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에게 좋은 즐거운 생활 요리
개인적으로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는 식품 재료를 조리하여 맛과 향을 살리고, 영양소를 보존하거나 증가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에 따라서 그만큼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할 것이다. 미식의 나라인 프랑스 그리고 책상 다리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 만큼 다양한 식재료와 요리의 종류가 있는 곳이 바로 우리 나라다.
위에 예를 든 두 나라에 비하여 국토 면적과 인구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적지만, 명확한 사계절이 있고,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국토의 대부분은 산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동식물이 존재하며 이것은 당연히 그만큼 다양한 식생활이 가능한 식재료 환경을 제공해 준다. 반면 척박한 환경에 처한 나라에서는 먹을 수 있는 식재료의 종류는 빈약할 수 밖에 없다. 흙먼지가 날리는 평원에서 빈약하게 자란 옥수수대를 초점잃은 눈동자로 바라보는 '원주민'을 TV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땅, 그런 환경에서 제대로된 식재료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수입해서 음식을 만들면 되겠지만, 그건 일부 부유층을 위한 것이고, 그런 환경을 가진 나라의 대다수 국민들은 풍부한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문화를 즐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요리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도록 신의 승인을 받은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이렇게 하늘이 도왔는지 우리 나라는 식재료 환경에서 만큼은 그 어느 나라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물론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세계의 주요 강대국에 온전히 둘러싸여 홀로 포위된 상태라서 긴장이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우리 나라이기도 하다. 위로는 중국, 그리고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이면서 핵을 보유한 북한, 과거의 초강대국 러시아가 있고 아래로는 우리를 늘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일본이라는 세계 제3의 경제 대국이 있다. 이들에 둘러쌓인 불과 22만제곱km의 땅덩어리위에서 5천만이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오랜 세월을 버텨 온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를 지금까지 끈질기에 버텨오게 한 힘이 바로 음식이었을 수도 있다.
지정학적 위치는 바꿀 수 없으니 받아 들이고 버티면 될 것이고, 대신 그 불리한 위치에서 사는 대신에 풍부한 식재료를 향유할 수 있으니 그것을 즐기는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본능적으로 요리의 즐거움에 빠진 모양이다.
이건 정말 하나 마나한 이야기인데, 실제로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으면 그만큼 인체에 유해한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식당은 정직하고 위생적으로 조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말은 일부의 식당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내가 그런 식당에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식재료 원산지 표기를 하라고 법을 정한 것부터가 그걸 많은 상인들이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강제한 것이 아닌가? 유해한 물질에 많이 노출되어 병에 걸려서 일찍 죽을까봐 걱정이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가능하면 조금 덜 유해한 쪽을 선택하려는 것 뿐이다. 직접해서 먹는 요리의 빈도를 증가시키고 외식의 빈도를 낮추면 유해함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난 이정도로 만족하는 중이다.
직접 요리를 하는 빈도를 증가시키면 당연히 식비도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다. 요즘같이 인플레이션으로 외식비용이 폭증한 환경에서는 절반이 아니라 20%~30%의 비용으로 거의 같은 수준의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식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요즘 외식 비용은 너무 과하다. 그렇지 않아도 외식이 뜸한 나 조차 더욱 외식을 꺼리게 할 정도로 비싸다. 퇴직 후 일단 실업자가 된 지금은 더 비싸게 느껴져서 아예 엄두도 내지 않고 있다. 사실 그 정도의 비용을 지출할 만큼 맛과 영양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리고 양적인 측면에서도 만족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스게 소리인데 비싸다는 싸다에 아닐비자를 붙여서 非싸다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사실은 아니다. 비싸다의 '비'는 '값'의 의미였다고 한다. 그럼 '값싸다'이고 이건 싸다는 것인데 왜 '비싸다'는 의미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의미의 전도가 일어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쌀 사러 간다는 쌀 팔러 간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튼 요리를 직접 해서 먹을 경우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명확한 이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식당을 찾는다. 식당을 찾다 못해서 집에서도 식당으로 전화를 해서 배달을 시킨다. 이젠 전화할 필요도 없이 휴대폰에 설치된 배달 앱을 통해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배달 주문이 가능하다.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배달 문화가 발달한 곳이 바로 우리 나라 아닌가? 물론 선택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은 배달을 선택한 것이고 난 직접 하기로 선택한 것일 뿐이다.
삼시 세끼를 해결하기 위한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하는 요리에는 추가적인 장점이 있다. 물론 오로지 즐거움만을 위한 요리를 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요리를 하는 것을 즐기지만, 그것을 하지 않으면 비용이 너무 증가하기 때문에 내가 직접하는 '필요에 의한 요리'이기도 하다. 그런 필요에 의하여 뭔가를 하는데 그 활동에서 조차 어느 정도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근력과 유연성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어떤 운동을 하는데 그 운동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요리에서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장점은 인체를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몸을 고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사실 깊게 생각해 보기 전에는 알아채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선뜻 장점으로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여성이 아니고 남성이기 때문에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의 장점일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나와 같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몸의 움직임이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노트북을 쳐다 보고 있었다. 거의 회사에 있는 내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의자에 착석하여 메일을 쓰거나, 분석 자료를 만들었다. 기껏해야 내가 몸을 일으키는 경우는 화장실에 가거나 간혹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수년간 코로나 때문에 회의도 거의 화상회의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회의실로 직접 참석을 한 것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물론 몸을 많이 쓰는 직업도 많겠지만, 몸을 많이 쓰던 쓰지 않던 경제 활동을 위하여 움직이는 몸의 움직임과 그냥 몸을 좀 더 움직여서 무언가를 즐겁게 하기 위한 움직임은 큰 차이가 있다. 아무튼, 내가 경험한 화이트 칼라 생활과 비교하여 이야기하면 어찌되었든 요리라는 활동은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할 수가 없는 활동이다. 재료의 구입과 손질 그리고 일정한 프로세스를 따라서 조리 활동을 해야 최종 요리가 나온다. 하다못해 라면을 끓여도 일정한 움직임이 필요한 공정이 요구된다.
