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손님, 아파트 천장 쥐

by 분홍신


언제인가부터 밤이면 싱크대 위 천장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침이면 싱크대 창틀 아래 스티로폼 부스러기와 석고가 달라붙은 종이 쪼가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싱크대 위 천장에 구멍이 뚫린 걸까? 아파트 주방에 쥐가 들어올 수가 있나? 방심했다.


20여 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거실 천장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어딘가 쥐가 들어오는 통로가 있는 모양인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걸 찾을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은 남편이 화장실 천장을 열고 그 안에 끈끈이를 넣어 몇 마리 잡아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수년 동안 전세를 놓고 나갔다 들어 왔고 세입자도 아무 말이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최근 천장에 남아있던 오래된 끈끈이에 또 쥐가 잡히자 남편은 다이소에서 사 온 철망이랑 청테이프로 화장실 천장 벽 위 틈새를 막았다.


10월 23일 목요일 저녁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데 뭔가 살살 기어 다니고 뒤지는듯한 부스럭 소리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 안방에 누워있던 남편을 불러 같이 주방으로 갔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설마! 다음날 밤 또 똑같은 소리가 들려 남편과 주방 쪽으로 간 순간 싱크대 아래 틈새로 대가리를 내민 그놈과 딱 눈이 마주쳤다,


"으아악!"


기절초풍할 듯한 내 비명에 쥐도 놀라고 남편도 놀랐다. 남편은 쥐 퇴치 업체를 부르자고 했다. 레이저를 쏘아 쥐가 나오는 곳을 찾아내 쥐약을 뿌리고 구멍을 막아 준다고 한다. 쥐구멍을 찾으려면 싱크대를 들어내야지, 게다가 쥐가 다닌 싱크대를 어떻게 쓰느냐고, 싱크대부터 바꿔야 한다고 나는 펄쩍 뛰었다.


다음날은 시골에 계신 어머니 치과 치료와 병원 예약으로 남편이 내려가야 해서 며칠을 혼자 있게 되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오랜 단골인 설비 공사 아저씨에게 "진짜 쥐"가 나왔다고, 당장 싱크대 공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느닷없는 공사 부탁에 그는 일정이 밀려있어 다음 주에나 철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까지 쥐와 한공간에 있으란 말이냐고 발을 동동 구르자 아저씨는 최대한 서둘러 보겠다고 했다.


혼자 있는 동안 뾰족한 수가 없으니 주방에는 밤새 불을 켜 두었다. 싱크대 근처에 얼씬도 하기 싫어 밥도 안 하고 냉장고에서 배를 꺼내 깎아 먹고 껍질과 속은 지퍼팩에 담아 쓰레기통에 넣어 놨다. 저녁 설거지 후에는 항상 음식물 쓰레기를 치웠는데 그날은 배 말고는 버릴 게 없어서 쓰레기 버리러 나가질 않았다. 아침에 조심스럽게 주방 쪽으로 가보니 배 속뼈가 주방 바닥에 뒹굴고, 쓰레기통의 지퍼팩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싱크대 서랍 속의 호떡 누르게 나무 손잡이도 쥐가 갉아 여기저기 홈이 패어 있었다.


낮이든 밤이든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는 현관문을 꽝 소리 나게 닫고 그놈에게 주인이 들어왔으니 주방에 얼씬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 집인데 내 집처럼 편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낯선 것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내 맘대로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며칠이 되도록 안 오는 남편에게 왜 안 오느냐고 전화했다. 쥐가 쓰레기통이랑 서랍 다 뒤지고 있다고 하니 주방 바닥에 끈끈이를 놓으라고 했다. 끈끈이 놔서 쥐 잡히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하니 경비아저씨 부르라고 했다. 밤에 쥐 나오면 앞 동 누구네 집으로 도망갈 거라고 하니 강 건너 불 보듯 실실 웃으면서 그러라고 했다.


10월 29일 수요일 오전


집에 들어올 때마다 쥐 도망가라고 현관문 꽝 닫고 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은 아저씨로부터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다른 곳 공사하는 팀을 불러서 오전에 갈 테니 당장 싱크대를 비워 놓으라고 했다. 이런 때는 남의 아저씨가 남편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자마자 남편이 들어왔다. 오늘도 안 오면 보따리 싸서 도망갈 참이었다고 눈을 흘기면서 남편과 함께 싱크대 안의 살림살이를 다 꺼내어 베란다로 날랐다.


곧바로 몽골인 인부 네 명과 키가 큰 한국인 철거 대장이 들이닥쳤다. 도대체 쥐구멍이 어디 있나 궁금해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싱크대 철거하는 것을 구경했다. 벽에 붙은 단열 스티로폼과 타일까지 뜯어내 시멘트벽이 드러났는데 어디에도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는 쥐가 들어올 수 없는 구조인데 철거 대장 말로는 서울의 45층 아파트 천장에도 쥐똥이 있었다고 했다. 바깥 쥐 말고 천장에서 사는 천장 쥐가 있다는 거다. 이때만 해도 설마 하고 무심코 들었다.


