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게서 협력을 배운다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는 너무 커서 매머드(Mammoth) 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Coast redwood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주로 캘리포니아 해안가에서 이 나무들이 서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메타세콰이아 나무도 꽤 자란 것은 적지 않게 굵고 높기 때문에 쳐다보는 맛이 있지만, 미대륙에 있는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는 그 거대함에 있어서 우리가 자주보는 메타 세콰이아 나무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라서 막상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 같다. 수십미터는 물론이고 최대 100미터 이상의 엄청난 크기로 자라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있는 도로 (Avenue of the Giants)에는 나무 밑을 뚫어서 차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도 몇 그루나 있다고 한다. 자이언트 세콰이아의 한 종류인 '하이페리온' 종의 나무라고 한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만 봤기 때문에 만약 실제로 볼 기회가 된다면 아마 그 끝을 쳐다보기 위하여 내 목을 뒤로 90도는 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나는 '하이페리온' 이라고 이름지어진 것으로는 아파트 밖에 본적이 없다.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는 생육이 잘 맞는 환경이라면 100미터가 넘게 자라고, 2천년에서 3천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생육 조건에 잘 부합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를 잡고 오랜 시간을 버텨온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의 매우 독특한 생존 방식이다. 거대한 크기에 비하여 이 나무들은 뿌리가 불과 1미터 내외 정도의 깊이 밖에는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얕은 뿌리로 엄청난 크기와 무게를 자랑하는 몸체를 버티기는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수천년을 버텨온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깝다.
'기적'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말이 되지 않는 기이한 일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간혹 기적이라고 생각한 일들의 뒤안에는 뭔가 이유가 존재했던 적이 많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뒤에서 엄청난 노력이 있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 않고는 '기적적으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세콰이아도 마찬가지다. 이 나무는 불과 1미터까지만 뿌리를 내리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의 뿌리와 만나서 단단히 결합한다. 이것이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의 기적의 비밀이다. 두 그루가 있으면 두 그루가 결합하고, 열 그루가 있으면 열 그루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땅 속에서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가 숲을 이루게 되면 숲 전체가 모두 견고하게 연결된 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강력하게 이어진 뿌리들이 서로를 지탱해 주기 때문에 그 어떤 폭풍우가 몰려와도 뽑이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나무들이지만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엄청난 팀워크를 발휘하는 최상의 조직과도 같다. 적어도 결속력, 팀워크, 상호 지지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이 만들고 유지해온 '사회적 조직'보다 월등히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수 천 년간 생명을 이어온 원동력이고 그 동력을 잃지 않고 계속 유지해 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살아 남은 것이다. 반면 인간이 만든 사회적 조직이 수 천 년을 견뎌온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일반적인 사회적 조직인 기업을 예로 들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불과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100년을 버티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우리 나라만 해도 재계 순위가 매년 엎치락 뒤치락한다. 내가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30년전의 30대 대기업 집단 중에서 태반은 사라지고 없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은 대부분 일본에 있다고 한다. 세계 1위부터 7위까지 가장 오래된 기업이 모두 일본에 있는데, 이것은 엄청난 팀워크, 결속력, 상호 지지의 특성을 일본 기업들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기 보다는 일본의 '가업을 잇는 문화적 배경'이 더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일본에는 철저한 계급 혹은 신분제에 따라서 가업을 이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수 십 세대를 거치면서 가업의 명맥을 유지해 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역사가 백년이 넘는 회사만 3만개가 넘는다고 하며, 2백년이 넘은 회사로 추려도 3천이 넘는다. 독일도 2백년이 넘는 회사가 1,500곳이 넘고, 프랑스와 영국도 3백 곳이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는 일본의 Kongo Gumi (콩고 구미)라는 건축회사이다. 578년에 설립되었으니 거의 1450년 가까이 유지가 되어온 것이다. 신사와 절을 짓는 전통 건축 회사(신사 목수 회사)라서 안정적인 국내 수요와 공급이 보장되는 문화적, 사회적 배경이 이 회사의 오랜 역사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지만, 아무튼 그래도 15세기 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언급된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근대화가 늦게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도 이젠 백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두산, 신한 은행(옛 조흥은행) 동화 약품 등 약 7개라고 한다. 근대화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기업들의 역사도 짧을 수 밖엔 없을 것이다. 50년 이상된 기업의 수도 불과 500개 남짓으로 아직 갈길이 멀다. 더 많은 기업들이 더 오래 존속하길 바란다.
내가 재직했던 회사(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는 1968년에 창립이 되었다. 우연하게도 내가 태어난 해이다. 따라서 역사가 어느덧 56년이 된 것이다. 원래는 한국 회사였지만 미국 자본에 팔렸기 때문에 더 이상 대한 민국의 50년 이상된 기업에 포함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50년이 넘도록 살아 남은 것만해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최근 어려운 내외부 경영 환경으로 인하여 고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56년을 오로지 직원들간의 견고한 협력과 상호 존중의 기업 문화를 통해서 버텨왔듯이 이번에도 모든 사람들이 자이언트 세콰이아 나무들처럼 단단히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이 어려운 구간을 잘 통과해 갈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