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6. 천천히 서둘러라 (p193 ~ p195)
'천천히 서둘러라. 그럼 곧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 밀라레파
주니어 골퍼인 크리스가 내게 레슨을 받으러 왔다. 그는 스윙이 정점에 이를 때 문제가 있는 듯하다고 불평했다. 다운 스윙을 너무 성급하게 시작한다는 증거다. 때로는 백스윙을 완전히 끝내기도 전에 다운 스윙을 시작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내 앞에서 절차에 따라 스윙을 해보였다.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상당히 서두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크리스에게 스윙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슬로모션으로 공을 쳐 보라고 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시킨 대로 했다. 놀랍게도 스윙의 정점에서 서두르는 기색이 완전히 사라졌다. 젊은 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홀을 거듭할 때마다 그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게임의 템포가 조금씩 빨라졌던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와 똑같은 현상이다. 어느새 제한 속도를 훌쩍 넘어 운전하고 있는 때가 종종 있지 않은가! 당신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금씩 빨라지는 속도에 익숙해지면서 속도가 증가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진 속도를 늦추면 굼벵이처럼 달린다는 느낌이 들것이다. 시속 120km로 달리는 데 익숙해진 후에 속도를 80~90km로 늦추면 마치 60km로 달리는 것처럼 갑갑하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의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슬로모션' 훈련법은 수준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골퍼에게 효과가 있다.
밀라레파
밀라레파는 11세기에서 12세기에 실존했던 '완전히 깨달은 자' 혹은 '티베트의 부처'라고 불리는 위대한 티베트 불교 수행자이다. 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을 차지하면,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짧고 언제 죽을지는 알 수 없으니 수행에 매진하라.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최선을 다해 악을 피하고 공덕을 쌓으라.
소금물을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지듯이, 갈애(渴愛)를 채우면 갈애가 더 커질 뿐이다.
자신의 생각을 좇아 다니는 것은 주인이 던진 막대기를 찾으러 가는 개가 되는 것이다. 개가 되지 말고 사자가 돼라. 사자의 시선은 막대기가 아니라 막대기를 던진 주인을 향한다.
사랑과 자비를 명상하는게 오랜 습관이 되다 보니, 나는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모든 차이를 잊어버렸다.
천천히 서두르면 곧 목적지에 도달한다.
조셉 패런트는 이 티벳 불교 성인의 말 중에서 '천천히 서두르면 곧 목적지에 도달한다' 라는 어구를 스윙과 연관지어서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 심취하여 '젠골프'를 저술한 사람이니 밀라레파의 종교적 말씀도 '레슨'에 활용한 것인데 심지어 잘 적용이 되는 것도 신기하다.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두르라’는 뜻의 라틴어 명언이다. 아우구스투스(로마 황제)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성급함은 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지는 말라는 뜻이 아닐까? 사실 이 말이 밀라레파가 한 말인지도 몰랐고,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인지도 몰랐는데 나는 이 말을 재직중에 계속 사용해 왔었다. 직원들에게 업무 관련 지침을 전달할 때 '천천히 빨리하시라'고 주문을 했던 것이다. 내가 의도한 것은 '신속하게 하되 허둥대지 말고 꼼꼼하고 완벽하게 하라' 였다. 두 분의 위대한 인물이 의도한 의미와는 결이 약간 다르긴 하다.
아무튼, Festina lente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천천히 그리고 빨리’이다. 즉 ‘천천히 서두르라’는 논리적 모순이다. 천천히 서두를 수 없고, 서두르면 천천히 할 수 없는 모순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모순어법(oxymoron)이다. Oxymoron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Alone together는 혼자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고, awful good은 끔찍하지만 좋은 것, bittersweet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상태, 즉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Clearly misunderstood는 완전히 확실하게 오해 받은 것을 의미한다. 모두 Oxymoron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뛰어난 지도자에게는 성급함은 금물이며, 따라서 그걸 경계하고자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 무엇이든 서두르면 실수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지나치게 서두르면 실수를 반드시 초래하고 이는 장기적으로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성재 프로의 스윙
2024년 현재 PGA Tour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임성재 프로의 스윙은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윙이다. 전형적인 루틴에 따른 스윙이긴 하지만, 특이점은 비교적 느린 속도로 만들어진 백스윙 탑에서 아주 미세하게(0.5초 내외) 거의 정지되었다가 강력하게 다운 스윙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임성재 선수 스윙의 특징이 바로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올라가는 백스윙'이다. 그의 스윙 템포가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매우 잘 맞는 템포이다. 탑 스윙에서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멈출 수 있으려면 상당한 밸런스와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짧은 멈춤 때문인지 몰라도 급하게 다운 스윙을 할 때와 비교하면 훨씬 안정적인 밸런스 유지가 가능하다. 물론 나에 대해서만 유효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빠른 스윙 템포 때문에 고생이라면 임프로의 스윙이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조셉 패런트가 주장하는 '슬로모션' 스윙은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효과를 본 내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공이 잘 맞지 않을 때에는 습관적으로 매우 천천히 스윙을 해 보면서 템포 조절을 하곤 했고 그 결과 샷의 정확성은 올라갔다. 아마도 스윙 템포를 약간 느리게 조절하면 그만큼 힘이 덜 들어가니 몸의 긴장이 덜 되기도 하고, 느려진 스윙 템포에 따라서 인식력이 증가하여 공에 집중하면서 단순한 스윙만 수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매커니즘을 전문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 되었건 서두르는 것 보다는 차근차근 하는 것이 뭐든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스윙의 템포에 여유를 좀 더 가지라는 것이지 set up 자세에서 빈 스윙을 대여섯번씩 하고, 목표물 조준을 서너번씩 하면서 안절부절 시간을 끄는 것은 스윙 템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순한 '늑장 플레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긴 루틴은 긴장을 증가시킬 뿐이다.
코메디언 김국진처럼 연습스윙도 가볍게 반스윙으로 한두번만 하고 바로 공으로 걸어가서 스윙을 번개같이 하는 것은 너무 과하게 빠르고(그의 스윙은 보통 5초 내외로 끝난다. 그럼에도 놀라울 정도로 매우 정확한 샷을 한다), 닉 팔도나 가르시아(Sergio Garcia)같이 너무 느린 스윙 루틴은 과도하게 느려서 보는 사람을 매우 답답하고 짜증이 나게 한다. 특히 가르시아가 스윙 전에 20번 이상 웨글(샷을 하기 전에 일정하게 손목을 까딱까딱하면서 긴장을 푸는 동작)하는 것을 보면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필드의 물리학자'로 불리는 브라이슨 디샘보는 한 대회에서 70야드를 남긴아이언 샷을 하는데 3분을 썼고, 2.5m 퍼팅을 하는데 2분 20초를 썼다고 한다.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후에 좀 더 빠른 스윙을 하려고 노력을 했고 실제로도 빨라졌지만, 여전히 그의 스윙 루틴은 꽤 느려서 보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문제다. 과유불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