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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Sep 21. 2022

맥락이 없는 수업

미친 진도

요즘 고민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사회 수업 때문이다. 5학년 2학기 사회는 역사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한 학기만에 고조선부터 근현대사까지 끝내버리는 미친 진도를 보여준다..


즉 한 학기만에 고조선부터 근현대사까지 수박 겉핥기로나마 쫙 훑어줘야 하는데 나부터가 이걸 어떻게 가르쳐야 될지 모르겠어서 고민이다.


일단 미친 전개 속도를 갖고 있다 보니 내용 간에 맥락이 없다. 갑자기 오늘은 신라가 엄청 부흥했다고 배우다가 다음 시간에는 신라가 망한다;;;


그러니까 애들 입장에서도 약간 헷갈릴 거 같은 게 매 시간마다 갑자기 나라가 생겼다 망하고, 망했다가 다시 재 건국하고 아주 난리부르스도 아니다..


이게 매 시간마다 반복되다 보면 아무리 내가 최대한 앞뒤 맥락을 이어가면서 수업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사건과 사건 간의 연관성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긴다.


어른인 나도 이 미친 속도가 버거운데 애들은 얼마나 헷갈릴까 싶어서 매 사회 시간마다 미안해 죽겠다.. 최대한 재밌고 이해되기 쉽게 설명하려고 하지만 애들 입장에서는 훅훅 진행되는 흐름에 정신없을 거다.




오늘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배웠다. 어제는 고려와 몽고의 싸움에 대해서 배웠다. 고려가 몽고한테 멸망하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한 걸 강조했는데 갑자기 오늘은 상감 청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찬양했다..


애들은 내가 앞에서 목에 핏대 세우며 수업하면 집중해주려고 노력해주지만 어쩔 수 없이 오늘 최대로 화제가 됐던 건 '상감 청자 변기'와 '상감 청자 침 뱉는 그릇'이었다. (자극적인 것에 끌리는 듯..)


(변기) 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2910057 (그릇)blog.naver.com/sport_112/222114871966


교육과정에서 이렇게 한 학기만에 역사를 끝내도록 진도를 짜줬으니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한다만, 매 수업마다 좀 더 심오하게 내용을 다뤄주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친구a한테 얘기했더니 친구a는 오히려 나보고 한 큐에 역사를 끝내버리다니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내 친구a는 사학과 출신인데 역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건의 연도까지 줄줄 꿰는 사람이다;)


사실 나로서는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재밌다기보단 이 빠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애들이 최대한 휘말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지키며 역사의 재를 주도적으로 잡도록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얘들아 우리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둘리지 말고 굳건히 나아가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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