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고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by 분홍신

오래전부터 몇 번이나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앞부분 한두 장을 넘기다 말고 포기했던 책이다. 이번에 감기에 걸려 침대에 꼼짝 못하고 있는 동안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책을 잡았다가 끝까지 읽고 말았다. 전혀 어렵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은, 편하면서도 200년이 지난 오늘 읽어도 별로 막힐 게 없는 책이었다. 지금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그때도 똑같이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 자연을 파괴하는 것들에 대한 걱정. 물론 지금과는 안 맞는 부분도 있다. 집이나 물려받은 토지, 재산 이런 것들이 오히려 삶을 고되게 하는 짐이 된다는 부분은 오늘의 현실에선 긍정하기 힘든 부분이다. 집이 없어서 삶이 불안해지고, 열심히 일하지만 집값은 계속 오르고, 그러니 소유하지 않고 누리기만 한다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지 않았을 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속에서 오롯이 누리는 자연과 나만의 삶, 자연이 내게 주는 아름다움을 빈틈없이 맛보고 누리는 삶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꿈같은 상황이다. 한없이 각박하고 팍팍한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또 하나의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런 숲속에서 혼자 살아볼 용기라든가 꿈은 못 꾸지만 책을 통해 맛볼 수 있으니. 언젠가 내가 시골로 내려가서 산다면 이 책을 가지고 갈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모든 것을 미뤄놓고 맛보았던 비 오는 날, 지붕을 두드리는 눈 보라치는 겨울밤, 마당이 없으니 눈 쓸 걱정도 할 필요 없는 삶, 콩밭 매기 이런 것들을 되새기며 자연에 더 가까이 하는 삶, 그것을 나름대로 진솔하게 써 보는 삶을 살아볼 것이다.


괜히 고전이 아니었다. 1845년의 숲속에서 불과 일 이년을 보낸 이야기인데 바로 어제의 일 처럼 생생하게 와 닿는 책이다.


책 속에서

경제

우리 마을의 젊은이들은 농장, 집, 헛간, 가축, 농기구 등을 물려받아 불행한 삶을 산다. 이런 것들은 쉽게 얻을 수 있어도 버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드넓은 초원에서 태어나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농장을 물려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짐이 되는구나)

그들은 왜 태어난 순간부터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해야 하는가, 그들은 앞에 놓인 그 같은 짐을 밀면서 한평생 살아가야 한다. ... 인간은 필연이라 불리는 허울 좋은 운명에 순응한 나머지 좀먹거나 녹이 슬거나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갈 재화를 모으는 일에 정신을 팔고 있다.


흔히 인간의 내면에는 신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밤낮없이 짐마차를 몰고 장터를 돌아다니는 마부를 보라! 도대체 내면에 어떤 신성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말인가? 그의 가장 큰 의무는 말에게 먹이와 물을 주는 것이다. 운임으로 얻는 이익과 비교할 때 과연 그에게 운명이란 무엇인가?..... 그는 '세간의 평판이 요란한 나리'를 위해 마차를 몰지 않는가? 그는 얼마나 신성하며, 얼마나 영원불멸한 존재인가? 그가 얼마나 움츠리고 숨는지, 온종일 얼마나 막연한 불안에 떠는지 살펴보라.... 또한 자기 운명에 순수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죽는 날까지 변기 방석이나 짜는 이 땅의 여인들을 생각해 보라!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도 영원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담보 잡힌 상태로 농장을 물려받았거나 돈을 빌려 농장을 구입했기 때문.. 하지만 아직 빌린 돈을 갚지 못한 농부들이 태반이다. 그들은 노동의 3분의 1을 집값을 갚는데 바친다.(어떻게 하라고. 물려준 농장을 거부하란 말인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안락하게 살기 위해 능숙한 솜씨로 올무를 놓지만 돌아서자마자 그 덫에 발이 걸리는 식이다. 그래서 농부는 평생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비슷한 이유로 우리는 모두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나 수많은 원시적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째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항상 바둥거릴까? 때로는 더 적게 가지고도 만족하는 법을 배우려고 애써야 하지 않을까?... 오지 않을 손님을 위해 빈방을 마련해야 한다는 따위의 훈계를 하고....


미국의 대학교에서는 가난한 학생도 정치 경제학을 배우고 공부할지언정 철학과 동의어인 생활경제학은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 결과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와 세를 읽는 동안 학생은 자기 아버지를 헤어날 수 없는 빚구덩이에 빠뜨리고 만다.


