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같이 못보는 고약한 취향에 대하여

by 분홍신

오리 CGV에서 영화 티켓을 끊는데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늙은 부부가 다가오더니 할머니가 먼저 물었다. 무슨 영화가 재미있나? 뭘 볼 건가? 내용이 뭔가? 난 이 영화 볼 거고 가족 영화이며 바로 시작한다고 하니 자기들 표도 끊어달라고 했다. 자신들은 표 끊을 줄 모른다고.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가족영화라면 다 괜찮은 거 아니냐고 할머니가 대답했다.

내가 본 영화는 대만의 영화감독 에드워드 양이 만든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영화였다. 2,000년도에 개봉했는데 이번이 세 번째 재개봉이라는 기사를 읽고 도대체 얼마나 괜찮은 영화인지 궁금증이 일어 간 거였다.

친정엄마를 모시고 사는 워킹맘 민민, 그녀의 남편과 아이 둘, 대책 없는 남동생,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고민을 떠안고 사는데 이 모든 사연을 듣는 이는 혼수상태에 빠진 친정엄마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정신없이 살던 민민, 갑자기 쓰러져 누워있는 친정엄마에게 날마다 무언가 얘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자신은 할 말이 하나도 없다고 오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직장에선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선 살림하고 아이 키우느라 바쁘고 그 외 무얼 더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을까. 마침내 스스로에게 지친 민민은 모든 걸 내려놓고 교회 요양원으로 들어가는데 친정엄마 장례식장에 온 민민은 말한다. 요양원에서도 집과 다른 건 별로 없었다고, 삶이 쉽게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어딜 가든, 무얼 하든 결국 나로 태어난 인생인데.

남편 NJ 역시 우연히 만난 첫사랑과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삶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내 의지로 가는 거 같지만 흐르는 물결을 어떻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정신없이 수다스러운 세 시간의 긴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그 부부와 또 마주쳤다. 이들은 과연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재미있게 보셨냐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둘렀고 할머니는 그냥 시간 때우기 잘했다고 했다. 시간 때우기 잘했다고?

그들보다 크게 젊지도 않은 나로선 충격이었다. 내게 영화란 일부러 내 돈, 내 시간 들여 지금의 나를 떠나 다른 삶 속으로 들어가는 색다른 경험인데 어쩌면 이들에겐 주체 못 할 시간 메꾸기의 한 방편일지도 몰랐다.

아하! 이런 부부도 있구나. 딱히 할 일도 없고, 무슨 영화 볼 건지도 모른 채 극장에 와서 직원이 끊어주는 대로 영화 보고 그렇게 시간 보내고 점심 한 끼 사 먹고 그러면 또 하루가 지나가는 노년의 삶?

표 끊을 때 나도 경로 우대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놀라워했다. 그리곤 왜 혼자 다니느냐고 누구든 찾아보라고 했다. 하아!! 점심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고도 했다. 손사래치며 그들을 보내고 부부란 대체 뭘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더 재미있는 영화를 기대한 것 같은데, 할머니는 무슨 영화든 그저 시간 보내기용이면 되는 상황이었던 걸까? 어찌 되었든 취향도 입맛도 상관없이 늙도록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관계라면 이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영화관 근처에 사는 그들은 곧잘 이렇게 영화 보러 온다고 한다. 사전 정보 없이 와서 직원에게 재미난 영화표 끊어달라고 해서 보는데 천생연분 아닌가? 그런 식으로라도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게 괜찮다면 뭘 더 바랄까. 사회적인 관계를 갖기에는 나이가 많아서, 마땅한 취미 생활도 없고, 따로따로 시간을 보낼 게 없으니 이들은 오로지 같이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걸까?

호불호가 확실한 우리 부부로서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각자의 취향도, 입맛도 전혀 다른 우리는 영화 선택 자체부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찍이 너는 네 입맛대로, 나는 내 입맛대로 사는 게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오늘,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세 시간을 캄캄한 극장에 같이 앉아 시간이나 때우는 것에 아무 불만 없는 늙은 부부를 보며 우리는 뭐 그리 잘나서 영화 한 편을 같이 못 보나 의아하기도 했다. 고약한 취향 때문에? 서로의 취향에 대한 불만을 들어내며 발톱을 세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우리도 그들처럼 서서히 취향, 무취향 따질 수 없는 무기력한 노년으로 가고 있다.

배우자 말고 같이 시간 보내줄 사람도, 일도 없다면 어쩌랴! 닥치고 같이 영화 보기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그런 시간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졌을까? 슬며시 한쪽이 앞서고, 한쪽은 모른 척 넘어가 주는 무취향의 시간들이 모여 뭔지 모를 영화를 아무 불편 없이 같이 볼 수 있는 것이리라.

캄캄한 극장에서 오롯이 화면과 나만의 시간을 갖는 영화관람만큼은 늙도록 내 취향대로 골라보고 싶다. 입맛이 다른데 왜 영화까지 같이 봐야 하나? 아직 나는 취향을 따질 만큼 덜 늙었고, 늙음의 시간을 이해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랴! 따로따로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작가의 이전글내가 상식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