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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추모

2024.04.16. 화

     

어제 퇴근길까지 있던 붉은 자전거가 그래도 있다.

의심의 눈초리가 점점 확신으로 바뀐다.

빨리 자수하면 좋은데.

영원히 그대로 있을 것 같은, 완전범죄를 꿈꾸는 얍삽한 누구. 

일단 위기는 넘기고 보자는 심보겠지.

cc tv가 훤히 보고 있으니, 시간문제다.    

 

“왜 후문에 안 나오세요?”

평소에 잘 아는 체도 하지 않는 새침데기가 대뜸 하는 말.

엄마 없는 집에 가기 싫은 아이 심정이었을까?

새벽이슬 밟고 학교에 나오는 일, 별 하는 일 없어도 교문이든 후문이든 아이들 오는 모습 지켜보는 일.

땀 냄새나는 일에는 공것이 없다.

정문에 2주째 있으니, 후문에서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었나 보다.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부지런히 발품 팔자.     


6반. 모두 한 번은 풀이에 참여했다.

안 되는 사칙연산이지만 해보겠다고 나서고, 답이 틀리더라도 기죽지 않는 뻔뻔함.

어떻게 해답을 보고 써놓기는 했지만, 설명을 할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는 순진함까지.

이제 학생부에 올리는 일만 남았다.

미루지 말고 서두르자.     


7반. 자는 시간 줄여가며 영화를 보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름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어여쁘게 들어달라.

양념 듬뿍, 초치고 기름치고 분위기에 군불을 땐다.

페르마의 밀실은 3번째 반에서 빛을 발한다.

몇 번 하다 보니 앙상한 뼈에 적당한 살도 붙었나 보다.

아직 두 개 반이 더 남았다.

지나친 양념은 맛을 느끼하게 하는데.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행복해지는 것, 사랑하는 것.

대답들이 너무 영감이다.

이미 북유럽의 아이들이 다 되었다.   

  

세월호 10주기.

중앙현관에 추모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안산이 바로 옆 동네이니 그 아픔의 씨앗이 넓게 뿌려졌고 깊게 뿌리내렸을 것이다.     

자전거 주인이 나타났다.

하교하는 아이들 틈에서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는데.

하루를 덩그러니 있던 자전거의 열쇠를 푸는 녀석.

배구부라 일찍 등교하고, 어제는 비가 와서 그냥 집으로 갔단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모습이 감추는 것은 없어 보인다.

이래서 생사람 잡는 것이다.

진짜 범인은 어디에서 고소하게 웃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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