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1.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을 수 있겠는가 (p165 ~ p166)
구석에 놓아둔 상자에 고양이를 넣으려 하면 고양이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당신에게 저항할 것이다. 억지로 고양이를 상자에 집어넣었다 하더라도 고양이는 상자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다할 것이다. 덮개가 열려 있다면 고양이는 기어코 상자에서 탈출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방에 혼자 놓아두면 고양이는 잠시 방을 서성대다가 곧 상자 안으로 기어 들어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두려움과 의혹을 억누르려 한다면 그런 감정은 오히려 표면으로 불거져 나올 것이다. 예컨대 백스윙을 하는 도중에! 그러나 그런 감정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면 두려움이나 의혹은 제풀에 사그라지며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생각(두려움, 의혹)의 끈을 끊어 내려 애쓰지 마라. 그럼 고양이처럼 생각도 제풀에 사그라질 것이다. 흙탕물로 가득한 잔을 휘저으면 더 뿌옇게 변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생각과 실랑이를 하면 생각은 더 기승을 부린다. 그러나 생각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고 널찍한 의식의 공간에서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 둔 채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은 제풀에 지쳐 사그라지고 정신이 맑아질 것이다.
유유상종 (類類相從)
'유유상종' 이라는 말은 같은 무리끼리 서로 모이고 사귄다는 뜻이다. 의식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두려움이나 의혹은 똑같은 성질인 두려움이나 의혹만을 끌어들일 것이다.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들끼리 모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사실 인간의 본능적인 특성이다.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과연 두려움이라는 의식, 생각 혹은 감정이 어떤 것들을 끌어들였는지. 두려움 밖에는 끌어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했다면 그건 두려움을 계속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두려움 속에서 생각의 전환을 통하여 다른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려고 한다. 말도 통해야 하고, 성격도 서로 무난하게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사람과 있을 때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나 직장 혹은 동호회에서 조차 사람들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관심사가 유사할 경우엔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권(利權)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자주 보게되는 사람들 중에서 좋은 사람들, 존경할 만한 사람들, 늘 행복해 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많다면 당신도 그런 사람일 가능성이 거의 100%일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공감하면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은 더 견고해진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한다던지, 정치적 성향이 같다던지 하는 이유로 자주 만나거나 강력하고 견고한 모임을 만드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성향이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대 개인에서 간혹 발생하는 것이고 무리를 이루게 될 경우엔 결국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을 둘러봐도 유유상종은 매우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신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이렇게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형편과 성향에 따라서 최대한 골라서 좋은 쪽으로 '유유상종'을 할 수 있겠지만, 의식내에서 유유상종 현상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어떤 감정이 떠오르면 겉잡을 수 없이 유사한 감정이 몰려 들고, 그것을 피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렇게 '같은 것끼리 모이려는 힘'은 매우 강력하다.
내버려 두기 (놓아버림)
이 글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놓아버림'과도 일맥상통한다. 놓아 버림은 '마음속에 받고 있는 압박' 없애 버리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부여한 '중요성'을 제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쉽게 생각하면 지금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그 '골치거리'를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골치거리'를 그냥 내버려두면 계속 비슷한 '골치거리'를 끌고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냥 두지 말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식으로' 처리해 버리길 권한다. 그리고 이것은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서, 중학생인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수학을 40점을 맞아 왔다고 하자. 물론 100점이 만점이다. 일반적인 부모라면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힐 것이고, 아이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야단을 칠 것이다. 물론 꾹 참고 야단까지는 치지 않더라도 속으로 꽤 큰 걱정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상황에서 부모의 '골치거리'는 무엇인지 매우 분명할 것이다. 이런 '골치거리'를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이유는 거기에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 해야 할 것은 당신이 중요성을 부여한 부분에 대한 본질을 들여다 보는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걱정과 화'라는 감정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은 표면적 상황(점수가 낮은것)이다. 그 표면적 상황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런 감정에 중요성을 부여하기 전에 그것들을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아이가 학원에 열심히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저렇다면 학원을 잘못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학원에 문제가 없고 아이에게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당신이 모르는 아이의 또 다른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아무 문제도 없었고 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한 것이 확실하다면, 당신의 학창시절 수학 성적을 되돌아 봐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성적을 보고 걱정하고 화를 낸다고 하여 떨어진 성적이 올라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표면적 상황(낮은 점수)에 중요성이 부여될 그 어떠한 이유나 타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매번 '중요하지 않은 사항'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고민하고 괴로워 한다.
말이 쉽지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위에 언급한 대로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해 보길 권한다. 지금 당신의 골치거리를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것을 해부해 보기 바란다. 아마 크게 중요성을 부여할 만큼 큰 걱정거리가 아닐 가능성이 96% 정도는 될 것이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다들 아는 내용이다. 차이가 있다면 어떤 사람은 이걸 정말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냥 재미로 읽기만 한다는 것이다. 내 경험상 어니 젤린스키의 연구 결과는 매우 정확했다.
*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 어니 젤린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