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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Aug 10. 2024

또 새 날

2024.07.16. 화

<또 새 날>     


1학년 교무실이 닫혀있다.

밖에서 월부책 장사처럼 기다려야 하나 대략 난감.

‘띠릭’ 

나만큼 부지런한 남선생님이 바로 들어가신다.

무엇이 바빠서 새벽부터 설치나, 초랭이 삼시랑처럼.     

8시 10분, 대부분 선생님이 출근을 마쳤다.

수학여행을 즈음하여 반 아이들의 분열이 심각하다고.

방 배정을 하면서 쏟아진 비난과 음모가 아직 아물지 못했다고.

겨울의 공사 때문에 여름방학이 짧아진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우리들이 더 불쌍하다고.

점검일은 다가오는데, 생기부는 언제 다 쓰느냐고.

여선생님들의 하소연.

그래도 목소리들은 꾀꼬리다.

아이들과 남의 편 떠나면 다 여행가는 기분인가 보다.

아마 우리집도 지금 휘파람을 부를 것이다.


평소에 잘 먹지 않은 커피를 두 잔이나.

처음 보는 선생님 챙기느라 수고가 많으시다.

군기 잔뜩 든 졸병이 감히 거절할 수가 없다.     

한 학년이 13반까지 있는 큰 규모의 고등학교다.

교감 연수 때문에 비운 시간을 대신 채우는 역할.

학기 말 프로그램으로 전공 탐색 활동.

‘저비용 저가 항공사’ ‘그라운드 위의 물리학’ ‘윤리적 문제가 지속되는 AI’ ‘실용적인 군복 디자인’ ‘ 문서와 그림을 보존하는 방법’ 

조별로 앉아 진지하게 의견을 나눈다.

벽에 용지를 붙이거나 바닥에 펴서 포스터를 그린다.

PPT 자료를 만든다.

태블릿을 켜놓고 예상되는 질문과 답을 찾아, 발표하는 아이에게 제공한다.

빵빵한 에어컨 아래서 눈에 익은 조합, 붉은색 티에 검정 체육복을 입고.

하루 종일 이렇게 보낸다니.

잘 훈련된 군인들 같다.


임장만 하는데도 배가 고프다.

열네 분 중 달랑 남자 세분.

“우리 학교 급식 맛있습니다.”란 말이 없는 것은 처음이다.

양념이 겉도는 겉절이.

짬뽕, 면과 국물 중 누가 범인일까?

화장이 어색한 샤인머스켓과 사과.

옷이 헐렁한 탕수육까지.

다이어트에는 큰 도움이 되겠다.     


오후가 되니 아주 조금이기는 하지만 오돌토돌한 돌맹이처럼 눈에 거스르는 아이들도 보인다.

노골적으로 연예질하는,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는, 화장을 하는.

선생님들은 한 명씩 교무실로 불러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응시할 것인지 면담하고 있다.

겨우 1학년 1학기인데.   

  

기어이 비가 쏟아진다.

손 놓고 퍼질러졌던 며칠.

바빠야 시간을 쪼개 새 일을 찾는 내 성미.

도서관에서 빌린 시집 세 권. 

성산포에서는 

술은 내가 먹는데, 바다가 취한다고 하셨던 이생진 시인의 ‘하늘에 있는 섬’은 다 읽었다.

나머지 두 권을 보듬고 신나게 놀아 볼란다.

8월 1일까지는 방학이다.

하루가 나를 이렇게 들뜨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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