 눈을 묻고

파도 넘실거리는 바다

바람에 쓸리는 나뭇잎

찬 낮달

주어도 주어도 부족한 어머니

책에서 길어 올려 가슴에 쌓고 또 쌓았다

하필이면 오늘 집어 든 시집이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사월의 알맹이만 남고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첫날 입고 온 옷을 마지막 날 똑같이 입고 나왔다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

맘속에 담아 가지 못한 후회야 없을 수 없지만

느리게 가는 시간 기다리느라 시계 자주 쳐다보지 않았다

힘들다고 내 노구 아무렇게나 부리지 않았다

짱짱하게 버텼다

시간 죽이고 가는 노인네로 보이는 것은 싫었다

알겠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자는 아이들 깨우고 싶었고

문제를 놓고 머리 조아리는 순간을 기대했었고

비록 한 마디 입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많은 기도를 담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약속대로 수능 가도에 절대로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건투를 빈다


옆자리 교무부 선생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많이 챙겨주어 고마웠다고

참 좋은 학교에서 인생 2막을 연 행운을 얻었다고

다시 기회가 되면 보자는 말로 답해주었다

마치 정해진 길을 걸어 나온 기분이었다


퇴근 시간과 겹치면서 혼잡한 도로

경인 교통방송을 들으면서 돌아오는 길

내일은 중학교 1학년

수업 교문지도 급식지도 청소지도까지

아이들 곁으로 가서

손짓이 되고

의미가 되고

꽃이 되어야지

많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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