해야 하는 일의 양을 놓고 생각하면 소가 더 유리한 것 같다. 소가 사는 농장은 상당히 넓다. 게다가 소가 일한 대가로 사람은 육 주 동안 건초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무척 힘든 노동이다.


피라미드도 어느 야심 찬 얼간이를 위한 무덤을 축조하는 일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평생을 바쳤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그다지 경탄할 것이 없는 축조물이다.


독서

글로 기록된 문자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귀중한 유물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예술 작품보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보편적이며,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예술품이다.

문맹에다 글을 냉소적으로 대하는 상인이 근면성과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그토록 바라던 여유와 자립할 만한 수입을 얻어 부유한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면 필연적으로 그보다 더 높은, 그러나 아직은 접근할 수 없는 지성과 재능의 세계로 눈을 돌리기 마련인데 그러기에는 교양이 턱없이 부족하며 재산 또한 덧없고 쓸모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결과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뼈저리게 느끼는 지적 교양을 자식들 만큼은 갖추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그럼으로써 그는 한 가문의 창시자가 된다.


소리

이따금 여름철이면 평소처럼 미역을 감은 뒤 햇볕이 잘 드는 문간에 앉아 동트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채 끝없는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럴 때면 소나무와 호두나무와 옻나무를 비롯하여 고독과 정적이 나를 감싼 가운데 주변의 새들이 노래를 하거나 소리 없이 집안을 들락거렸다. 나는 그렇게 조용히 공상에 잠겼다가 서쪽 창문으로 햇빛이 비쳐 들거나 멀리 떨어진 큰길에서 여행자의 마차 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시간이 흘렀음을 알았다. 나는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밤새 자라는 옥수수처럼 쑥쑥 성장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날아가 버릴 석탄 나르는 양동이나 블라인드도 없었다. 집 뒤의 소나무가 바람에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히면 그대로 땔감이 되었다. 어쩌다 폭설이 내려도 앞마당에서 대문에 이르는 길이 막히는 일은 없었다. 앞마당도 없고 대문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 집 주위에는 문명 세계로 통하는 길 자체가 없었다.


고독

사계절과 우정을 나누는 동안은 어떤 것도 내 삶을 힘겨운 짐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믿는다. 오늘 내 콩밭을 적시고 나를 집 안에 붙들어 매는 보슬비는 따분하고 우울한 비가 아니다. 콩만 아니라 나한테도 이로운 비다. 비가 내려서 콩밭의 김을 매지 못하지만 비는 김을 매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

숲에 들어오고 나서 몇 주 지났을 때 가까운 곳에 이웃이 있는 것이 평온하고 건강한 삶의 필수 조건이 아닐까 하고 한 시간쯤 생각한 적은 있다. 혼자라는 게 썩 달갑지 않았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런 생각에 잠길 때면 문득 대자연 속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속에, 집 주변의 모든 소리와 풍경 속에 무척 상냥하고 다정한 세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봄이나 가을에 폭풍우가 오래 지속되는 동안이었다. 나는 오전은 물론이고 오후에도 집 안에 틀어박힌 채 쉴 새 없이 윙윙대는 바람 소리와 세차게 퍼붓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달랬다.

대학교의 매우 혼잡한 강의실에서도 정말로 열심 공부하는 학생은 사막 한가운데의 수도승만큼이나 고독하기 마련이다. 농부는 밭에서 김을 매거나 숲에서 나무를 베며 온종일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방문객들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가던 길에서 벗어나 나를 만나고 내 집의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찾아와서는 방문의 구실로 물 한 잔을 청했다. 나는 호수를 가리키며 물은 호수에서 길어다 마신다고 말하고는 원한다면 바가지를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호수

이따금 나는 마을의 어느 집 응접실에 앉아 있다가 그 집식구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뒤에야 숲으로 돌아와 이튿날 점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달빛 아래 배를 타고서 올빼미와 여우들의 세레나데를 듣고 어떤 이름 모를 새가 가까이에서 우는소리를 들으며 한밤중에 두어 시간 낚시를 했다.