해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지만, 만약 당신이 요리를 좀 해 봤고 일부 식재료를 손질해 본 경험이 있다면 재료를 손질하기 위하여 당신의 눈은 식재료와 요리 도구를 잘 관찰해야 하며, 양 손으로 식재료와 조리 도구를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잡아야 하고, 하체 근육은 너무 긴장시켜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굳건히 상체의 움직임을 버텨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어깨 회전근을 부드럽게 활용하여 팔 전체를 움직여야 한다. 어깨 회전근을 앞뒤 상하 좌우로 부드럽게 움직일 때 팔 전체가 역시 앞뒤 상하 좌우로 움직일 수 있으며 그 팔의 맨 끝에 달려있는 당신의 손에 부엌칼이 쥐어져 있다면 그 손은 뭔가 손질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채를 썰게 될 것이다. 채를 썰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게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단순한 요리라도 이렇게 그 시간 동안 당신은 당신의 다양한 신체를 최대한 집중하여 활용하게 된다.
다윈의 용불용설까지 들먹이면 좀 과한가? 하지만 사실이다. 알다시피 사용을 많이 하는 기관은 더 발달되고 강화되며 사용을 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 된다는 것이 용불용설이다. 같은 방식으로 칼질도 많이 해야 실력이 는다. 따라서 채를 자주 썰면 잘 썬다. 그건 결국 당신이 그 활동에 더 잘 집중할 수 있고, 그 움직임을 하기 위한 근육의 움직임에 더 익숙해져서 잘 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채를 꽤 잘 썬다.
어제 만든 당근 라페를 설명하려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빌드업'이 기가 막히지 않은가? 당근 라페는 그냥 당근을 채 썰어서 만든 요리다. '라페'는 '강판으로 잘게 갈다'라는 불어 Raper 에서 나온 말이다. 불어는 단어에 성이 있는데 당근은 Carotte이고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La Carotte이 되고 raper 라는 동사는 '강판으로 갈은 혹은 갈린' 이라고 표현될 때 rape 라고 변형되며 이 단어가 La Carotte이라는 여성 명사와 결합하려면 Rape에 e가 더 붙어서 rapee가 되어야 하며 발음은 라페(불어의 'r'은 그냥 'ㄹ' 로만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말로는 정확히 표현이 되지 않는다)가 된다. 그래서 당근은 그냥 두고 라페만 원어로 써서 '당근 라페' 라는 혼합된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당근 라페는 요리라고 볼 정도도 되지 않는다. 거의 유일한 조리 준비 과정은 딱 하나 밖에 없다. 당근을 닦아서 채 써는 것이 다이다. 나머지는 준비된 재료를 넣고 섞으면 끝이다. 그 후 하루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을 한 다음에 샌드위치 토핑으로 쓰면 된다. 아니면 그냥 반찬으로 먹어도 된다. 새콤달콤하고 아주 아주 살짝 매콤(겨자씨가 들어간 홀그래인 머드타드 소스가 제일 중요하다)한 맛을 낸다. 조리법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시도해 보길 권한다.
갑자기 당근 라페를 만든 이유는 상세히 기술하지는 않겠다. 다만, 아내가 밖에서 먹어 본 후에 너무 간단하고 쉽게 만들 수 있으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이라는 말만 하겠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만들어 달라고 했다. 레시피를 정확히 지키지 않아서 처음 만들어본 당근 라페는 70점 정도 밖에 줄 수 없지만, 곧 다시 만들게 될 두 번째 당근 라페는 훨씬 나아진 맛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요리라고 할 것도 없는 채 썰기가 다인 간단한 것이니 말이다.
적당한 요리 활동은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맨 처음에 강조했듯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에 대한 접촉 가능성은 낮출 수 있고, 그만큼 건강에 도움이 되며, 동시에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비용이 절감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인체의 다양한 부분을 더 활용하게 되면서 해당 기관의 발달을 도울 수 있기도 하다. 용불용설을 기억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꽤 오랜 기간 간단한 요리를 해 온 나의 입장, 특히 퇴직한 남성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삼시세끼가 전혀 두렵지 않게 된다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장점이 있다.
맨 첫 부분에서 요리의 정의를 말 할때 '요리는 식품 재료를 조리하여 맛과 향을 살리고, 영양소를 보존하거나 증가시키는 과정' 이라고 했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나의 첫 당근 라페는 요리로는 좀 부족하다. '맛과 향' 중에서 '맛'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진정한 '요리'를 만들어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