설비 아저씨가 싱크대 철거한 벽 바로 위 천장을 살펴보니 나무 판때기로 마무리한 부분에 십 센티 정도 가느다란 틈이 있었다. 판때기 한 조각만 더 끼워 맞췄으면 되었을 것을. 아저씨는 천장 틈새 부분에 우레탄폼을 듬뿍 쏘았다. 분홍색 거품이 부풀면서 굳으면 쥐가 뚫을 수가 없다면서 주방 철거하는 전기 드릴 소리에 쥐들이 벌써 도망갔을 거라고 했다. 싱크대를 철거하면서 대롱대롱 늘어진 30년 넘은 가스관도 철거하고 주방 유리창 새시도 다시 해야 했으니 하루종일 굉음과 먼지로 집안은 공사판이 되었다.


일주일 만에 마음 놓고 잠이 들려는 순간 거실 천장에서 닥닥닥 요란하게 긁는 소리가 났다. 어찌 된 일인지 고막을 뚫는 전기 드릴 소리와 싱크대 때려 부수는 소리에도 쥐는 나가지 않았다. 천장에서 주방으로 내려올 수가 없어서인지 그동안 잠잠하던 거실 천장에서 한밤중에 난리가 났다.


11월 3일 월요일


목공 작업을 온 아저씨를 보자마자 나는 싱크대 멀쩡한데 왜 바꾸겠느냐고, 견적 나온 대로 천만 원 넘게 들여 벽 공사하고 싱크대를 바꾼들 천장에 쥐가 여전히 있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쥐 잡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당장에 화장실 천장 뚜껑을 열었다. 남편이 지난번 철망으로 둘러싸고 붙여 둔 청테이프가 엄지손가락 굵기로 동그랗게 뚫려 있었다. 테이프를 뜯어내고 빈 공간을 반 토막 낸 벽돌로 막고, 화장실 천장 사방 벽의 틈새에 우레탄폼을 쏴서 꽁꽁 막았다.


아저씨는 주방과 거실 쪽 천장 틈새도 막고 화장실 벽도 막아서 이젠 절대 못 들어온다고 마음 놓으라고 했다. '휴우' 했으나 그날 밤 또다시 주방 천장에서 득득거리고 갹갹거리는 소리가 났다. 공사 소음에 놀란 쥐가 바싹 움츠러들어 밖으로 못 나가고 이번엔 화장실로 통하는 출구가 막힌 주방 천장에 갇힌 모양이었다. 맙소사!

천장에 있는 놈을 어쩌랴. 천장 다 뜯어내기 전에는 갇힌 채 굶어 죽기를 바라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주방 벽 전체를 덮는 단열과 목공 공사가 끝났다. 다음 주부터는 가스관 교체, 타일 공사, 벽이 제대로 마르는 양생 기간이 끝나고 마지막 시공 부분인 싱크대 공사는 금요일에 하기로 되었다.

무엇 때문에 이 난리를 치렀나. 맨 먼저 화장실 천장 틈새만 제대로 막았으면 될 것을, 거금을 들여 싱크대 전부와 가스관, 주방 창 새시까지 새로 하건만 그놈은 여전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들어올 데도 없지만 나갈 데도 없게 되었다.


11월 5일 수요일


싱크대 달기 전, 타일 공사하는데 아저씨가 천장을 뚫을 동그란 전기 드릴을 가지고 왔다. 갇혀서 굶고 있는데 며칠이나 버틸까. 싱크대 바꿨는데 천장까지 뚫고 싶지는 않았다. 박박 긁는 소리도 작아지고 천장 뚫고 멸치 대가리가 차려진 끈끈이 진수성찬을 차려 논들 그놈이 최후의 만찬을 즐기러 움직일 기운도 없을 거라고, 곧 굶어 죽어 말라비틀어질 거라고 천장 뚫지 말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쥐를 얕잡아 보았고 먹이도 없이 일주일 이상 버틸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금요일에 싱크대를 설치하고 토요일에 가스관 연결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주방 공사는 끝났다. 낮에는 조용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빠져나갈 구멍을 뚫으려는 독 안에 든 쥐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하루종일 힘을 모았다가 밤에 집중해서 쏟아붓는 모양이었다. 일요일 저녁, 주방 천장에 갇힌 지 여드레째인데 굶어 죽기는 고사하고 여전히 쌩쌩한 그놈의 득득거림에 아저씨에게 한밤중에 문자를 보냈다.


'무조건 천장 뚫어주세요.'


11월 10일 월요일


아저씨가 와서 싱크대 앞 주방 천장을 접시만 한 크기로 세팅된 전동기로 도려냈다. 천장 바닥에서 먼지와 오래된 쥐똥이 떨어져 내렸다. 낮고 컴컴한 천장 위로 멸치가 놓인 끈끈이를 놓고 두꺼운 종이를 대고 압정으로 막아놨다. 쥐가 끈끈이에 붙으면 꺼내고 나서, 오려낸 천장 조각은 스테이플러로 붙이고 도배지를 다시 바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수백만 원을 준다 해도 자신은 쥐 못 꺼낸다고, 쥐와 뱀이 제일 무섭다고. 그런 건 남편이 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천장 뚫고 끈끈이 놓은 지 닷새째, 한밤중만 되면 쥐는 여전히 구멍 뚫기에 골몰했다. 쥐 잡혔느냐고 궁금해하는 아저씨에게 아직도 짱짱하게 밤마다 공사 중이라고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쥐가 갇힌 지 2주가 지났다.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비상식량이라도 숨겨놨나.


