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6. 당신의 실력을 인정하라 (p252 ~ p255)
조바심은 실수를 부른다! 샷을 실패하더라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샷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음 샷에서 만회하겠다고 벼른다. 퍼팅을 서너 번 실수하면 어프로치 샷을 홀컵에 더 가까이 붙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대개가 무모한 시도에 그치고, 따라서 참담한 결과를 맞아야 한다.
상대적으로 초보 골퍼였던 까닭에 스티븐은 라운드마다 적잖은 홀에서 티 샷을 실수했다. 그리고 티 샷을 실수할 때 그는 단번에 그 실수를 만회하려 달려들었다. 재앙을 자초하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런 실수는 핸디캡이 높은 골퍼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이런 경우, 스윙을 할 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까닭에 공의 상단을 때리거나 타구가 오른쪽으로 휘기 십상이다. 때로는 프로조차 시도하지 않는 샷을 하겠다고 분별없이 나서기도 한다.
나는 게임 운영에 필요한 두 가지 기본 원칙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첫째, 당신이 편안하게 해낼 수 있는 샷을 하라. 둘째, 다음 샷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곳을 타깃으로 삼아라.
필드위의 드리블
축구나 아이스하키 등의 종목에서 발 혹은 채를 이용하여 공을 몰고 가는 것을 드리블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골프에서는 물론 필요없는 기술이다. 그런데 상당수의 하이 핸디캡 골퍼들은 필드위의 드리블을 자주 경험한다. 당신이 만약 백돌이라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도 아주 가끔은 드리블을 한다. 가끔이 아니라 '아주 가끔'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을 경험할 때는 정상적인 멘탈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만큼 골프에서 '드리블'의 충격은 크다.
골프에서 농담처럼 주고 받는 이 '드리블'이라는 용어는 짐작하겠지만 공을 정타로 치지 못하고 뒷땅을 친다던지 탑핑을 내서 형편없이 짧은 거리를 연속적으로 보내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실제로 공을 발로 툭 차서 드리블하듯이 라이를 개선하는 사람을 본적도 있지만 이런 비양심적인 골퍼를 만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아무튼 심한 경우는 겨우 1백미터를 전진하기 위하여 3번이상을 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비참한 모습을 분명히 자주 봤을 것이다. 물론 그 당사자가 본인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린 위에서의 3펏 혹은 간혹 4펏을 하면서 우울하게 홀을 마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보다 더 충격이 큰 것은 단연코 3~4회에 이르는 '필드에서의 드리블'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퍼덕대면서 어렵게 지그재그로 페어웨이를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는 '드리블러'에게는 그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한 플레이어의 멘탈은 최소한 2~3홀은 흔들리게 된다.
골퍼가 드리블러가 되 버리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무모한 시도'에 대한 욕망이다. 파5에서 2nd 샷 위치에서 200미터를 남기고 과감하게 3번 우드를 잡고 '강력한 스윙'을 했지만 뒷땅을 깊게 파거나 공의 옆면이 아닌 맨 윗면을 강타하여 공이 10미터도 전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채의 페이스로 공을 치지도 못하고 채의 바닥면으로 공의 윗 면을 망치로 때리듯이 눌러쳐서 공이 앞도 아니고 옆도 아닌 수직으로 상승시키는 묘기를 보이기도 한다. '수직으로 공을 보내기'는 몇 년 전에 나도 구사한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경사진 라이에서 정말로 200미터를 보내기 위하여 3번 우드를 잡고 그런 샷을 쳤었다. 정상적인 라이에서도 될까말까한 샷을 비정상적인 라이에서 '무모하게' 시도했고 결국 그 대가를 치룬 것이다.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었고, 친한 동반자는 크게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튼 두 번째 샷으로 10미터를 보냈다면 남은 거리는 아직도 190미터이다. 이때 그는 다시 3번 우드를 잡고 목표에 보내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스윙을 한다. 앞선 스윙에서 10미터를 보내는 부정적 경험의 잔재가 여전히 정신과 몸에 기억된 채로 말이다. 결과는 또 다른 완전히 실패한 샷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다시 10미터 혹은 20~30미터를 보내는 경우 말이다. 30미터를 보냈다면 여전히 160미터가 남는다. 이미 멘탈은 흔들릴 대로 흔들린 상태이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고 파5에서 3번을 쳤으니 잘하면 4번째샷은 핀에 붙이면 파를 할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게 된다.
