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날로그한 선택
독서실 사장으로 무인 시스템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본 뒤,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주방이었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왜 하필 샐러드 가게였어?"
그도 그럴 것이 샐러드는 이제까지 하던 일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는 공부할 때 이용이라도 많이 해봤지, 샐러드는 너무 뜬금없는 선택이긴 했다. 게다가 키오스크 하나 덜렁 두고 퇴근 후 수금만 하던 오토 매장의 세계를 맛본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채소를 씻고 하루 종일 칼질을 해야 하는 육체노동을 택했으니 의아할 만도 했다. 심지어 샐러드는 유통기한도 짧아 재고 관리도 까다롭다. 효율성만 따지면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독서실에서 떡볶이 파티를 열며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차가운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온도라는 것.
바야흐로 AI 시대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채팅형 AI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한 달에 몇천씩 벌었다는 인플루언서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나 역시 회사에서 AI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할 때가 있다. 그런 자동화의 색깔을 굳이 따지자면 창백한 푸른색에 가깝달까. 쉬운 길을 가려고 나의 손과 발, 심지어 생각까지 AI에 위탁하는 세상. 어쩌면 나의 샐러드 가게는 그런 세상에 대한 작고 소심한 반항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으로 돈을 번다는 건 참 간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싶은 세상, 그리고 내가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대면이 미덕인 독서실에서는 내가 줄 수 있는 온기에 한계가 명확했다. 나는 사람들의 일상에 조금 더 비집고 들어가 그들의 지친 하루를 직관적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사람이 가장 확실하게 위로받는 순간은 결국,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온전히 대접받을 때니까.
수많은 음식 중에서도 샐러드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정직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기름에 튀기거나 맵고 짠 양념으로 버무린 음식은 식재료의 민낯을 가릴 수 있다. 하지만 샐러드는 다르다. 시들한 양상추나 무른 토마토는 그 어떤 드레싱으로도 감출 수 없다. 재료의 신선함이 8할이고, 나머지는 그 재료를 다듬는 사람의 정성이다.
나는 그 투명함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정직하게 쏟은 시간과 수고가 고스란히 손님의 입으로 들어가는 과정. 그것은 복잡한 인간관계나 윗선의 눈치를 보며 기획서를 써야 하는 회사 일과는 차원이 다른 선명한 보람이었다. 기계가 레시피의 계량을 완벽하게 흉내 낼 수는 있어도, 매일 달라지는 채소의 컨디션을 손끝으로 느끼며 씻어내고 단골손님의 지친 얼굴을 알아보고 토핑을 슬쩍 더 얹어주는 다정함은 결코 알고리즘이 대체할 수 없다.
평일 낮, 나는 빌딩 숲에서 모니터와 씨름하며 머리를 쓴다. 하지만 주말마다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 앞에 서면 나는 온전히 살아 숨 쉬는 나로 존재한다. 흙 묻은 채소를 씻고 칼로 삭둑삭둑 썰어내어 예쁜 그릇에 풍성하게 담아내는 일. 이토록 원시적이고 육체적인 노동이 디지털 세상에 지친 내게는 최고의 휴식이자 치유다.
나에게 샐러드 가게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가장 정직한 노동으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안전구역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칼을 들고 양파를 썬다. 매운 기에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이 불편함이 나를 '대체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