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서도 끄떡없을 것 같은 두툼한 잠바를 입고
만물상의 물건을 다 담고 왔을 큰 배낭을 메고
긴 장화를 신고 서해라도 건너겠다는 다짐
오른손엔 용왕님 신하들은 다 잡아드릴 무기를 숨긴
다른 손엔 생포해야 한다는 엄명을 받은 가방을 들고
새벽 열차를 기다리는 두 노인의
출근길 긴 행렬을 덮는 어둠의 망토를 걷어내는 형형한 눈빛
자유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밤 밟으며 걸어가는 것이다
팽팽하게 힘겨루기 할 꿈의 깊이가 그려진다
부럽다
내리는 위치가 지하로 가는 계단 앞이 되는 자리에 서서 기다리기
열차를 타면서부터 문 앞을 차지하기
문이 열리면 곧바로 계단으로 달리기
굽이굽이 몇 번을 돌고 내려가면
막 도착한 수인분당선을 탈 수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더 부지런 떠는 것처럼
1시간도 더 넘은 출근 시간
호들갑을 떨고 있다
뒷짐 지고 여유를 부리고 싶으면 언제든지
다 내 맘
빨간 나뭇잎이 쥔 아기 주먹 같다
길가에 수북하게 쌓여 바람에 흔들흔들
막 걸음마 시작한 몰티즈 수놈이
한 다리 들고 단풍나무에 영역표시를 한다
몸을 부르르 떠는 신경질 난 단풍나무
집에 혼자 있는 저 녀석이
어디서 배웠을까?
피가 시키는 것이겠지
내가 떠도는 것처럼
아마 난 낙타 타고 사막을 떠도는 베두인이었을지도
남극에서 북극까지 왔다 갔다 하는 흰 수염고래였을지도
손수건을 입에 대고
잔기침과 함께 어렵게 어렵게
마친 오늘의 진도
끝 종이 울리려면 10분이 남았다
“원하는 공부 하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쉭 책상 위로 올려지는 영어와 수학 참고서
해야 하는 학원 숙제
몰래 두 가지를 함께 했을 아이들의 노고
더 어려운 책을 하고 있다고 우기는 녀석들
통계로 조사한 결과
6시간을 못 자는 아이들이 절반
한참 커야 할 중학교 1학년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사는가?
자신들도 못 한 이 고행의 길을 자식들에게 들이밀어야 하는
아픈 부모의 맘
세상이 등 떠민 먼 먼 아픔의 길
2시간 연속으로 하는 진로탐색시간
언어, 신체 운동성, 논리 수학, 음악, 공간, 인간 친화, 자기 성찰, 자연 친화 8가지 지능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미리 검사를 받았고 오늘은 그 결과지를 나누어주고
자신에게 맞는 직업과 강점과 약점을 읽어내는 해석의 시간
지글 보글 짝짝 박수도 치고
밭을 갈고 있는 소년에게 나이를 물었더니
“밭둑이 모두 무너졌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소년은 몇 살일까요?
퀴즈도 풀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노래요! 축구요! 대답해 가는데
갑자기 조용
숨 막힌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다 툭 튀어나오는 대답
엄마요!
와 터지는 웃음
선생님은 인간친화력 지능이 강점이구나
현명한 대답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목소리가 점점 탁해지고 있다
목에 걸려있는 가래를 꺼내려고 온몸을 쥐어짰더니
뒷골이 아프다
가겠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끔히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빨리 와라,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