11월 14일 금요일


쥐보다 우리가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번엔 망설일 것도 없이 밤마다 집중적으로 득득거리는 두 곳을 뚫기로 했다. 냉장고 위쪽 천장을 뚫은 아저씨는 진동하는 쥐 냄새로 코를 막았다. 화장실 쪽 천장도 뚫고 끈끈이와 주문해 둔 쥐약을, 같이 배달된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넣었다.


제발 먹던지 붙던지 좀 해다오.


이날 밤도 쥐는 진수성찬과 특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방 천장 여기저기 긁어대느라 바빴다. 구멍 두 개 뚫은 지 이틀이 지났다. 초저녁이 지났는데도 천장에선 기척이 없었다. 후방에 남은 두 늙은이, 남편과 나는 이제 전쟁이 끝났구나, 감격의 포옹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그 순간 득득득, 이럴 수는 없다. 보름 동안 물도 없이 살아있다니. 이건 갇힌 게 아니라고,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며 내려올 구멍도 없는데 왜 들어오는 거지?


11월 16일 일요일 아침


남편이 한 번 더 쥐약과 끈끈이를 넣기 위해 압정으로 막아둔 구멍을 열었다. 천장 안에 고양이를 넣자느니 쥐가 보이면 막대기로 때려잡겠다던 남편의 예상과 달리 우리 집 천장과 위층 방바닥 사이는 얇은 종이 끈끈이를 놓기에도 벅찬, 비좁은 공간이었다. 희한한 건 끈끈이는 그대로인데 쥐약이 용기째 사라진 거였다. 구조 식량인 줄 알고 끌어갔나? 아직 안 먹었나? 아껴뒀다 먹으려고?


남편은 남은 쥐약을 좁은 천장 속으로 힘껏 던져 넣고 내일까지도 살아있으면 쥐 퇴치 업체를 부르겠다고 했다. 저녁이 되었다. 조용했다. 천장 아래 두 늙은이도 입을 다물었다. 말하면 또 부스럭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까지 천장 위는 고요했다. 오려낸 천장 조각 붙일 일만 남았다고 믿었으나 우리의 착각이었다. 주방 천장에 갇힌 지 꼬박 보름이 지났다. 그 후로도 그놈은 일주일을 더 버텼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모아두는 게 쥐의 습성이라더니 이놈은 우리 집 주방 천장에 터를 잡고 먹이까지 모아둔 게 틀림없다.


아파트 구조상 쥐가 들어오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라고 한다. 싱크대 하수구 배관을 뚫고 아래에서 들어오거나, 화장실 밖의 건물 벽에 연결된 여러 가지 배관, 층층이 집집마다 연결된 그 관을 타고 다니다가 대가리 디밀 틈이 있으면 들어온다고 한다. 운 나쁘게도 허술한 마감공사 덕에 3층 우리 집 화장실 쪽 바깥벽에는 틈새가 있었고, 배관을 타고 다니던 놈들은 그 틈을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화장실 천장에 들어온 다음에는 벽 사이의 작은 틈을 통해 화장실 양옆에 있는 주방 천장으로, 거실 천장으로 이동하고, 어쩌다 보니 십센티 틈새를 발견해 주방까지 내려오고.


우리 집의 경우 화장실 천장 벽을 꼼꼼하게 막아서 쥐의 통로를 차단하면 되는 거였다. 대단한 공사가 아닌 실리콘처럼 생긴 우레탄폼을 사다가 벽틈새를 막는 간단한 방법이다.


아파트 화단에 쥐가 자주 눈에 뜨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쥐한테 놀라서 병까지 났다. 제발 쥐 좀 잡으라고 관리실에 가서 항의했더니 그들도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개, 고양이를 키우는 주민들이 쥐약은커녕 끈끈이도 놓지 말라고 민원이 빗발친단다. 예전에는 날을 잡아서 관리실에서 대대적으로 쥐잡기를 했다. 아파트 화단이랑 주변에 쥐약을 놓았다고 주의하라는 방송도 했다.


거의 한 달을 고문하듯 버티던 그놈이 조용해지고, 뚫어 놓은 천장도 막고, 겨우 기운을 차린 나는 아파트 화단 구석에 끈끈이를 놓았다. 그날 하루에 쥐 세 마리가 끈끈이에 붙었다. 천장을 막으면서 아저씨는 말했다. 끈끈이든 쥐약이든 놨다가 개나 고양이한테 일이 생기면 시시티브이를 통해 누가 그것을 놓았나 찾아내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걸 봤다고 주의하라고. 그러건 말건 나는 계속 화단에 끈끈이를 놓을 작정이다. 쥐약도, 배고픈 고양이도 없는데 아무도 쥐를 안 잡고 나 몰라라 하면 계속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인가?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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