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장인의 손길, 자투리 천의 반란

우리가 팔려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스마트스토어

by 인생 여행자

나의 N잡 유전자는 아마도 엄마에게서 온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재봉사다. 엄마 시대의 딸들이 으레 그랬듯 엄마도 공부 대신 생계를 택해야 했다. 저 멀리 시골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미싱 앞에 앉았을 때가 겨우 중학생 나이쯤 되었으려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옷을 지어왔으니 이 정도면 장인 중의 장인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권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봉제 공장의 처우는 여전히 박봉이고 열악하다. 50년 기술자의 손길이 그저 단순 노동으로 취급받는 게 나는 늘 속상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저 엄청난 기술로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때마침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뉴스에서는 일회용 빨대 사용을 규제한다는 정부 지침이 연일 흘러나왔고 환경을 생각하는 제로 웨이스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기획자인 내 머릿속에 전구 하나가 켜졌다.
"그래 이거다. 스테인리스 빨대를 담고 다닐 예쁜 파우치를 만드는 거야."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동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국산 원료로 된 질 좋은 천을 고르고 밤새 디자인을 상의하며 샘플을 만들었다. 엄마의 드르륵거리는 미싱 소리가 그날따라 경쾌하게 들렸다. 우리는 야심 차게 스마트 스토어를 열었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문 닫지 않는 가게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내 기획 의도대로라면 불티나게 팔려야 했을 빨대 파우치는 조용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과 지갑을 여는 마음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야심 찼던 초보 사장과 베테랑 기술자는 약간 의기소침해졌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반응이 터졌다. 빨대 파우치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이 아까워 엄마가 그냥 툭툭 박아서 만든 작고 긴 주머니가 있었다. 용도도 불분명한 그 파우치를 혹시나 해서 올려두었는데 그게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저집으로 쓴다며 사 가고, 펜을 담겠다며 사 갔다. 급기야 단체 주문까지 들어오며 주문만큼 만들기가 버거웠다. 주문 양을 납기일까지 맞추기 위해 온 가족이 달려들어 만들었다.


세상일은 참 모를 일이다. 머리 싸매고 기획한 메인 상품은 안 팔리고 버려질 뻔한 자투리의 반란이라니.
​덕분에 우리 엄마는 본의 아니게 N잡러가 되어버렸다.
낮에는 공장에서 본업을 하고 밤에 퇴근해서는 딸이 물어온 주문을 처리하느라 다시 미싱 앞에 앉았다. 피곤할 법도 한데 엄마는 "이거 재미있네" 하며 웃으셨다.


지금도 종종 주문이 들어오면 그 수익은 온전히 엄마의 쏠쏠한 용돈이 된다. ​오늘도 핸드폰에 주문 알림이 떴다. 제조업이라는 게 시스템 없이는 결국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해 손끝에서 끝나는 고단한 일이라는 걸 50년 차 재봉사 엄마와 초보 사장 딸은 함께 배웠다. 비록 대박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기술이 누군가에게 쓰임 받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도전이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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