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7. 지나침은 금물이다 (p196 ~ p198)
한 음악가가 명상법을 배우려고 부처를 찾아갔다. 그리고 부처에게 물었다. '명상하는 동안 제 정신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정신을 어딘가에 집중해야만 하나요, 아니면 긴장을 풀고 정신이 제멋대로 떠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나요?' 부처는 대답대신 음악가에게 이렇게 물었다. '악기를 조율할 때 현을 지나치게 세게 조입니까, 아니면 지나치게 느슨하게 풀어 둡니까?' 음악가가 대답했다. '너무 세게 조여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하게 풀어도 안 됩니다. 적당하게 조율해야 합니다. 부처가 말했다. '악기의 현을 조율할 때와 똑같습니다. 명상할 때 정신을 지나치게 구속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방임해서도 안 됩니다. 적절해야 합니다.'
이 가르침은 골프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클럽을 너무 꽉 쥐면 감각을 느낄 수 없고, 손목과 손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기도 힘들다. 너무 느슨하게 쥐면 클럽이 손 안에서 헛돌수 있으며 스윙도 맥없게 느껴진다.
스포츠 심리학은 '성과'와 '감정'의 관계를 분석해서 '지나침은 금물'이라는 원칙을 실제로 증명하고 있다. 감정이 거의 개입되지 않을 때 성과에 무관심하게 된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무관심의 반영으로, 열정이나 에너지가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다. '지나친 방임'의 결과다. 감정의 개입이 늘어날 때 성과의 수준도 올라간다. 감정 개입이 적정 수준일 때 최적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적정 수준이란 지나치게 높은 때도 아니고 지나치게 낮은 때도 아니다. 감정 개입이 적정 수준을 넘어설 때 성과의 질을 떨어진다. 달리 말하면, 감정이 극단으로 치우칠 때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나친 개입'의 결과다.
이상적인 감정 수준을 명쾌하게 공식화 할 수는 없다. 직관으로, 느낌으로 알아야 한다. 감정의 적정 수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정 수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지나친 것은 적정 수준이 아니다!
아마추어의 '지나친 감정 방임과 감정 개입'
보통 하이 핸티캡 아마추어 골퍼들은 게임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곤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편하게 명랑 골프를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날의 경기를 포기하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치는 것은 아닐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잘 맞지 않는 샷이 몇 번 나오면 자포자기의 상태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생각치도 않은 쌩크가 연속으로 나와서 어이없어지는 경우 말이다. 그리고 한 홀에서 연속으로 3번 탑핑을 내서 공을 뱀처럼 하늘이 아닌 땅위로 이리 저리 굴러가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 멘탈이 흔들리지 않기는 꽤 어렵다.
하이 핸디캡 골퍼중 일부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간혹 실력에 맞지도 않는 난이도 높은 샷을 구사하려는 또다른 어처구니 없는 시도를 하다가 더 큰 낭패를 자초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홀에서는 이미 충분히 쳤으니(더블파 이상을 기록해서) 공을 집어 들고 홀을 먼저 빠져 나가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사실 예전의 내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예전'이고 지금은 아니다.
위와 같은 상태는 정신이나 감정을 지나치게 방임한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감정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집중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 상태에서 이루어진 샷의 결과는 뻔하다. 좋은 스코어라는 '성과'로 이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로우 핸디캡 골퍼에 비하여 역량 측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서 플레이를 해도 스코어를 줄일까 말까인데 이렇게 미리 포기 해버리면 좋은 스코어 만들기는 고사하고 동반자들의 게임 흐름도 끊어 놓는 민폐를 초래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나도 그런 식으로 민폐를 끼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로지 부끄러울 뿐이다.
내가 당시 '지나친 감정적 방임'에 굴복했던 이유는 아마도 '터무니 없는 욕심'때문이었을 것이다. 정교하게 정확한 샷을 날릴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샷을 기대하고 플레이를 했는데, 반복적으로 좋지 않은 샷을 날리다 보니 의기소침해지고 따라서 '오늘은 틀렸다'라고 너무 이른 포기를 해 버렸던 것이다. 이런 '포기의 근원을 따라가보면 맨 뒤에는 '터무니 없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딱 그 모습이었다. 평소에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드라이버는 남보다 길게 치려고 하고, 핀하이의 높은 탄도로 아이언 샷을 치고 싶어했다. 시험 공부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우등상을 받겠다는 것과 다를것이 없다.
