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상에 적응하기
'투자'에 대하여 관심이 적은 사람들은 아마 들어보지 못했겠지만, 이 단어들은 미국 배당성장주에 분산투자하는 국내 상장지수펀드(ETF)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신한자산운용의 'SOL 미국배당다우존스'는 '솔미당',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는 '타미당'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그리고 '에미당'도 있다고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배당다우존스'가 그것이다. 신문 지상에 보면 다양한 줄임말들이 존재한다. 그 분야에 대하여 잘 모르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들이 차고 넘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를 꽤 오래 전부터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압축된 언어의 양과 압축의 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나는 90년대에 회사에 들어가서야 거의 처음으로 이메일을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흑백 화면의 뚱뚱한' 모니터에서 주황색으로 빛나는 프롬프트가 내가 자판을 누를 때마다 한칸씩 우측으로 '천천히 뜸을 들이면서 껌뻑하고' 이동하는 식으로 이메일을 작성했었다. 그리고 30년 전인 그 때에도 줄임말은 사용되고 있었다. Thank you 는 Thx로, Regards는 rgds로 말이다. 이 외에도 꽤 많은 줄임말이 있었다.
사실 이메일에서 단어를 줄여서 표기한 이유는 원래 비용 절감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한글자를 쓰던 천글자를 쓰던 이메일을 발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차이가 없다. 전기세 외에는 거의 무료이니 말이다. 그러나 data 전송에 큰 비용이 들던 과거에는 사용 시간당 요금을 부과했었다. 텔렉스가 바로 그것이다. 나도 텔렉스 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내가 알기로는 텔렉스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사용 시간에 따라서 요금이 부과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짧은 단어를 사용하여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만 효율적이었다. 단어의 개수대로 비용을 청구한 것은 아니고 사용 시간에 따라서 비용을 청구한 것이지만, 결국 단어가 많으면 입력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높은 비용이 청구되니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축약된 표현으로 작성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텔렉스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방식의 단어 줄이기는 텔렉스 시대를 지나서 더이상 글자수에 비용이 고려될 필요가 없는 이메일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줄임말을 사용하여 이메일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단어를 압축하여 사용한 이유는 많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원래는 비용을 아끼기 위한 불가피한 필요성에 따라서 단어를 줄여서 사용했다. 텔렉스가 바로 정확하게 그런 상황을 대변한다. 이런 비용 문제에서 초래된 압축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외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꽤 많은 방식으로 언어의 압축이 일어난다.
앞서 언급한 '솔미당', '타미당', '에미당' 과 같은 단어들은 전혀 비용 측면에서는 줄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너무 길어진 단어를 되풀이하여 읽거나 지면에 표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효율성을 올리기 위한 측면에서는 축약의 당위성이 성립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용자(이런 단어들에 대한)가 이미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단어들은 줄여진 그 자체로 단어로써의 생명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강의'는 '인강'으로 표기해도 대부분의 '인터넷 강의'가 필요한 사람들은 다 이해하기 때문에 이미 독립된 단어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굳이 그렇게까지 압축을 할 불가피한 필요는 없지만, '압축하면 더 효율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이와같은 효율성의 추구가 단어 압축의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압축은 정보량의 증가에 따른 적응 과정에서 일어난 문화적 현상이기도 하다. 전세계적으로 최근 몇십 년간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왔다. 2003년에는 전세계적으로 약 5엑사바이트(1 Exabyte 는 10억 기가바이 혹은 100만 테라바이트. 1 Exabyte는 10의 18승이다)였는데, 2010년에는 1.2제타바이트(1 Zettabyte 는 10의 21승이다) 그리고 미국 시장 조사 기관인 IDC에 따르면 2020년 전세계 디지털 정보량은 90 제타바이트였다. 이걸 기가바이트로 바꾸면 99조 기가바이트가 된다. 99조 기가바이트면 해리포터 책 6,500조권에 해당된다고 한다. 너무 높은 숫자라서 감도 오지 않는다. 이걸 만약 128GB의 테블릿에 저장해서 그 테블릿을 쌓아 올리면 지구와 달을 15번 왕복할 정도라고 한다.
* 2020년 기준 하루 1분 동안 생성된 데이터 량. 하루동안이 아니라 딱 1분 동안이다.
