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업의 발견, 무인 스터디카페와 독서실
다음으로 내가 선택한 전장은 공간업이었다.
N잡러라면 누구나 꿈꾸는 '나 없이도 자동으로 돈이 벌리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내 몸을 움직여야만 수입이 생기는 과외의 한계를 느끼고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무인 스터디카페와 독서실이었다. 투자 금액이 제법 컸으니 꽤나 대담한 도전이었다. 키오스크가 손님을 받고 CCTV가 관리해 주니 나는 퇴근 후 수금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완벽한 파이프라인 같았다.
나는 주변 독서실에서는 하지 않는 이벤트를 많이 했다. 새해에 공부 결심을 한 이들을 위해 파격 할인을 하고 중간 기말고사 시즌에 맞춰 특별 간식을 준비했다. 연속 출석을 하면 기프티콘을 쏘기도 했다. 반응은 뜨거웠고 우리 독서실은 주변에 비해 훨씬 잘 되었다.
하지만 시스템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착각이었다. 세상에 사람 손이 안 가는 장사는 없었다.
독서실 사장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민원은 시설 고장이 아니었다. 독서실 소음 관리와 말 안 듣는 학생 관리가 주업무였다. 부모님은 자녀 단속을 위해 밤낮으로 전화를 걸어왔고 비치된 간식을 통째로 자기 자리에 두고 먹는 학생, 남의 우산 훔쳐 가는 애들, 복도에서 떠들거나 전화 받는 애들 등 귀엽고 어이없는 사건 사고가 늘 벌어졌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진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아이들의 불안이었다. CCTV 너머로 보이는 아이들의 등은 언제나 굽어 있었고 정적 속에선 한숨 소리만이 유독 크게 들렸다. 시험 기간이 되면 그 불안의 농도는 더욱 짙어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예민해진 아이들은 옆 사람의 볼펜 소리 하나에도 날을 세웠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독서실은 단순히 책상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그들의 불안을 잠재워주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 날 나는 사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였다.
절대 정숙이 생명인 독서실 휴게실에 가장 시끄럽고 냄새나는 음식을 들이기로 한 것이다.
커다란 통에 가득 담긴 새빨간 떡볶이. 이 매콤달콤한 냄새가 복도를 타고 넘어가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코끝을 간지럽히길 바랐다. 그리고 펜을 들어 삐뚤빼뚤한 글씨로 편지를 썼다. 운영자로서의 경고문이 아닌 인생 선배로서의 고백을 담았다.
"저에게는 꿈이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공부하고 싶었는데 형편이 없어 동네 아주 저렴한 독서실에 다닐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때 주변의 많은 분께 도움을 받았고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나는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 흘리는 그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고3 재수를 하며 치열하게 보냈던 나의 지난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 오늘을 견디는 너희들의 시간도 반드시 빛을 볼 것이라고.
"오늘 다르게 살면 당장 티 나지 않아도 스무 살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이 분명 달라질 거예요. 여러분이 잘 되는 것이 이 독서실의 존재 이유예요."
게시판에 편지를 붙이고 돌아선 그날 밤 나는 CCTV를 확인하다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쭈뼛거리며 휴게실로 모여든 아이들이 종이컵에 떡볶이를 가득 담아 호호 불며 먹고 있었다. 입가에 빨간 양념을 묻힌 채 서로를 보며 키득거리는 모습. 그 순간 독서실을 채우던 무거운 적막이 깨지고 생기 넘치는 사람의 소리가 채워졌다. 떡볶이는 핑계였다. 내가 진짜 먹이고 싶었던 건 떡볶이 국물처럼 뜨끈한 응원이었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빈 떡볶이 통 옆에는 아이들이 남긴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쪽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공간업의 본질은 평당 임대료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공기를 만들어주는 것. 내가 빌려준 것은 책상 하나였지만 그들이 얻어간 것은 꿈을 향한 격려였기를 바란다.
시스템으로 편하게 돈을 벌려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깊게 배워버린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떡볶이 파티를 기점으로 나는 생각했다. 기계 뒤에 숨어서 공간만 빌려주는 일 말고 사람들과 직접 눈을 맞추고 무언가를 건네는 일을 해야겠다고.
그 다짐이 나를 지금의 샐러드 가게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