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2. 순간을 잡아라,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 (p167 ~ p170)
어떤 것도 탐내지 않는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태를 끌어 가려 애쓸수록 당신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법이다. 골프에서도 마찬가지다. 샷의 방향을 억지로 조절하면서 게임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어 가려 해도 당신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목표로 삼은 결과를 위해 당신이 취하는 과정을 믿고 신뢰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확신에 찬 열망과 그렇지 못한 절망은 결과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결과에 연연하지 마라!' 많은 골퍼가 이 교훈을 '샷의 결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 줄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많은 골퍼가 '마음을 쓰다'라는 단어의 뜻을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마음을 쓴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 것' 이거나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을 홀컵에 넣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는 골퍼라 말할 수 없다. 퍼팅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상금이 수천 달러나 차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믿기란 어렵다.
결국 개의치 않는다는 것은 평소의 스윙이나 퍼팅에 집중하면서,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자연스레 스트로크 하는 데 집중한다는 뜻이다. 결과에 개의치 않는 체하다가 부주의해지기 십상이다. 솔직해지자! 결과에 마음을 쓰지 않는 다면 골프를 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쓸 수 있다. '관심을 갖는다는 뜻'으로 마음을 쓴다면 당신은 집중력을 갖고 모든 과정을 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신의 스윙과 퍼팅을 믿고 부드럽고 자연스런 스트로크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걱정한다는 뜻'으로 마음을 쓴다면 몸과 정신이 하나로 결합되지 못해 스트로크가 망설여지고 결국 실수로 연결될 것이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데이브, 두 의미의 차이를 안다면 자네에게 도움이 될걸세. 어떤 의미로 쓰느냐에 따라서 자네 퍼팅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지지 않겠나? 자네에게 두 문장을 말해 주겠네. 그 문장들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데이브, 난 자네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네."
"데이브, 난 자네가 걱정스러워."
"Don't worry, Be happy. In every life we have some trouble. But when you worry, you make it double. Don't worry, Be happy" - Don't Worry, Be Happy (Bobby McFerrin, 1988)
걱정
Bobby McFerrin의 노래 가사처럼 '걱정'은 해 봐야 늘기만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한시도 걱정을 하지 않는 순간이 없을 정도이다. 돈이 많아도 걱정이고 적어도 걱정이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은 기본적으로 생존 반응의 일종이다. 자신이 무언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걱정을 초래하는 것이다.
걱정은 일종의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 결과, 직장에서의 불안한 위치, 그리고 건강 등 다양한 영역에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쩌면 걱정은 우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다. 따라서 걱정은 우리가 '지금(只今)' 이라는 현재를 살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너무 과하게 매달리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는 반드시 대비해야만 하지만, 너무 과하게 미래만 보면 현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곤 하는 것이 '걱정'이라는 감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도통 거기서 헤어나질 못한다.
심지어 우리는 걱정이 너무 많은 것도 걱정한다. 그리고 반대로 걱정이 너무 없어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걱정이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걱정이라는 말은 이렇게 뭔가 안심되지 않아서 '내가' 속이 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혹은 자신 이외에 대한 걱정의 경우는 '아랫 사람의 잘못을 꾸짖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넌 참 걱정스럽다'라는 말을 부모님 혹은 다른 윗사람에게서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 의미가 이해될 것이다.
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있는 걱정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서 살펴보는 편을 선택하는 편이다. 사실 내가 '걱정거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면면히 살펴 보면 사실 큰 걱정거리가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관심
저자가 명쾌하게 설명했듯이 '걱정' 이라는 단어를 '관심'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앞서 언급한 나의 방식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걱정거리'를 면면히 '살펴 보는것'이 내가 걱정거리를 대하는 방식이고, 이것은 바로 '관심'의 다른 표현이며 상당히 효과가 있다.
골프에서도 그렇지만 일을 할 때에도 거의 동일한 원리가 작용된다. 직장이든 개인 사업이든 일을 하다보면 풀리지 않는 난제를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리 생각을 짜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도 있고, 그 일을 하려면 너무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짜증이 나고 한편으로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특히 잘 풀리지 않는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경우엔 특히 '걱정' 혹은 '두려움'에 휩싸여서 몸과 정신이 굳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외부의 도움일 수도 있는데, 그 보다 우선적으로 문제의 해결책은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 물론 '문제'를 면면히 '살펴 보는 것'에서 시작을 해야 한다.
'면면히 살펴 보면 해결책을 찾아낼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라고 너무 간단하게 말했을 수도 있는데,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이 하는 일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다만, 거의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이 하는 일들은 '평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단지, 그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던지, 내가 피하고 싶은 불편한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던지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매우 창조적이고 고난이도의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여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반복적인 일이다. 이것을 인정할 때에만 당신의 '걱정'을 '관심'으로 돌릴 수 있다. 나 '자신'과 나의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너무 높은 '중요성'을 부여하면 그게 큰 '부담과 걱정'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나를 예로 들어보면 30년간 적지 않은 크기의 '나름 첨단 제품을 제조하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을 했고, 중요성이 적지 않은 위치에서 오랜 기간 일을 했지만, 일의 성격과 본질은 매우 '반복적' 이었다. 약간의 변주가 있기는 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다양한 고객들로부터 각종 요구 사항이 오면 그걸 해결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떤 고객이냐에 따라서 요구 사항의 강도와 어려움은 변한다. 그리고 처한 상황(현장의 가동 현황, 인력 및 원자재 수급 문제, 등)에 따라서 고객 요구 사항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난이도가 증감한다. 이런 지극히 당연한 본질을 갖는 업무이기 때문에 반복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불가능하지도 혹은 어렵지도 않았다.
내가 했던 일을 하찮게 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판사는 '다양한' 사건을 '반복적으로' 다루는 것이고, 의사는 '다양한' 질병을 '반복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도 '다양한' 경로를 따라서 '반복적으로 ' 폐지를 줍는 것이다. 당연히 각 직업별로 난이도가 틀리고 지식의 깊이나 양 그리고 보상 수준이 다 다르지만, '일'은 본질적으로 '반복적'이라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질 때에만 거기에 부여된 '중요성'이 제거되기 시작하고 세밀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 보면서 해결책을 찾아 낼 실마리를 잡게 될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길게 이야기 했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걱정' 혹은 '두려움'에서 '관심'으로 방향 전환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대하여 '걱정'을 하는 것이 맞을지 '관심'을 갖는 것이 맞을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