이렇게 단어의 압축은 증가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줄임말의 당위성을 거론하기 위하여 전세계 정보량의 폭증까지 언급하는 것은 좀 너무 나간것 같긴한데, 결국 정보의 양이 폭증하면 그 정보를 소화하고 인간간에 교환할 단어의 양도 증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효율적인 상호 정보 교환을 위한 단어의 압축'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압축을 통하여 더 빠르게 의미 전달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통의 편의성을 상당히 증대시켜 주며, 그리고 무엇보다 에너지 효율적이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보면 비용 효율적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단어의 압축 현상'은 계속 증가되고만 있는 정보 혹은 지식을 수용하고자 하는 인간의 적응 과정의 일환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수는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21년 기준으로 영어 위키 낱말사전에는 모든 언어에 걸쳐 총 9,928,056개 이상의 정의가 있다고 한다. 문화가 발전되면서 계속 새로운 정의가 추가될 것이고 이것은 어휘의 총량을 끊임없이 증가시킬 것이다. 참고로, 성인 원어민들은 보통 20,000~35,000개의 단어를 사용하고, 비 원어민은 약 2,500~9,000개의 영단어를 사용하여 소통한다고 한다. 개인별로 경험, 교육 수준, 관심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사용 개수의 폭이 좀 넓은 편이다. 언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며 새로운 단어가 추가되기 때문에, 어차피 인간은 제한된 단어를 통하여 최대한 소통을 하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비록 '단어의 압축' 현상은 언어 전체적으로 볼 때는 국소적인 현상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엄청나게 증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물론 산속에 들어가서 자연인으로 사는 사람은 제외다. 그러나 태반의 문명인들은 '단어 압축의 시대'를 살아내야만 한다. 압축은 결국 속도를 추구하기 때문이기도하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한국 사람들에겐 그래서 특히 더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는 삶의 환경 속에서 편리성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끊임없이 단어의 압축을 경험해야만 할 것이다.
단어의 압축은 빠른 속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보다 간단한 문자나 기호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여기에는 큰 맹점이 있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간단한 의사 전달로는 간단한 의미 밖에는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쌀로는 쌀밥을 지을 수가 있다. 쌀만 가지고 잡곡밥을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거의 같은 방식으로 간단한 표현은 아무리 함축적으로 사용한들 다양하고 미묘한 정서나 감정을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타인과의 깊은 유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풍부한 감정의 전달은 그렇게 매우 짧은 '기호'로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만들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싶은 대상과의 소통에서는 좀 더 풍부하고 내밀한 감정의 전달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대인은 너무도 빠른 속도에만 적응되어 있는 것 같다. 계속 끊임없이 뭔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집중력은 갈수록 떨어져 가기만 한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터치만 하면 쉽게 연속적으로 변하는 휴대폰 화면 스크롤에 너무 심하게 중독되어 있어서 잠시라도 집중하여 글을 쓰거나 읽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독서 인구가 꾸준히 줄고 있는 것은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렇게 바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속도를 내려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내 경험에 따르면 정말 바쁜 사람은 바쁘다고 하지 않는다. 바쁘다고 말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바쁘지 않음에도 바쁘다고 하는지를 설명하려면 너무 많은 지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셀레스트 해들리의 '바쁨중독'의 일독을 권한다)
우리는 너무도 바빠서 '오케이'를 정말로 쓸 시간이 없어서 'ㅇ ㅋ'라고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오케이'라는 단어를 휴대폰으로 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5초도 걸리지 않는다. 결코 내기가 어려운 길이의 시간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케이' 대신에 'ㅇ ㅋ'를 남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딘가에 단단히 홀려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바쁘다는 주문에 걸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말이다. 결국 '단어 압축의 시대'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느긋함과 여유'를 박탈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사 소통에 있어서 조차 더 빠른 속도를 내고 싶어하는 것은 결국 욕심 혹은 욕망의 표출이다. 삶이 인간 욕망의 실현 과정일 뿐이라면 속도에 집착하고 욕망을 쫓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삶을 단순히 욕심과 욕망만 추구하는 '빨리빨리 살아내기 과정'으로 쓰기에는 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을 빠르고 더 빠르게 처리하고 마감하려고 매 순간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문화 현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냥 만들어져서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현상에 끌려가지만 말고 그게 어떤 현상인지를 살펴 가면서 삶을 조금만 더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도 어쩌면 내가 '너무 짧은 글이나 압축된 단어' 에 그렇게 많이 매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