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오지랖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준, 오래 남은 온기들

by 바람결

대학생 시절 어느 날, 그날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다른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애써 접고 과외를 하러 가야 했다.
일주일 중 닷새를, 하루에 두 집 이상씩 다니던 시절이었다. 매일 학교에 가려면 지하철과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야 했고, 학교에서 다시 과외집으로 향할 때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매일이 피곤했다.

그날도 버스에 몸을 싣고 겨우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내 등을 툭툭 치는 고약한 손길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는 바로 옆에서 아기를 업은 여성을 가리키며 버럭 소리쳤다.

“야, 망신당하고 싶냐? 애 엄마 안 보여? 자리 비켜 빨리!”

그의 고함은 버스가 떠나갈 정도로 컸다. 그런데 그 애기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기가 울어서 그냥 서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그 남자는 나를 향한 욕을 멈추지 않았다.

스물한 살의 나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이 굳었고,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뒷자리의 한 아주머니가 버럭 소리를 치셨다.

“왜 그 아가씨한테만 그래요? 만만해 보여요? 어디서 욕지거리를 해! 지금 저 애기엄마 방금 자리에서 일어난 거, 여기 사람들 다 봤구만!”

순간, 버스 안 공기가 바뀌었다. 남자는 머쓱해진 얼굴로 하차문 쪽으로 물러났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제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짧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아가씨.”

나는 눈물로 젖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과외와 함께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담 브랜드의 의류 매장이었는데, 손님이 거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매일 오픈하고 마감까지 맡는 날이 많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점심을 거르기 일쑤였다. 어지럽거나 쓰러질 것 같은 오후도 많았다.

어느 날, 또 점심을 못 먹고 매장 뒤 옷걸이 사이에 몸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있었을 때였다. 옆 매장의 샵마스터 아주머님이 옷 사이로 얼굴을 내밀더니 내 손에 따뜻한 호빵 두 개를 쥐어주셨다.

“지금 먹어. 내가 매장 봐 줄 테니까 피팅룸 들어가서.”
“저, 괜찮아요…”
“아니야, 먹어야 돼. 물이랑 같이 먹어요.”

나는 피팅룸 안에서 물과 함께 호빵을 꼭꼭 씹어 삼켰다. 먹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가 보다. 정말 거짓말처럼 어지럼증이 사라졌고, 몸이 따뜻해졌다.


근래 들어 ‘아줌마’라는 단어는 비하의 의미로 쓰인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40대에서 50대쯤의 여성, 오지랖 넓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나도 한때는 그런 이미지를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
버스에서 나 대신 화내주던 아주머니, 호빵을 쥐여주던 샵마스터님.
그 오지랖은 누군가를 향한 부끄럽지 않은 용기였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게 굴러가게 만드는 마지막 남은 인간다움이기도 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줌마’라는 이름이 더 이상 비하나 조롱이 아닌,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주는 또 다른 말로 불리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때 나는, 이 세상을 호빵처럼 따뜻하게 덥혀주는 그런 아줌마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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