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주 Aug 10. 2024

알아가기

2024.06.11. 화

<알아가기>

    

운동하는 어르신들이 놀이터 기구에 가득.

일하러 가는 젊은이의 발걸음이 팔랑팔랑.

덜 식은 주전자 속 보리차처럼 뿌옇게 흐려진 수리산자락.

오늘도 만만치 않겠다.

“미래의 주인을 맞이하는 핑크 카펫”이라 써진 임산부 배려석.

무거운 배낭 가슴에 안고, 발 사이로는 코펠 가방, 살짝 벌어진 입.

미래의 주인을 준비하기는 가망 없어 보이는 할머니.

왼손에는 휴대폰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밥만 먹으러 오는 아이들.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별일 없다는 것이니.

한국어를 너무 잘 따라오더니 제 나라 아이가 오고 나서는 다시 원상 복귀.

저 녀석들을 떼어놔야 하는데.

이 동네에서 난리가 난 마약.

아이들이 운반책으로 이용된다니.

돈맛을 알아버린 녀석은 학교가 아닌 뒷골목으로 가버린다고.

빨리 이곳 생활에 적응시켜 주는 일이 애국하는 일이다.

선생님들의 고민은 깊어 간다.


“안산에 국제학교를 세우겠다네.

공부 잘하는 아이들 모으겠다는 심보는 뭐야?”

“맨날 회의 때 건의해도 말짱 도로 묵이야.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예비학교가 필요하지. 결국 학교는 ‘너희들 알아서 죽어 봐라.’ 그말이여.”

이 나라는 백성들이 알아서 지킨다.

무슨 의병들처럼 책상 앞에서 칠판 앞에서 땀을 흘리는 우리 선생님들.     


러시아 천사가 혼나고 있다.

어제 영어 시간에 딴짓하고 있다가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 못 해서 버럭 소리를 치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을 방해했다는 죄.

통역이 가능한 특별반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말을 옮겨가며 취조하고 있다.

빨리 꼬리를 내릴 것이지, 시답지 않게 고집을 부리나 보다.

생활규정위원회에 회부 하겠다는 겁박에 반성문으로 퉁 치는 모양이다.

이렇게 엄격하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가겠지.

귀를 쫑긋 세우고 분위기 파악하느라 바쁜 초보 샘이다.     


1교시가 없어 운동장으로 나왔더니, 화단에 오골계 여러 마리가 먹이를 쪼고 있다.

“귀엽지요?

우리가 알에서부터 길렀거든요.”

내 눈엔 왜 닭도 이국적인 외모로 보이지, 다문화 닭.     

4반, 3교시.

또록또록한 여럿, 영롱한 몇, 안개 속 여럿.

자꾸 토를 다는 녀석, 배부른 중국인 같이 생긴 녀석.

이름을 물으니 팔천 원이라나 뭐라나.

내 눈에는 딱 저팔계구만.

자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는 녀석들은 수업이 재미없다는 이야기인데, 재미있게 해줄 능력이 없는데 어쩌냐?

“방금 지우신 내용 다시 써주시면 안 돼요?”

얌전하게 생긴 백옥같은 수연이가 눈을 또록 뜨고 애원한다.

노트에 깨끗하게 필기하는 유일한 아이.

집 떠나서 고생한다.

너희 나라에서였으면 일등 한다고 했을 것 같은데.

또록, 영롱을 위해서라도 목이 잠기도록 소리를 지른다, 어지럽다. 

2300년 전 유클리드 어쩌고 저쩌고를 알겠느냐만, 고개를 끄떡여 주는 성의가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시험 볼 시간은 없을 것 같다고 했더니 교실이 떠내려간다.

시험은 달에서도 화성에서도 싫은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예수님도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라고 애원했겠는가?      

전복이 들어간 두부 된장국, 잡곡밥을 고봉으로 뜬다.

망설임 아이스크림도.

주변 선생님들도 다 일꾼 밥이다.

학기 말 프로그램을 짜느라 밥상도 토의마당이 된다.

간혹 건져지는 전복에 환호하며 몰아넣는다.

어지럼증은 없어야지.

작가의 이전글 이른 출근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