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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Aug 10. 2024

우리는 안다

2024.08.06. 화

<우리는 안다>

     

대체로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고개가 끄떡여지는 얼굴.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 떠는 태도.

2등 여선생님은 음수대에서 물이 넘쳐 복도를 흥건하게 젖게 하고 아래층으로 달음질치는 것을 발견했다.

행정실에 연락하고 아이들을 시켜 1층 도서관 복도까지 청소를 마쳤다.

후로 온 선생님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3등 남선생님은 에어컨을 끄지 않고 하교한 반을 찾아내 교육한다.

한 학생씩 불러 희망하는 대학과 학과를 물어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지도하고 있다.

수도권 자동차 관련 학과를 가려면 내신이 2등급 이내로 들어와야 한다고.

학생부에 기록을 남기려면 많은 학교 활동을 해야 한다고.

물리 화학 생물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야 한다고.

또록또록하게 의견을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1등으로서 뿌듯한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다.

무엇을 바라고 저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냥 좋아서, 하지 않으면 불편할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도박은 불치병이라며 한숨을 쉬는 선생님.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빚이 200만 원까지 불어난 아이가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교에 오지 않는단다.

부모님도 어찌할 수 없단다.

한방에 만회하기 위해서 도깨비 눈을 하고 때를 노리겠지.


여학생들끼리 얽힌 감정의 실타래가 풀릴 기약 없다.

며칠째 끙끙 앓고 있다.

사람의 감정을 중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가?

차라리 한 자리에 모아 서로 해결하라고 맡겨 놓으면 어떨까?

영원히 알 수 없는 여자의 마음이여.     


오늘은 양말을 벗어버렸다.

체면이고 뭐고 다 버렸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냉탕과 열탕을 번갈아 가며 5시간 동안 파편을 튀기며 수업을 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내 발을 보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 만든 목걸이에 내 목을 걸지는 않았나?

호주머니에서 떨어지는 휴지를 남이 볼까 무서워 허겁지겁 주웠고.

좀 풀어져도 되는 선술집 목로에서 샌님 행세는 하지 않았는지.

이제는 조금 풀어져도 되는데.     

벌써 한 반은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아쉬워하는 녀석들도 있다.

시간이 조금 길었으면 맘에 내 자리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을.

마지막까지 원 없이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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