월든 호수는 나를 위해 누군가 파 놓은 샘이다. 일 년에 넉 달은 물이 늘 맑은 만큼 차갑다. 그 시기에는 일대에서 최고라고는 못 해도 어떤 물에 뒤지지 않을 만큼 좋다고 생각한다. 겨울에는 공기에 노출된 물이 공기와 닿지 않는 샘물이나 우물물보다 더 차다. 1846년 3월 6일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정오까지 내 방의 온도는 지붕에 내리쬔 햇볕의 영향을 받아 한때 섭씨 18-21도까지 올라갔지만 방에 놓아둔 호수의 물은 5.5도를 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를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나는 하루 중 가장 귀중한 시간을 그런 식으로 보내고 싶어 툭하면 아침나절에 호수로 빠져나왔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햇빛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과 여름날을 마음껏 누리고 아낌없이 썼다는 점에서 나는 부자였다. 그 시간을 작업장이나 교단에서 더 많이 낭비하지 않은 데 대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베이커 농장

부부에게 그런 삶은 추측 항법에 의한 항해와 같은데 둘은 원하는 항구에 도착할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여전히 자기들 방식대로 무모하게 삶과 정면으로 맞붙어 이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할퀴며 싸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삶이라는 거대한 기둥에 쐐기를 박아 세심하게 쪼개 놓은 뒤 하나하나 분석하는 기술이 없다. 그들은 엉겅퀴 다루듯 삶을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단히 불리한 싸움이다.


날마다 낚시와 사냥을 하러 어디로든 떠나라. 되도록 점점 더 멀리, 더 넓게 다녀라. 앞날을 걱정하지 말고 여러 시냇가와 난롯가에서 편히 쉬어라. 젊었을 때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 새벽이 오기 전에 근심을 떨치고 일어나 모험을 찾아 떠나라. 한낮에는 다른 호숫가에 있도록 하고, 밤에는 그곳이 어디든 집으로 삼아라.

천둥이 울리면 울리게 두어라. 농부의 작물을 망쳐도 별 수 없는 일 아닌가? 천둥은 네가 불러들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수레와 헛간으로 달아나더라도 너는 구름 아래로 피해라. 밥법이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고 즐거움으로 삼아라. 땅을 즐기되 소유하지 마라. 사람들은 모험심과 신념이 부족하여 현재 머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이든 사고팔면서 농노처럼 삶을 헛되게 낭비한다.


더 높은 법률

내가 힘든 노동을 오랫동안 계속하는 것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노동이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만들기 때문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비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음식을 향한 탐욕이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문제는 음식의 질이나 양이 아니고 감각적인 맛에 강렬한 애착을 느끼는 데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의 동물적 생명을 유지하거나 우리의 정신적인 삶에 영감을 주는 양식이 되지 못하고 우리를 좀먹는 벌레의 먹이가 된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다.


난방

불을 발견한 인간은 널찍한 방에 공기를 가두어 자기 체온을 빼앗기지 않고서 공기를 덥힘으로써 그곳을 따뜻한 잠자리로 만든다. 그 안에서 인간은 거추장스러운 듯 되레 옷을 벗어 버리고 돌아다니고, 한겨울에도 여름 같은 날을 보내며, 창문을 이용하여 햇빛을 안으로 들이고, 등불을 밝혀 낮 시간을 늘린다. 이처럼 인간은 본능을 뛰어넘어 한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예술 활동을 즐긴다.


겨울 동물들

호수에서 얼음이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다. 콩코드의 이 지역에서 나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이 친구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거나 소화 불량과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나는 서리에 뒤덮인 땅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한 무리의 소를 몰고 와서 내 집 문에 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맺음말

나는 술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숲을 떠났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이 몇 가지 더 남아서 숲속 생활에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 그 이유다. 우리는 신기할 정도로 아주 쉽게, 그리고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연히 어떤 길을 걸었다가 그 길을 자주 다녀서 일종의 관례처럼 고착화한다.

전통과 순응의 바큇자국은 또 얼마나 깊이 새겨졌겠는가? 나는 선실에 편안히 앉아 여행하기보다 세상의 돛대 앞과 갑판 위에 서 있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산과 산 사이를 비추는 달빛을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

왜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두르고 쓸데없는 일에 덤벼드는가? 어떤 사람이 동료와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치는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자가 맞든 종잡을 수 없든 그가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걷도록 내버려 두자. 사람이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삶이 초라해도 받아들이고, 또 살아라. 외면하지 말고 욕하지 말아라. 잘못된 것은 삶보다는 당신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조차 당신 삶은 가장 빈곤해 보일 수 있다. 모든 일에 흠만 잡는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흠만 잡는다. 당신 삶이 빈곤하더라도 그 삶을 사랑하라. 구빈원 신세를 지더라도 얼마든지 유쾌하고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신의 발전에 너무 욕심을 낸 나머지 이런저런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겸손은 어둠과 같아서 하늘의 빛을 더욱 밝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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