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등본에 적혀있는 나의 본적지는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시목리 00번지이다. 지난달, 신문에서 4월 개봉 예정인 영화 기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충남 예산에 있는 저수지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공포영화가 그 목록에 있었다. 나는 그 영화가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예당(예산과 당진) 저수지의 물귀신 얘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엄마 따라간 외갓집의 뒷마당에서 밭 하나 지나면 예당 저수지가 있었다. 전기도 없던 시절, 외사촌들과 밤에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예당 저수지 물 위에 떠오른 처녀 귀신들에 관한 거였다. 밤에 변소도 못 갈 정도의 섬찟한 귀신이 화면에는 얼마나 무섭게 나올까 한번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천만 영화 <왕사남>이 볼 사람 다 봤는지 시들해질 무렵 난데없이 <살목지>라는 공포영화가 1위에 올랐다는 기사가 나왔다. 개봉 10일 만에 백만을 돌파했다는데, 내가 아는 예당 저수지 이야기가 아니고, 나의 본적지인 예산군 광시면에 있는 '살목지'라는 실제 저수지에서 일어난 괴담을 모티브 삼은 영화였다. GPS에도 나오지 않는 저수지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저수지 주변 영상을 찍는데 사진 속에 웬 물귀신 머리가 나왔으니....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리니 <살목지>가 그렇게 무서운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데 사실 엔딩 부분은 뭐가 진실인지 그것도 모르겠다. 잠깐 옛날 영화 <식스 센스>가 떠오르긴 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게 죽은 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조차 잊게 만드는 영화, 저승이든 이승이든 인간이 간절하게 염원하는 것은 어디든 똑같이 통한다는 것인가!
귀신 나오는 저수지의 공포를 맛보기 위해, 혹은 다행히 진짜 귀신이라도 나온다면 같이 영상을 남기고 싶다면서 전국에서 '살목지'를 찾아왔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밤중 10시경에 작은 산골 저수지에 차량 200대가 몰렸으니, 영문을 몰랐던 동네 사람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한밤중에 저수지 가는 길이 교통체증으로 난리가 났으니 지자체에서 야간 차량 통제를 한다고 할 만도 했다.
영화를 찍은 실제 장소는 충북 진천의 어떤 저수지라고 하는데 문화란 이렇게 대중을 흔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운전하기 싫어하는 남편한테 5월에 시아버님 제사 지내러 예산 <화산추모공원> 가는 길에 근처에 있는 광시 '살목지' 한번 들러보자 소릴 다했을까.
'살목지'라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은 거 같았다 '죽일 살(殺) '자 아닌가. 무엇을 죽이는 연못이라는 뜻일까? 농촌지역에는 가뭄을 대비해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지가 각 면마다 하나씩 있었다. 저수지 이름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내 예상과 달리 '죽일 살'이 아니고 화살나무(시목 矢木)가 많은 지역이라는 뜻에서, 시목리의 저수지라는 원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시목리? 낯익은 동네 이름인데? 내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살던 호적상의 동네 이름 아닌가? 낚시터로 제법 유명한 곳인데 밤에는 가기가 꺼려지는 곳, 아름아름 괴담이 퍼져나가 인터넷에 떠돌다가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듯하다.
TV 화면에 나온 살목지 풍경 그대로, 아침 안개 촉촉한 저수지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가만히 내려앉고,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그래서 꿀벌들이나 윙윙 들꽃을 찾아 날고 있을 그곳에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1982년 농업용으로 만들어졌으니, 그리 오래된 저수지도 아니다. 환한 햇살 아래, 뿌우연 저수지 아래 그 무엇이 누워있는지는 몰라도. 물론 어스름 저녁부터는 절대 안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