물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선 경험에 비추어 볼때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160미터라면 5번 아이언 정도는 쳐야 도달이 가능한데 5번 아이언으로 깔끔하게 공을 쳐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흥분 상태에 빠진 그의 손에는 이미 5번 아이언이 들려 있다. 이번엔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어진 스윙의 결과가 좋을 수도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다시 정확한 타격을 하지 못하면서 공은 120미터를 겨우 날아간다. 여전히 남은 거리는 40미터이다.
이번에는 5번째 샷인 어프로치를 잘 붙이면 잘하면 보기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미 4타를 친 상태에서 40미터가 남았다면 여기에서 보기를 하기 위해서는 5번째 샷을 핀의 2미터 안쪽으로 붙여서 정확한 퍼팅을 할 때에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40미터를 남긴 상태에서 최대한 붙이기 위하여 집중하여 샷을 날린다. 야속하게도 그 샷 마저 뒷 땅 혹은 탑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그는 200미터를 남긴 상태에서 최소한 4~5번의 샷을 하면서 그린에 겨우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그 홀에서 그는 골퍼라기 보다는 드리블러였던 것이다.
솔직하게 나를 들여다 보기
조셉 패런트가 제시한 두 가지 원칙, 즉 '당신이 편안하게 해낼 수 있는 샷을 하라', 그리고 '다음 샷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곳을 타깃으로 삼아라'는 결국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인정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라는 말을 정중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현실적으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인데 이런 행위는 다시 말하면 '바로 지금을 살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있지도 않은 능력이 생기기를 상상속에서 기원하면서 시도하는 샷은 '바로 지금을 살기'와는 거리가 멀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의 현재 모습대로 살고 가지고 있는 능력에 준하여 행동하는 것은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상황과 형편에 맞는 행위를 하라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도(正道)에 따르는 삶을 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행위가 합리적이고 옳은 것인지 우리는 대부분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살아가면 우리는 정도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라스틱 패트병을 분리배출 할 때 비닐 포장을 제거하고 배출해야 하는 규칙을 지키면서 살면 우리는 아파트의 거주 조건을 잘 지키는 정도를 걷는 주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재활용 수집터에 가보면 비닐 포장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버려진 프라스틱 용기를 찾기는 숨쉬기 보다도 더 쉽다. 심지어 비닐 포장은 대부분 잘 떼어질 수 있도록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몇 초만 시간을 내면 누구나 떼서 분리 배출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냥 버린다. 분리 배출을 하는 주민이라면 프라스틱 용기의 비닐 포장을 제거해서 배출해야 한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정도'를 걷는 일은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분리 배출처럼 너무도 간단한 '정도를 걷는 행위'도 쉽게 하지 못하는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고 자신의 역량에 맞는 행동을 매번 제대로 하기가 쉬울리가 없다. 골퍼는 높은 확률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샷을 욕심부리지 말고 하면서 게임을 진행하면 된다. 이게 골퍼가 게임을 하면서 걸어야 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하이 핸디캡 골퍼는 확률은 높지 않지만 성공할 경우 큰 만족감을 주는 샷에 욕심을 부리면서 18홀을 헤쳐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그는 18홀 중에서 꽤 많은 홀에서 축구나 아이스하키처럼 '드리블'을 하게 되는 경우를 피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페어웨이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드리블을 하는 드리블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용모를 보고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라는 정도는 매우 긍정적이고 밝은 자세이기 때문에 권고할 만한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정도면 어디에서 전혀 빠지지 않고 꽤 잘 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꽤 잘생기고 예쁘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는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본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저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 같다. 물론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태도임은 틀림없다. 더 재미있는 것은 사실 혼자서 거울을 볼때만 그렇게 생각할뿐, 대놓고 자신의 외모에 대하여 자신감 있게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맞다. 자신은 자신이 어떤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솔직히 알고는 있는 것이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따름인 것이다.
용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골프를 할 때만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샷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샷을 하는 선택을 하기 바란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