실제로 시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학생이 우등상을 바라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골프는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 옛날에 기록했던 라베(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제는 실수 몇 번했다고 절대로 게임을 섣불리 포기하지는 않지만, 조금 운이 좋아서 전반에 공이 좀 맞는다 싶으면 '터무니 없는 라베'의 꿈을 꾸게 된다. 이런 섣부른 기대는 당연하게도 '지나친 정신 혹은 감정의 개입'을 초래하고 이런 과한 감정은 나중에 반드시 스코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확인된다. 나의 '라베'가 지난 14년 동안 깨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Carpe Diem과 중용
조셉 패런트는 골프에서 중용(中庸)을 이야기하고 있다. 과유불급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중용이라는 말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적당한 상태나 정도를 이야기하며, 인간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균형의 유지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양적인 면에서는 많음과 적음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적당함이 중용이고, 인간의 감정 측면에서는 이성을 통하여 욕망을 통제하고 지적인 사고에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수준의 판단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중용을 매 순간 적용하는 삶을 사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너무도 큰 숙제이다.
Carpe Diem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 순간을 잡아라!, 이 순간을 살아라!, Seize the day! 등으로 표현되는데 얼핏 보면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누리고 즐겨라! 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래서 Carpe Diem 이라는 말은 마케팅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Carpe Diem 의미하는 것은 '이 순간, 즉 지금을 충실히 살라'는 의미다. 지금 없는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은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니다. 지난 것을 후회하며 이를 가는 것도 지금을 사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 한도 내에서 최대한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방식으로 삶을 살라는 것이다.
Carpe Diem은 현재의 선택에 관한 것이고, 중용은 중요한 삶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행동과 사고를 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약간 미래 지향적인 면이 있다. 미요한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취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두 표현 모두 현재의 순간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우리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선택을 하자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현재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충실히' 즐기되(Carpe Diem), 너무 형편에 과하지 않게 '적당히' 즐긴다면(중용) 우리는 Carpe Diem과 중용을 모두 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과한 스윙과 적절한 스윙
골스 스윙에서도 중용이 필요하다. 특히 내 경우엔 벙커에서 간혹 그것을 강하게 느낀다. 벙커 스윙에 익숙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모래의 상태(모래 알이 굵은지, 물기가 있는지, 굳어 있는지)와 공의 위치(벙커 중앙에 있어서 걸림이 없는지, 벙커 턱에 걸려서 원하는 각도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인지)에 따라서 스윙의 각도와 세기 등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특히 홀까지 남아있는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이 놓인 조건으로 인하여 매우 강한 스윙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때 필요한 스윙은 남은 거리에 필요한 작고 부드러운 스윙이 아니라 '벙커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남은 거리에 비하여 크고 강한 스윙이다. 즉 상황에 맞는 스윙을 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그 순간(지금) 필요한 스윙이라는 말이다. 그 스윙은 얼핏 과해 보이지만 상황에 맞는 적절한 스윙일 것이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공이 놓인 상황에서 필요한 크기와 세기의 스윙을 하기 보다는 남은 거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작고 약한 스윙을 하여 벙커 샷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벙커 샷을 할 때 중용을 지키지 못한 것이 그 이유다. 골프에서의 중용은 딱 필요한 만큼만 샷을 하는 것이다. 즉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은 정도로 샷을 한다면 중용에 맞는 행위를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벙커 샷에도 중용은 필요하다.
물론 다른 샷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래라는 특수한 장애 요소를 고려하여 '적절함의 정도'가 유연하게 적용되야 하기 때문에 특히 벙커샷에서의 중용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벙커에서 샷을 실패하여 탈출하지 못하면 또 벙커 샷을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의 샷은 실패를 하더라도 대부분 깊지 않은 러프 혹은 페어웨이에서 그 다음 샷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벙커에서 실패하면 또 벙커에서 쳐야 한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이 핸디캡 골퍼들은 그 사실을 자주 잊는 경향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과한 행위가 다른 상황에서는 과하지 않은 행위가 될 수도 있고, 딱 적당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중용은 유연하게 상황에 따라서 적용 범위가 변한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말 뿐이라고 한다. 그런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시의 적절하게 균형 잡힌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즉 중용을 지킬 수 있다면 정말 완벽하게 '지금'을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