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도배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이사라도 해서 집을 비우기 전엔 지저분한 줄 알면서도 참고 산다.
시골에 시어머니가 살고 계신 상가주택엔 세 가구가 사는데 그중에 한집의 세입자가 바뀌게 되었다. 부동산에서 세입자를 소개하면서 벽에 곰팡이가 핀 거 같다고 도배를 다시 해줬으면 했다. 나도 그 생각을 하던 참이라 도배하는 곳 소개를 부탁했다. 지방이라 내려갈 수는 없고 부동산에서 소개한 도배사가 와서 견적을 뽑으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한 면당 15만 원이고 두면에 천장까지 하면 50만 원이라고 했다. 면 당?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 복층구조인데 전체를 다 할 수는 없고 거실과 주방이 있는 원룸 크기의 2층 도배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여기선 도배할 때 각 벽 면당으로 계산해요."
곰팡이 난 부분만 오려 붙이라는 게 아니니 면당이라 해도 알아서 할 줄 알았다. 이왕 하는 거 합지 말고 실크벽지로 해달라고 하니 15만 원 더 내라고 했다.
세입자가 가 들어오기 전날, 입금 전에 도배 확인을 하러 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실크벽지로 도배는 깔끔하게 했는데, 양쪽 두 면과 천장을 제외한 베란다 쪽 벽 창문 양쪽의 좁은 공간과, 싱크대 주변 천장 아래 빈 공간은 고스란히 남겨둔 게 아닌가.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들 말대로 면당 계산한다 해도 이런 경우라면 '두 면만 하면 나머지가 보기 흉하니 다 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전화 한 통이라도 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합지도 아니고 실크벽지로 하는 마당에, 도배 처음 하는 사람들도 아니라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를 하니 도배 아저씨는 나보다 더 황당해했다.
두면만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 동네에선 그렇게 한다고, 집주인들이 돈 아끼느라 지저분한 곳만 도배해달라고 한다고, 실크벽지 하는 집도 별로 없다고.
각자 의심 없이 도배사는 그 동네 상식대로 한 거고, 나는 나대로의 상식으로 믿고 맡겼으니 싸워봤자였다. 이사는 내일 들어오는데 다시 하려면 날 잡고 돈 더 내야 되고.
우선 벽 명당이라는 말에 집중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고, 내 상식이 통하리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의 확실한 대가였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어떤 상식이 꼭 맞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게 이런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외국에서 사는 딸이 종종 하소연하는 게 있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주러 유치원에 갔을 때 문 앞에서 만난 엄마들이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지고 스몰토크를 시작하는데 자신은 그게 참 힘들다고 한다.
유치원 학부모들과 주말이면 서로 초대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 가장 어려운 일이 음식 준비보다 끝없는 스몰토크에 핑퐁게임하듯 끊임없이 상대해 주는 것이란다. 쉼 없이 주고받고 떠들어야 하는 그들과의 대화가 너무 피곤해 아이와 제일 친한 가족을 부르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넌 듣기만 하면 되잖아. 경청하라!
우리 항상 배웠잖아. 입다물고 듣기에 집중하라고, 그게 대화 잘하는 비결이라고 ."
상식적인 내 말에 딸은 코웃음을 쳤다.
영어는 경청하는 게 아니에요. 티키타카 해야 하는 거지
걔들은 질문부터 시작해 말 던져놓고 끊기면 난리 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가서 스몰 톡 힘들어하고 수다 못 떠는 이유가 있어.
걔들은 한 사람이 말을 마치자마자 0.1초 만에 대답해야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1초 후에 말해. 그럼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여. 거기선.
뭐가 상식이고 정답인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입보다 귀를 열라는 명언을 놓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해도 잘 안되는데, 어떤 곳에선 탁구 치듯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한다니. '침묵은 금이다'가 서양 속담 아니었던가!
물론 침묵하고 경청해야 할 때가 있는 반면 끝없이 맞장구치고 지껄여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대화하는 문화와, 입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2등은 간다는 말까지 있는 우리 문화와의 간극이 너무 크다.
갈수록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