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과 단맛 사이, 몸과 마음이 만나는 이야기
출산과 육아, 그리고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으로서의 삶은 ‘일상’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일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은 내 삶의 어디에도 없었다.
매일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시간이었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매일의 발버둥이 나를 지배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자 눈물바람이었다.
식사 패턴이 무너졌고, 몸의 리듬도 함께 붕괴되었다.
결과로 돌아온 것은 대사이상 증후군, 70킬로그램을 훌쩍 넘은 몸,
그리고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의 한마디였다.
“우리 엄마는 뚱뚱해서 미워요.”
분명 아무 의도 없는 순수한 표현이었지만, 나는 한동안 거울을 보지 못했다.
어느 날의 건강 검진 결과, 간에 5센티미터 가까운 선종이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아이를 두고 갈 수 없다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몸을 다시 통제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간헐적 단식, 저당 식단, 꾸준한 운동과 활동.
모든 걸 ‘정확히’ 해냈다.
서서히 몸이 가벼워짐이 확실하게 느껴졌고,
2년 만에 20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대사 이상도 완전히 회복했다.
하지만 몸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먹어도 될까?’가 먼저 떠올랐다.
식사 대신 불안이 쌓였고, 포만감 대신 통제가 남았다.
어쩌면 나는 살을 뺀 것이 아니라,
욕망을 더 세게 묶어 두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크림빵 하나가 나를 끌어당겼다.
그 빵을 소개하는 말 한마디
“이게 행복이죠.”
나는 원래 달달한 빵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밥을, 그것도 현미와 잡곡의 질감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빵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 후로 나는 달콤하고 기름진 빵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빵집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고, 빵 유튜버를 구독했다.
유명하다는 베이커리를 찾아가고, 매주 ‘빵지순례’를 다녔다.
베이글샌드, 크림빵, 초코소라빵, 온갖 토핑이 얹혀 있는 화려한 소금빵, 맘모스빵류...
정제된 탄수화물과 설탕의 세상으로 들어가면서도
‘정신줄은 놓지 말자’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조금만 맛보는 거야.”
“내가 직접 만들면 덜 달겠지.”
하지만 냉동고엔 다 먹지도 못할 빵이 계속 쌓였지만,
또 새로운 팝업이 열릴 때마다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건 배고픔이 아니라, 내 취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래 눌려 있던 욕망이 깨어나는 소리였다.
어쩌면 오랫동안 1일 1식을 체화하면서,
원래부터 있었던 나의 입맛이 서서히 왜곡되고 비틀린 채로 억눌려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눌려 있던 욕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헤비한 크림빵과 디저트로, 필링이 가득한 베이글로 터져 나왔다..
그런데,
쫀득빵은 몇 번 먹고 완전히 질려버려서 죄다 깍둑썰어
아몬드가루와 달걀을 섞어 나만의 디저트 필링으로 만들어버렸고,
헤비한 크림빵은 열 개쯤 먹고 나서는 아,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싶었다.
층층이 가지각색 필링이 쌓여 있는 베이글샌드는 여전히 좋지만, 한 입 먹을 때마다
“이게 무슨 맛이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예뻐서 사고 싶어지는 욕구와, 막상 먹을 때 다가오는 묘한 부담,
먹을 때는 달콤하지만 금세 사라지는 만족감,
그리고 ‘이 만족감이 깜파뉴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이상한 갈등이 교차했다.
요즘 눈길이 가는 떠먹는 베이글이나 떠먹는 케이크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래 좋아하던 베이글이나 바스크 치즈케이크가 중심에 있고,
그 위를 형형색색의 필링과 토핑이 덮고 있다.
아마 나는 그 화려함이 주는 예측 불가능함에 끌리는 것 같다.
반면, 케이크류는 아무리 예뻐도 시트가 중심이 되지 않는 것,
진한 필링이 주인공인 그 맛이 절대로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명백히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궁금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균형점 사이에서 흔들린다.
예쁘고 궁금한 것들과, 알고 있는 안정적인 맛 사이.
통제와 욕망, 그리고 그 사이의 좁은 균형 위에서.
그러다, 빵투어에서 원하던 걸 사지 못하고 겨우 대충 커다란 깜파뉴 하나를 들고 온 어느 날이었다.
그 깜파뉴를 썰어서 냉동시키려던 때
칼끝이 바삭한 껍질을 스치자, 잘 구워진 밀의 고소한 향이 훅,하고 퍼졌다.
나는 본능처럼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콰작, 하고 부서지는 껍질, 밀가루가 발효된 깊은 향, 불규칙한 구멍 사이로 스며든 짭조름한 단맛.
순식간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찾던 건 ‘단맛’이 아니라 ‘균형’이었다.
입 안 가득 번지는 예측 가능한 고소함,
그게 바로 내가 진짜로 좋아하던 맛이었다.
바게트, 깜파뉴, 플레인 베이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모닝빵, 그리고 모닝빵의 버터리한 변형인 소금빵.
그래 나는 원래, 그런 빵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음을 다시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나를 조율하는 중이다.
단식과 단맛 사이에서,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려 할 때마다 잠시 멈춰 선다.
이제는 안다.
‘건강’이란 숫자나 체중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생각하고, 알려고 애를 쓴다.
내 몸이 다시 나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그날, 비로소 진짜로 건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크림빵에 잠시 눈을 돌렸어도, 샌드베이글 한 입 속 머리가 띵한 달콤함에 정신줄을 살짝 놓았어도
나의 취향은 고소하고 담백한 맛의 다양한 질감을 가진 빵이라는 것을 깨닫는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는 나를 인정하며 나를 조율하고 있다.
글은 아직 끝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다시 대화를 시작했을 뿐.
다음 이야기는, 조금 더 내밀한 곳에서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