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glecs Jun 27. 2024

나의 '젠골프' 읽기 (3부:명예로운 게임)

2. 젠골프를 즐겨라 (p267 ~ p270)


자신감은 겉보기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정신 자세의 변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감이 있을 때 모근 것이 갑자기 우리 뜻대로 진행된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사가 우리 뜻대로 전개되지 않더라도 삶을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가시밭길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불교 선(禪)에서 말하는 용기란 바로 이런 것이다. 

                                       - 초감 트룽파, [샴발라, 무인의 신성한 길] 중에서


 샴발라는 티베트 전설 속의 왕국으로 계몽된 사회의 모델이다. 그곳 사람들은 어떤 편견도 없이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용기와 순수함, 자신감과 품위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초감 트룽파 린포체가 이끄는 불교 운동인 '샴발라'에서는 '무인 정신'으로 표현된다. 린포체의 무인 정신은 다른 사람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공격적 본능을 이겨 내는 용기와 어떤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온유함이 샴발라의 무인 정신이다. 


 내게 명상을 가르쳐 준 스승이자 골프광이었던 외젤 텐진은, 제자들에게 골프 코스를 선(禪)을 익히는 수련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즉 필드도 정신 집중과 자각력을 계발하고, 통찰력과 인간의 정을 키워 가는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는 세계관과 경험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젠골프의 4원칙을 가르쳐 주었다. 이 원칙은 내게 개인적으로 게임을 운영하는 방법, 필드에서 동반자들과 교제하는 방법 그리고 골프라는 멘탈게임을 지도하는 방법의 근거가 되었다. 


젠골프의 4원칙


[미덕] 골프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 자체다. 사실 경기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몸과 정신, 그리고 가슴을 이 순간에 하나로 결합시키고 세상과 교감하는 것이다. 이런 미덕이 절대적인 자신감을 계발하는 데 필요한 토양이다. 


[극기] 실망스런 상황이 닥칠 때 이런 상황은 극기심을 계발하기 위한 실질적인 토대가 된다. 관용과 윤리 의식, 인내와 끈기, 평정심과 통찰력을 통해 우리는 사소한 것을 쉽게 덮어 버리고 분노라는 감정을 이겨 낼 수 있다. 극기는 우리 내면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해소시키고, 꿋꿋한 태도와 자신감을 키워 주는 수단이 된다. 


[유머 감각] 유머는 자존심의 포기라 할 수 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천박한 농담이 아니다. 재미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골프 자체에서 순수하게 즐거움을 찾는 능력이다. 유머 감각을 갖출 때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거나, 결과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습관을 비켜갈 수 있다


[친교] 미덕과 극기심 그리고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한 골프라는 단순한 게임은 자신을 믿고, 가슴을 다른 사람들에게 열어주는 디딤돌이 된다. 열린 가슴은 진정한 친교를 위한 필요 조건이다. 진정한 친교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의 교제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친교가 있을 때 세상을 향해 가슴을 크게 열고 모든 것을 사라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용기의 정의


 용기(勇氣)의 사전적 정의는 매우 단순하다. '씩씩하고 굳센 기운' 정도이다. 영어로는 Bravery, Courage 혹은 Guts 정도가 있을텐데 이 글에서 말하는 '용기'는 Guts와 그나마 가까운 것 같지만, '용기'의 진정한 정의를 표현하기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용기'는 좀 더 깊게 파고들어서 그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단어다.  


 禪에서 말하는 용기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말하는 '용기'는 일맥상통한다. 초감 트룽파는 '세상사가 우리 뜻대로 전개되지 않더라도 삶을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는 정신 자세' 로 '용기'를 설명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호킨스는 '용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용기는 자신감, 역량, 활력이 있다고 느끼는 것, 사랑하고 베풀며, 삶 전반에 열정이 있는 긍정적 상태다. 용기의 상태에서는 유머, 활기, 확신, 명확성을 가질 수 있다. 유연하고, 행복하고, 자립심 있고, 제 앞가림을 할 줄 안다. 마음이 열려 있다. 용기의 수준은 에너지가 많고, 행동력이 있고, 놓아 버림이 있고, 직면할 역량이 있고, 알아서 할 줄 알고, 회복력이 좋고, 지략이 있고, 쾌활하다. 용기의 상태에서는 세상일의 성과가 아주 좋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정의하고 있는 용기의 특성에는 외젤 텐진이 가르친 젠골프의 4원칙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용기와 다른 감정을 자주 혼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무모함, 만용, 자부심 등은 얼핏 보면 '용기'로 오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떨어져서 다시 살펴보면 그런 심리 상태는 용기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하위 수준의 감정 상태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자부심의 경우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자부심에 가득찬 사람은 허세가 있고 상당히 방어적인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가끔은 완전히 자부심을 내려 놓지 못한다. 허세까지는 아니지만 꽤 방어적인 면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심리적 정당 방위'라고 스스로를 변호하지만 내가 언제나 옳을 수는 없기 때문에, 과도하게 방어적으로 반응하면서 나의 '자부심'을 보호하려고 한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누구든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려면 방어적일 수 밖에 없기는 하다. 


