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주 Aug 10. 2024

또 마지막, 어쩌면 또 시작

2024.08.07. 수

<또 마지막, 어쩌면 또 시작>

     

오늘이 마지막 날.

짧기는 했지만, 머리가 심란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몰두하다 피곤해 떨어지면 한밤이 훌쩍 지나갔다.

정해진 학교가 있으면 좀 쉬어도 홀가분할 것 같은데.

무슨 말로 작별 인사를 할까?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시라.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라는 말은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가시나무 위에 앉아있는 것 같은 지금이 바로 꽃자리라고.

쉰 소리라고 노인네 취급이나 당 하지 않을까?   

  

담임 선생님들은 GPS 프로그램 신청자를 받느라 바쁘다.

금요일 일과 후 저녁 8시 30분까지 대학생들이 와 학과 안내와 입시 준비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시간.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고, 입시에 도움이 되는 안내를 받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수도권이라는 동네가 여러 가지로 많은 기회의 땅이다.

이러니 서울로 서울로 모이는 것이지.

안쓰러운 내 고향의 아이들이여.     


옆자리 조 선생님이 조용히 묻는다.

명예 퇴임을 하고 다시 교단에 서는 일에 대하여.

의료보험과 세금 신고는?

정년이 5년 남았을 때 명예 퇴임을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날로 늘어나는 학부모님의 민원 때문에 전화 받기가 겁난다고.

학생부 기록과 시험문제 출제에 대한 부담.

주관식 채점 결과에 수긍하지 않는 아이들과의 씨름.

학교 나오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학교 이외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우리들의 선생님 이야기.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감추고 들었다.

학교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편하게 결정하셔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셔도 될 때라고.

아쉬우면 다시 교단으로 오는 방법은 많다고.

홀가분하게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길은 많다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설명은 정석 같아요.

머리는 자연인가요?

저도 완전 흰색이 되면 뒤로 묶고 싶은데.”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는 다 어디로 가고, 범계역 근방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노인이 있으면 자세히 봐 달라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보니 전화기가 불났다.

모르는 곳에서 2통이 찍혔다.

약속 시간을 잡고 학교로 간다.

나만큼 식은 분이 교무실을 나선다.

“도저히 할 수 없다고 가시네요.”

무척 실망한 목소리다.

금요일부터 나오실 수 있느냐고.

일단 고개를 끄떡여주었다.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메일로 보내드렸다.

딱 하루만 쉬는 것은 조금 거시기한데.

모르겠다 닥치고 보자.

결과는 내일 알려주기로 했으니.

해고된 기념일이나 재미지게 보내자.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