 자부심이 많은 사람은 사실 상처를 쉽게 받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자신하고 있었는데 그것에 대하여 공격을 받거나 부인을 당하는 경우 더욱 거센 방어기제가 작용하게 된다. 변명과 자기 변호 그리고 공격적인 반응을 통하여 자신의 자부심을 보호하고자 하지만 결국 자부심은 무너지고 심리적 상처를 떠안는 경우가 많게 된다. 


 우리가 가져야 감정은 자부심 보다는 겸손이다. 겸손한 것이 거의 언제나 유리하다. 겸손하면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너무 초라하게 생각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포장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을 스스로 깍아 내리지도 않는다. 마디로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편이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를 존중하며 동시에 타인도 존중하는 태도이다. 이런 사람은 자부심이 아니라 자존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어지간하면 상처를 받지 않고 타인의 부당한 비난이나 공격에 패배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자부심은 내려 놨기 때문에 상처받을 부위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용기의 상태가 무엇인일까?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정의한 용기의 특성은 긍정적이면서 평온한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일을 하더라고 최선의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그것이 '최선의 상태'이지 '완벽한 상태'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상태(성공)가 아니면 최선의 상태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과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긍정성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는 곧 진정한 '용기의 상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용기'라는 정신 상태에는 '놓아 버림'도 포함된다. 즉 최선을 다한 후에 나온 결과물을 수용할 수 있는 것도 '용기'이고 이는 곧 '놓아 버림' 혹은 '내려 놓음'의 상태와 동일하다.  





 배려가 있는 '유머'


 진정한 유머 감각이 무엇일까? '유머'라고 하면 일단 코메디 프로그램이나 개그맨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코메디언이나 개그맨들 중에서 고급스러운 유머를 하는 유형과 그렇지 않은 유형을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폭언을 하고, 남의 치부를 과도하게 드러내고, 강하게 밀거나 치는 일종의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억지 웃음을 유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그만의 스타일로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겠지만 '유머'로만 보기에는 적절하지 못할 정도로 어떤 선을 넘는 경우에는 결국 즐겁게 웃기 위해서 보다가 그 웃음이 쓴 웃음으로 바뀌게 되기도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잔잔한 웃음과 즐거움을 끊이지 않고 이끌어 내는 유형의 코메이언이나 개그맨들은 비교적 장수하기 마련이다.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몇 있을 것이다. 반면 웃음을 이끌어 내려는 욕심에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비난하고 우습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웃음을 위하여 한 말일지라도 상대가 불쾌하게 여길 정도라면 결코 권장할 형태의 '유머'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유명 연예인의 경우 자주 그런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어 내려고 하다가 결국은 선을 너무 자주 넘게 되면서 요즘은 아예 방송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현재 외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타인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수준의 유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필드에서도 동반자끼리 자주 농담을 주고 받는다. 외젤 텐진이 이야기한 것처럼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천박한 농담'은 유머 감각에서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말은 유머 감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천박한 본성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런 수준 낮은 농담으로 타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없지도 않다. 물론 나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통하여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아무튼 그는 나의 스윙 폼을 지적하면서 매우 불쾌하고 저속한 표현으로 나를 직설적으로 모욕했다. 물론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했기 때문에 그의 의도는 웃음을 유도하기 위함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농담은 그냥 '천박한 농담'일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순간에 나의 내부에서 작동한 감정은 자부심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하여 과도하게 표현하여 상대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려는 불순한 목적으로 가해진 모욕적 표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사실이 아닌 말이 사실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에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 나의 내부에서 즉시 작동한 자존감 혹은 겸손함이라는 감정 덕분에 그의 부당하고 저열한 비난과 공격에 패하지 않고 그 순간을 수용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는 여전히 그만의 유머 감각을 필드에서 발휘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누가 우리에게 어떤 비난의 말 혹은 욕설을 해도 우리가 받아 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의 입에서 나온 흉한 말은 다시 그에게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평정심과 균형을 얻을 수 있게 되며 그가 스스로 지은 흉한 말은 다시 제 집인 그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셉 패런트는 골프를 '명예로운 게임'이라고 불렀다. 외젤 텐진이 골프의 4가지 원칙으로 제시한 미덕, 극기, 유머 감각, 친교를 통하여 골프가 이루어질 때 그 게임은 '명예로운 게임'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과거에 불명예스러운 기억이 남아있다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지난 것이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게부터 '명예로운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골프를 제대로 된 정신 수련의 수단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한낱 게임이 무슨 '수련'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골프는 '인생'과도 같다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고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동의한다면 당신에게도 골프는 '한낱' 게임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내게도 그렇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젠골프' 읽기 (3부;명예로운 게임) 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